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네 인생 마지막 000라면

by 러너인

1박으로 곤지암에 회사연수를 다녀왔다. 러닝화와 옷을 챙겼다. 다음날 새벽에 달릴 생각에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찾아보니 리조트 주변이 2km 남짓해서 계속 뺑뺑이를 돌아야 했다.

날씨를 보니 비소식이 있다. 창문을 열어도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알 수가 없다. 달릴 채비를 한 게 아까워서 그냥 길을 나섰다. 로비를 지나 왼쪽으로 도니 화담숲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다. 워밍업도 없이 업힐을 뛰는 건 무리다. 잠시 고민하다 그대로 뛰기로 했다.

숨이 차다. 계속 뛰는데 오르막이 점점 심해진다. 위를 쳐다보니 끝이 없다. 게다가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런, 모자도 안 쓰고 나왔는데. 결국 업힐을 가다가 중간에 분기점이 나오는 곳에서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있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오르막길. 여기도 만만치 않다. 저 멀리 매표소가 보인다. 저기가 결승선이다. 가까스로 도착해서 멈춰서 헉헉대다가 돌아서 내리막길로 내려온다. 한참 내려오니 출발했던 리조트 입구다. 비가 쏟아진다. 러닝화가 싹 젖고 온몸이 쫄딱 젖었다. 눈이 안 떠질 정도로 거센 비에 잠시 로비 쪽 지붕 밑으로 대피했다.

오늘 괜히 나왔나? 우중런 감성을 논하기엔 비가 과하다. 눈을 뜨고 달릴 수 있을 정도까지 빗줄기가 약해지면 다시 달려보기로 했다. 3분? 5분? 잠시 후 빗줄기가 약해진다. 다시 달려보기로 했다.

날파리가 자꾸 얼굴에 붙는다. 머리를 흔들어 떼어내려 애쓰지만 소용없다. 리조트를 원형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코스가 짧다. 금세 돌아서 다시 출발했던 리조트 입구다. 이래서 뛰겠나... 일단 리조트를 몇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감질나게 달리는데 또 빗줄기가 거세진다.

아주 쏟아 붙는다. 재미없는 짧은 리조트 뺑뺑이도 별로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맨 처음 올라갔던 고통의 오르막길. 화담숲 매표소로 향하는 언덕이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 번째 언덕코스로 향했다. 몸도 안 풀리고 여전히 힘들다. 아까 내게 쉼을 명했던 오르막길 1차 분기점에 도착했다. 계속 가볼까. 아니 너무 힘드니까 쉬었다 갈까. 고민하다가 몸의 아우성에 졌다. 똑같은 위치에서 멈춰서 다시 숨을 고르고 쉬었다가 다시 2단계 업힐 공략을 시작했다. 못해먹겠다 싶을 때쯤 머리 위쪽에 매표소가 나타난다. 가까스로 평지에 발을 올렸다. 아까와 판박이 상황이다.

이젠 내리막이다. 아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비는 조금 그쳤지만 날파리가 더 많아졌다.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부정적 생각처럼 윙윙거리며 착 달라붙는 녀석들. 갑자기 빗소리가 거세지고 눈을 못 뜰정도로 다시 퍼붓는다. 어디로 피할까 주위를 둘러보는데 길 건너 주차타워 건물이 보인다.

굉장히 큰 건물이다. 잠시 비나 피할 생각으로 들어서니 주자장이 엄청 넓다. 게다가 차도 2대 정도만 주차되어 있어서 운동장이나 트랙 느낌이다.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니 250~300m 정도 길이다. 밖에는 무시무시하게 비가 쏟아지는데 여기는 딴 세상이다.

실내 주차장은 고요하다. 조명이 아직 다 켜지지 않아 조금은 어둡다. 천천히 뛰어보니 트랙 같아서 웃음이 난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틈나는 대로 뛰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새벽에 폭우가 내려도 나와서 뛰었고, 찾다 보니 실내 주차장을 발견했다. 여기서 남은 거리를 채우며 뛰기로 했다. 뛰다 보니 어느새 10km까지 겨우 700m가 남았다. 그만 멈추고 싶다. 그때 질문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지금 이 700m가 네 인생 마지막 달리기라면 어떻게 달릴 거니?"

갑자기 힘이 쏟아나서 남은 거리를 힘차게 달렸다. 10km를 달리고 나서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가 쏟아진다. 아무렴 대순가. 천천히 달려서 리조트 쪽으로 올라갔다. 이제 거리도 채웠으니 들어갈까? 입구 쪽에 왔을 때쯤 저 멀리 화담숲으로 가는 긴 오르막길이 보인다.

"승우야. 너 오늘 저기 업힐 한 번도 성공 못했지?"
누군가 말 거는 듯하다. "응. 두 번 시도했는데 중간에 힘들어서 멈췄다 가서 꼭 한 호흡으로 끝까지 가본 적은 없어." 그때 다시 새로운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지금 저 오르막이 네 인생 마지막 달리기라면? 그래도 안 달릴 거니?" "아니, 달릴 거야. 끝까지 해볼 거야."

편안한 리조트로 들어가서 씻으려던 몸을 돌려 세 번째 화담숲 오르막길로 달려갔다. 비는 여전히 요란하다. 날파리들이 더 많아졌다. 윙윙거리며 얼굴에 바짝 붙는 통에 빗물로 이미 뜨기 힘든 눈이 더 위기에 빠졌다. 중간 고비가 되는 갈래길에서 쉴 것인가 끝까지 갈 것인가.

마법의 질문을 떠올렸다. "이것이 네 인생의 마지막 오르막길 달리기라면?" 숨이 차고 힘들다. 아까는 두 번이나 끊어서 뛰었지만, 리조트에서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긴 오르막길을 한 번에 오르는 것이 목표다. 악을 쓰며 달려본다. 이번엔 다르다. 입술을 깨물고 계속 전진. 전진. 더 이상 못 달리겠다는 생각이 들 때 반가운 매표소가 보인다.

어떻게든 끝까지 해내려는 사람에겐 새로운 길이 주어진다. 내일의 내가 바라는 삶을 지금 내가 살도록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네 인생 마지막 00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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