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날

by 러너인

매일 쓴 지 100일째 되는 날이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 나 글쓰기에 진심이었지. 달리기만큼, 아니 달리기보다 더. 책과 강연에서 하는 백일백장이란 프로그램에 가입했어. 무료야. 기수제로 100일간 SNS에 500자 이상 글 써서 밤 12시 전에 단톡방과 카페에 인증하는 방식이지.

500자? 그건 일도 아니잖아? 인스타 피드에 2,000자 넘게 쓰는 나인걸? 웬걸. 써보니 다르더라. 글감도 문제였어. 책 쓰고 나니 알량한 마음이 생겼거든. 그래도 내가 출간작가인데 아무 글이나 막 써대면 되나... 사실 아무도 신경 안 쓸 수 있지만, 내가 단톡방에 들어갔을 때 러너인 글벗님들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 주셔서.

부담도 있었어. 쓰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사라지면 책 냈다는 사람이 끈기도 없어 보일 것 같고, 대충 일기나 쓰면 출간작가라더니 이 정도 글이나 올리는 사람이구나 별 볼 일 없구나 하는 평가도 싫었지. 부끄러워서라도 완주해야 했어.

100일의 힘을 믿었냐고? 처음엔 자율학습처럼 내 글 내가 써서 올리는 걸 100일간 휴일 없이 계속한다고 뭐가 나아질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 광활한 단톡방 위에 과거시험 보듯 백일백장에 참여한 수십 명이 각자의 글을 써서 올렸어. 그중에 나도 있었지.

책 홍보나 할까 하는 생각에 처음엔 대화체로 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올렸어. 재미있는 실험이었지만, 100일간 그런 글만 올릴 수는 없었어. 일단 내가 지치더라. 영업사원도 아니고 뭐냐 이게? 글감이 문제였어. 주제 없이 쓰다 보면 억지로 채우느라 바쁘고 그런 글이 100개가 쌓인다고 내 삶에 뭐가 득이 될까 생각이 들었어.

책 홍보 패러디 글을 읽은 인친이 댓글을 달았어. 작가님 출간 비하인드 재밌어요. 영화 같아요. 그 글 써도 좋으실 것 같아요. 출간 비하인드? 사실 재미는 있지. 죽을 둥 살 둥 달려왔으니까. 도전과 실패, 좌절과 용기, 승리와 눈물 그 모든 게 담겨 있지, 그간의 달리기처럼.

브런치 알지? 내가 4수해서 합격한 글고수들의 플랫폼. 달리기로 말하면 최소 싱글 이상, 서브 3 러너가 90% 이상인 러닝 크루라고 하면 비교가 쉽겠다. 어쨌든 대충 글 쓴다고 하다가 들어가면 입이 딱 벌어지지. 글부심이 대단한 분들.

난 4수 추가합격생이잖아. 그래서 간절할 줄 알았는데 간절하진 않더라. 지쳤나 봐. 그냥 평소 쓰던 인스타글만 계속 쓰게 되었어. 가끔 브런치앱에서 경고메시지가 뜨더라. 이런 거.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쓰지 않으면..." 가시가 돋친다? 뭐 이런 거였어. 너 이따위로 할 거면 브런치 작가가 아니지. 이런 꾸중이었지. 신경 쓰지 않았어. 브런치가 어려운 게 아무 글이나 막 일기처럼 올리면 진짜 부끄러워. 생각해 봐. 서브 3 러너들이 모인 곳에서 조깅만 하면서 '나 서브 3 러너야' 하고 말만 하는 사람처럼. 움츠러들었어.

그렇게 브런치에 힘들게 들어가서 글 자주 안 쓴다고 구박받는 사람이 무슨 팔로우가 있겠어. 그런데 100일 매일 글쓰기를 시작하니 욕심이 생겼어. '브런치야, 나 열등생 아니야. 너한테 4번 만에 왔다고 무시하지 마. 나 너한테 오기 전에 이미 책 낸 사람이야. 네가 안 받아줘서 더 큰 판에서 놀다 왔다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브런치도 새롭게 100일 쓰기에 합류했지. 다들 브런치북이란 걸 가지고 있더라. 종이책은 아니지만 브런치 앱 내에서 책 형태로 발간할 수 있었어. 브런치 전용 온라인 책이지. 그게 부럽더라. 나도 한 권 써보고 싶다. 주제는 뭐로? 너 출간 스토리 있잖아. 처음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좌충우돌 달려온 이야기. 오디오북 지원사업. 요조님 모신 일. 맨바닥에서 릴스 북토크하고 꿋꿋이 달려와서 곧 인문학 특강까지 하게 된 그 이야기.

그래, 해보자! 100일이 지난 뒤 돌아보고 그냥 열심히 썼어요도 좋지만 브런치북을 발간했어. 간지 나잖아. 뭔가 성취감도 있고. 목차를 보니 최대 30편이 브런치북 한 권 길이였어. 30편이 최대라고? 그럼 내 첫 책도 30편이지. 풀코스라고 생각하자. 모든 이야기를 다 담자고 결심했지. 막상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더라. 글을 자주 쓰는데도 최소 1시간 30분~2시간은 써야 겨우 브런치북에 올릴 글 하나가 완성되더라.

대충 쓰긴 싫었어. 10월 말 있을 올해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할 생각이 있었으니. 날 매번 평가절하한 브런치에 4수생의 반란을 꿈꿨지. 혹시 알아? 올해 연말 나도 이 브런치북으로 당선이 돼서 웃으며 인터뷰를 올릴지 :) 어쨌든 재미있기만 한 글이 아닌, 첫 책을 꿈꾸는 흙수저 작가에게 정말 꼭 필요한 정보, 이야기, 오디오북 합격 지원서 샘플 등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주고 싶었어. 내가 책을 꿈꿀 때 꼭 만나고 싶었던 그런 브런치북을 쓰기로 했어. 누구나 읽기만 하면 정말 용기 내어 책 쓰기에 도전할 수 있을 그런 책 말이야.

며칠 전 30편을 다 썼어. 보통 브런치북 작가들은 주 1회, 길지 않은 글을 발행하지만 난 그 이상의 글을 매일 썼어. 그냥 완주하고 싶더라. 내 첫 브런치북으로 그간 달려온 나를 응원하고 누군가의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죽어라 쓰니까 브런치 친구들도 늘더라. 아마 내 기억에 두 자리에서 세 자리 숫자로 늘은 것 같아. 소중한 분들이 많이 생겼지. 브런치북 연재를 끝내고 출간 프로젝트 응모까지 마쳤어.

백일 간 매일 쓴다는 것, 일기 같지 않은 글로 채운다는 것은 해보니 이렇더라.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
"승우님, 백일 간 매일 에세이 쓰듯 치열하게 써보니 삶이 달라졌나요?"
"글세요. 인생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나는 정확해요. 달리기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예요. 달린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나아지기 위해 달려야 나아지죠. 글도 그래요. 글 쓴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글을 써야 좋은 사람이 되더라고요. 전 좋은 삶을 쓰기 위해 100일간 써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쓸 거예요."


P.S. 축하해주세요. 글벗님들 덕분에 백일 완주했어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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