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빌런들에게 바친다

by 러너인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한 배신자 역할을 가장 잘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 조건 없는 사랑을 배우기 위한 영혼의 연금술 -

오늘 주제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특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라... 웃음이 났다. 내 삶에 빌런급 조연이 없었으면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을까. 매번 편한 곳에만 가고 먹는 음식만 먹고 가던 길만 오가던 나. 나름 머리 쓴다고 제 잘난 맛에 생각 속에 갇혀 살아온 삶이 아니었던가.

편안하게 일이 풀리고 관계에 문제가 없을 땐 변화도 발전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주는 밥을 먹고 다투며 그게 행복이라도 그게 삶이고 사랑이라고 그렇게 야성을 잃어버린 삶. 어떤 긴장감도 없이 축 늘어져버린 뱃살처럼 힘 빠진 관계가 사랑이라고, 편안함이라, 그게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편안한 삶을 더 편안하게 해 준 주연과 조연들에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오히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 존재들이 있다. 영화로 치면 빌런이다. 영화에서 빌런이 없으면 갈등구조도 없고 영화의 맛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일을 떠올린다. 문과냐 이과냐 갈림길에서 수학과 일찌감치 담쌓고 살게 해준 사람은 중1 수학선생님이다. 두 자리 숫자의 제곱을 3초 이내에 말하지 못해 뺨이 떨어져 나가듯 맞았던 풀스윙 따귀 한 대에 내 인생에서 수학, 아니 이과는 사라졌으니 그분도 내게 인생의 방향을 바꾼 특별한 인물이다.

그다음은 매번 집-학교 동네만 왔다 갔다 하던 집돌이였던 소심한 나를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생활반경을 넓혀준 사람은 고3 담임선생님이다. 살짝 애매한 성적이던 나와 입시상담하시면서 '승우야. 니는 서울이 좋나?'라는 명언으로 말문을 막으신 우리 담임 선생님.

그의 도움으로 1993년 당시 후기대였던 춘천에 내려가서 범생이 역할에서 인생 처음 벗어났다. 수업을 빼먹고 하루에 노래방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을 다니고 담배를 2갑씩 피웠다. 용돈까지 받는 4년 장학생에서 정신줄 놓은 예비 학사경고 1번, 학사경고 1번의 패잔병이 되어 군대로 피신했다. 살면서 한 번은 겪어야 할 사춘기를 늦게라도 겪게 도와주신 분. 그때 집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내가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군대에서도 빌런이 많았다. 밤마다 침낭 사이로 들어오던 나쁜 손,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선임병. 수도권 모 대학 유도학과에 다니던 그 인간 덕분에 안 그래도 저질체력으로 힘들었던 박격포 중대 훈련이 정신적으로 더 고통스러웠다. 인생의 방향을 거스르게 했던 만남. 작고 여린 나를 단단한 고통으로 밀어 넣은 그. 덕분에 강원도의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나 많이 보이고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꾸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을 선물해 준 그 빌런과의 만남.

중국학과를 졸업하고 미래를 고민할 때 컴퓨터공학을 추천한 누군가도 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사람. 내 스타일이 아닌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그. 지극히 현실적이고 낭만이라곤 없는 그가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꾼 인물 중 하나다. 학사편입으로 컴공과 3학년에 적응하느라 하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변비까지 걸렸으니. 그래도 그가 아니었으면 도전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근무할 때도 빌런이 있었다. 3년 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적응하기 어렵게 해준 사람. 그 덕에 집에 못 들어가고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많았다. IT가 나와 정말 안 맞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려준 사람. 그가 아니었으면 어설픈 실력으로 내가 꽤나 실무를 잘한다고 여기고 익숙해져서 그 길로 계속 굳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인생의 방향을 전산에서 기획으로 바꿨다.

기획업무를 할 때도 빌런이 있었다. 그 덕에 예산업무를 떠맡았고 그 일이 가장 최근까지 근 20년을 한 우물 파듯 조직에서 내 일로 맡아서 할 수 있었다. 그가 내게 일을 떠밀지 않았다면 내가 예산업무를 누구보다 깊숙이 해낼 수 있었을까. 그 덕분에 내게 핵심업무가 생겼다.

고마운 빌런들이 또 있다. 평생 운동이라곤 관심 없이 살며 배 나온 아저씨로 굳혀가고 있던 그때 내 삶에서 나를 미워하게 만들어준 분들. 절대로 안 움직이고 걷지도 않던 나를 살기 위해서 나가서 걷게 만들어준 분들. 빌런이자 은인이다. 결국 걷기로는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나가서 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준 최고의 조력자. 고통이 앞으로 나가가게 하는 연료임을 뒤늦게 내게 알려준 분들.

고통은 성장의 언어로 번역될 때, 비로소 인생의 중요한 장면이 된다. 그들이 없었다면 달리기라는 도피처도, 글쓰기라는 치유도, 작가라는 새로운 인생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들을 사랑한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나 자신을 위한 배신자 역할을 가장 잘할 것임을 이제는 안다.

물론 내 인생이 순방향을 향할 때 뒤에서 힘차게 응원해 주시는 고마운 선생님들도 많다. 인스타에서 한상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친구들. 달리기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닌 함께 할 때 더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신 코치님과 매니저님.

살기 위해 쓰던 나에게 혼자만의 치유의 글을 넘어서 책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신 글선생님, 글엄마. 블로그가 전부라고 여기던 나에게 인스타그램으로 나가보라고 등 떠밀어준 분들.

나를 내보이는 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항상 응원해 주던 글벗님들. 가끔 너무 잘 달리고 멋있어서 배가 아프게 해 주시는 러너 분들, 썼다 하면 베스트셀러이신 멋진 작가님들. 혼자만 좋아할 책이라면 안 쓰는 게 낫다는 뼈 때리는 말로 혹독하게 초보작가들의 혼을 빼놓는 책 쓰기 컨설턴트 선생님들.

너무 잘되지 않아서 항상 애틋하게 노력하며 알릴 수밖에 만드는 출판계에서의 미미한 나라는 존재, 한순간도 자만하지 않게 해주는 지금의 미약한 작가라는 존재감. 이 자체가 나를 살리고 단단하게 해주는 빌런인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은 고통이다'라는 법을 설파한 부처님처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 나와 함께 공존하는 모든 것이 넓은 의미의 빌런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선생님이 아닐까. 나보다 잘난 사람, 나를 기죽이는 환경, 없고 부족하게 느끼는 결핍의 감정, 외롭고 소외되는 느낌과 근원적인 외로움까지.

내가 가장 신뢰하는 '배신자'를 떠올린다. 가끔 사랑한다고 여기기도 했던 배신자.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아니, 멀리 갈 것 없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내게 가장 가까운 배신자가 아닐까. 자꾸 밖에서 인정을 찾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 내 안의 모든 가능성을 발휘하는데 두려워하는 '작은 나'.


어쩌면 나는 나를 배신해야 성장하는 게 아닐까? 나를 뛰어넘게 해주는 모든 배신자들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모든 선생님들께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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