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 76
이 글은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에 관한 것이다. 그는 '배교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와 일체화하던 로마의 흐름에 역행하여, 간접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여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 사이에,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분란을 일으켰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율리아누스는 암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인 면모는 오히려 훌륭했다. 성품은 물론, 배우려는 의지도 갖추고 있었으며, 검소하기까지 했다. 그런 인물이 종교 문제에서는 폭군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사가 마르켈리누스는 율리아누스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이교를 품고 있었지만 자기 군대 전체가 그리스도교도였기 때문에 감히 드러내지 못하다가 권위가 강해지자 우상 숭배를 부흥시키려 했다고 해석한다.
"절도 없이 추구하면 선한 의지도 사람들을 매우 악한 결과로 몰아넣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율리아누스의 행실로 보아 그리스도교를 탄압한 것은 악의를 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름의 소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소신을 설득할 방도도 없어진다. 사실 종교 문제만큼 설득하기 어려운 문제도 없다. 율리아누스는 깊이를 갖췄지만 넓이를 갖추지 못해 실패한 황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