「에세」 77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쾌락을 위해 고통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할 때가 있고, 역으로 불행을 겪으면 무언가 보상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몽테뉴는 제목 그대로 '우리는 순수한 어떤 것도 맛볼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독자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온갖 상황과 결과를 다 탐색하고 포괄하려는 자는 스스로 선택을 방해하는 것이다. 보통의 정신이면 큰 일과 작은 일을 기복 없이 처리하며 실행하는 데 족하다." 순수한 것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매달리면 오히려 비용만 배가된다. "인간사는 좀 거칠게, 건성으로 다루어서 많은 부분을 운수 소관으로 남겨 둬야 한다."
난 몽테뉴를 통해 퓌론주의를 믿게 됐다. 어떤 확실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이 확실하다. 순수한 무언가를 얻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감각 또한 확실한 것이 아니며, 여러 개로 뭉쳐있는 감각을 하나하나씩 완벽히 정제해낼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그럼에도 얻으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 말도 옳다. 분명 순수한 무언가를 얻는 연습을 한다면 가까워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본질적인 결함을 끌어안고 태어났다면, 노력이 낭비다. 여러모로 속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다만 지금 내 마음은 순수한 것을 얻으려는 시도가 헛되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