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댓글이 달렸다. 유난히 댓글이 인색한 이곳에서 내 글이 말하던 이야기를 가슴을 열고 읽고 콕 짚어서 자신의 감상을 솔직하게 보여준 그의 댓글이 가슴에 닿았다. 부끄러웠다. 평소 내 글을 쓰느라 급해서 평소 나를 응원해 주던 그가 무슨 글을 올리는지, 어떤 작품을 써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홀린 듯 그의 브런치를 열었다. 그가 쓴 첫 소설은 새로웠다. 시작부터 좋았다. 능글맞은 사투리도 재미있고 술술 읽혔다. 소소한 감동이 있었다. 브런치북 정주행을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나와 스터디카페로 걷던 중이었다. 기계적인 의리의 하트가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그가 쓴 글에 몰입해서 천천히 읽어나갔다. 브런치북 1화부터 15화까지 매 회마다 댓글을 달았다. 빈 도화지 같은 댓글 창에 가장 먼저 댓글을 달고 흔들림없이 계속 정주행 했다.
브런치북 각 에피소드에 일일이 댓글을 다느라 길 위에 한참을 서있었다. 끝까지 다 읽으려고 일부러 멈춰서 글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의 새로운 시도가 좋았다. 그가 내게 달아준 4-5줄의 댓글 응원이 지핀 불씨였다. 결국 나는 그의 브런치북을 다 읽고 총 15개의 댓글까지 달았다.
평소에 이런 좋은 글을 쓰는 작가였구나. 찾아보면 또 얼마나 다들 좋은 글들이 많을까... '그간 나, 나의 글, 나의 책에만 너무 빠져있었구나.' 이렇게 좋은 작가님들이 나처럼 애써서 묵묵히 글을 쓰고 있었구나.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 번도 브런치에서 누군가의 글에 돈을 쓰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댓글을 받고 알량한 자존심이 무너졌다. 나의 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댓글로 진심을 담아 응원해 준 그에게 그날 나는 백기투항했다.
지갑을 열고 응원하기로 했다. 이미 수많은 유료구독자가 넘치는 작가님이 아니라면, 헝그리 정신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아주 보통의 작가인 그의 글에 내가 거울처럼 비춰졌다. 나는 도저히 그 글을 그냥 닫을 수 없었다. 결제를 하고 댓글을 남겼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시간과 아주 작은 마음을 담아 그에게 전했다.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언제였을까. 이런 느낌이 들었던 시간이... 맞아. 그때.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자원봉사 갔던 그날.
그전까지 나는 이기적인 러너였다. 새벽부터 오가느라 몇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면서 대회에 가는 게 아까워서 대회는 무조건 풀코스(42km)만 뛰러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뛰지도 않는데 고작 응원하러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 고생을 해서 박수치러 간다고? 왜? 그때 난 자원봉사는 관심 없고 풀코스만 뛰러 대회장에 가야한다고 믿던 작은 러너였다.
러닝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대회 접수에서 미끄러졌다. 속이 상해서 애써 대회를 잊어버리려던 때 지인이 자원봉사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고민 끝에 첫 자원봉사를 나가기로 했다. 이성적인 머리는 '그런 바보짓을 왜 해? 네가 뛰러 가는 것도 아닌데...'라고 나를 끌어당겼지만, 속는 셈 치고 딱 한 번만 나가보자는 생각이 더 컸다.
자원봉사팀에 합류했다. 새벽에 일찍 나가서 기다리는데 평소 같이 훈련하는 러닝클래스 러너분들이 한 분 두 분씩 새벽 어둠을 열고 나타났다. 긴장된 얼굴로 몸을 풀고 있는 동료 러너들. 처음엔 짖꿎은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실컷 놀리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이 어떻게 풀코스를 뛰죠? 3시가 넘게? 얼마나 힘들까. 아이고 얼마나 힘들까."
원래 시나리오는 평소같이 훈련하던 친한 러너들 곁에 다가가서 웃으며 아까 준비한 멘트를 천연덕스럽게 하려고 했다. 웃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진지한 얼굴과 긴장된 눈과 마주쳤다. 갑자기 지난 몇 달 간 같이 계단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고 숨이 멎을 듯 빠르고 느린 인터벌 훈련을 했던, 비오는 날에도 뛰던 기억,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도 완주했던 그 모든 시간이 선명하게 컬러 필름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내 눈가가 먼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급히 얼굴을 돌려 눈을 비빈 뒤 말없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를 꼭 안아주었다. "잘 해낼 거예요. 파이팅!"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먹먹한 심정으로 출발선에서 러너들을 보내고 중간지점으로 응원하러 차를 탔다.
자리를 잡고 내가 응원하는 러너들이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렸다. 드문드문 오는 통에 파이팅 몇 번 후 그냥 이산가족을 찾듯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모르는 사람들을 응원할 필요 없잖아?' 하는 작은 마음이 또 올라왔다. 쑥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러너들 틈에서 고개를 숙이고 숨을 헐떡거리며 발을 옮기는 어느 러너가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의 배에 붙은 배번 위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모르는 이를 위해 내가 처음 외치는 진짜 응원이었다. "정승우 파이팅!" 이렇게... 내가 이름을 부른 그 낯선 러너는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바닥에 떨궜던 눈을 고개들어 내 쪽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힘차게 저 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이게 바로 응원이구나. 이래서 사람들이 나와서 응원을 하는구나.' 그랬다. 가장 힘든 순간 자기 이름 석자를 생면부지의 내가 큰 소리로 외치며 응원할 때, 모두 숙였던 고개를 하늘 위로 치켜세우며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감사를 전했다.
이거였구나. 내가 조금 전 누군가의 글을 다 읽고 몇 천 원의 돈을 응원한 것이 바로 그 글을 쓴 작가가 지쳤을 때, 그의 이름 석자를 큰소리로 부르며 파이팅을 외쳐준 것이었다는 것을.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전율이 온 것처럼, 서로의 글과 눈이 그 글 너머의 진심을 마주했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음을.
고작 그 댓글 하나가, 겨우 그 몇 천 원의 응원이 나와 그를 다시 뛰게 하는 인생 응원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