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별을 따다
25년 6월 3일. 스레드에 글 하나를 남겼다.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라는 찬란 작가님 브런치북을 만났어. 그녀가 겪은 고통에 아프고, 또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며 끝까지 존엄을 지켜내는 한 인간의 투쟁에 고개가 숙여지더라. 힘겨웠던 재판 과정도. 두 딸 아빠이기도 하고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나. 난 군대에서 그놈에게 성추행을 당했어. 폐쇄적인 공간, 2년 넘게 한 내무반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내 몸을 응시하는 그놈이 내 사수이자 선임이라는 슬픈 현실. 밤마다 침낭을 더듬는 나쁜 손에 터진 지퍼를 반대로 돌리면, 잠자리를 옮겨 더듬는 손, 하소연할 곳도 없는 하얀 밤들. 심하게 거부하는 날이면 다음날 새벽부터 군기가 빠졌다며 내 동기 5명을 줄 세워서 굴리고 괴롭히는 2차 가해. 어떻게 미치지 않고 그 시기를 버텨냈을까. 별이었나 봐. 그 힘은. 강원도라 별이 무수히 많았어. 아픈 밤이 올 때마다 시린 맘을 붙들고 별자리를 찾았어. 오리온. 카시오페아... 눈부시게 아름답게 빛나는 별 같은 찬란 작가님이 존경스러워. 지금은 달리기가 내 별이야."
찬란 작가님이 댓글을 달았다.
"승우 작가님, 제 브런치북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그저 감동입니다. 이런 공간이 있기에 이렇게 작가님과 작가님 이야기를 만나게 되네요. 아픈 이야기에 같이 아파할게요. 지금은 별처럼 반짝이는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저도 힘내어 걸어가 볼게요. 고맙습니다! - 찬란 -"
나도 답글을 달았다.
"찬란 작가님. 이 글에선 존댓말로 할게요. 작가님 이야길 우연히 접하고 울림이 있었어요. 스레드가 우리를 이어줬어요. 제가 올해 3월 말 출간 준비하면서 1월부터 스레드를 시작했어요. 비슷한 시기 출간작가님들과 과 스친이 되어 응원하게 되었어요. 소위님과 이석재 PD님을 응원하다가, 지수 작가님과도 인친이 되었어요. 지수님 피드에서 얼마 전 찬란 작가님 사연을 접했어요. 달리기, 글, 책, 스레드, 인별, 아픈 사연, 용기, 빛, 별, 응원, 희망. 모두가 별자리처럼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작가님. 스레드에 와주셔서 기뻐요. 뜨겁게 응원합니다."
25년 6월 5일. 찬란 작가님이 첫 스레드를 올렸다.
"안녕 난 브런치 작가야, 글쓰기를 좋아해. 진부하다 해도 사랑과 용기, 희망의 힘을 믿고 있어. 성범죄 후 회복과정에 대한 글을 쓰고 연재하고 있어. 제목은 ‘대기업, 성추행, 그리고 나’야. 이곳엔 처음 왔어. 정신없지만 재미있어.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댓글을 달았다.
"눈부신 찬란 작가. 안녕? 며칠 전 인스타에 뜬 지수님 글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 소개된 스친 이야기와 브런치스토리를 보고 멍하니 있다가 스레드에 글을 남겼어.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 오래전 군대에서 겪은 일과 밤하늘 별이 떠올랐지. 남자. 마초. 24시간, 365일. 어쩌면 감옥 같았던 공간. 그럴수록 밤하늘의 별은 정말 아름답더라. 스치니는 사람들의 별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아. 스니와 나, 우리는 별이야. 찬란 작가의 빛은 한순간도 꺼지거나 어두워진 적이 없어. 오히려 어둡고 차가운 밤에 더욱 환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음을 기억해 줘. 용기 내어 좁은 문을 열고 빛에서 빛으로 달려가는 스니가 참 고맙고 고맙다. 스닌 스니의 삶으로 우리를,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을 비추고 빛으로 이끌 거야. 이곳에 스니의 별을 띄워줘서 고마워. 너무 강해지려고 하진 마. 편하고 즐겁고 웃긴 이야기도 나눠줘. 힘을 빼고 즐겁게 써도 된다고 누군가 내게 말했어. 그 이야기가 무겁더라도. 알겠지? 고마워."
그 인연 후 4개월 만에 브런치 10주년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가 100명의 글을 뽑아서 전시한다는 이야기도. 브런치 목 따러 왔다가 4수 만에 겨우 들어온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침 첫 브런치북을 쓰고 있어서 4수생의 반란을 꿈꿨다.
어떤 글을 브런치 10주년 기념글로 응모할지 이미 계획이 섰다. 브런치 4수생이 결국 장외투쟁으로 투고해서 먼저 출간계약을 한 뒤 그 투고내용 그대로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도전해서 결국 브런치 작가로 설정된 역전 스토리였다. 제목은 "넌 아직 브런치 작가도 아니잖아?"
8월 말부터 "무조건 작가 되기"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다.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하려 10월 초까지 완결을 목표로 쓰고 있었다. 문제가 있었다. 내가 찜해놓은 그 글이 아직 올라올 때가 아니었다. 30편짜리 장편 브런치북의 목차 상 마감날까지 그 에피소드가 먼저 나오면 책의 목차가 꼬이고 예상했던 흐름과도 맞지 않았다.
결국 브런치 10주년 기념 전시에 나는 브런치에 두 번 떨어지고 난 후 분노의 브런치 앱 삭제 후 "오늘 나는 브런치를 넘어선다."라고 다짐하는 글로 응모하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다가 홧김에 앱을 지우고 난 브런치 아니라도 글 쓸 곳 많다는 심정으로 인스타그램에 넘어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브런치 10주년 기념 전시에 맞는 감동적인 글이 아니지 않은가? 알면서도 마감일에 쫓겨 제출 버튼을 눌렀다. 당연히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조금 실망했다. 최근 100일간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주제도 일관성이 있었으니까. '에잇. 또 불합격인가.' 잔뜩 기대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꼭 가보겠다는 마음이 옅어지고 있었다. 그때 찬란 작가님도 홍콩에서 전시회에 맞춰서 서울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렸다. 10월 18일 토요일 오후 1시. 홀린 듯 가서 인사드리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마라톤 대회에 뛰지 않아도 응원하러 새벽에 나서는 그 마음처럼 따뜻한 마음을 장착하고 달려가기로 했다.
드디어 D-day다. 10km를 뛰고 와서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2시간. 혹시 내 책을 가져오셨으면 사인을 하려고 펜을 가방에 챙겼다. 오늘 꼭 가겠다고 DM을 보냈는데 작가님이 홍콩에 책을 두고 오셨다고 했다. 마음을 전할 길은 없을까? 예전에 책을 내고 도장을 새로 만들면서 받은 책갈피가 생각났다. 그 뒤편엔 간단한 메시지를 쓸 공간이 있었다. 책에 사인을 못하는 대신 책갈피에 사인을 해서 드리기로 했다. 빈 공간에 글을 써 내려갔다. "찬란 작가님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될 거예요." 가슴이 따뜻해졌다.
경복궁역 도착, 브런치 10주년 전시장에 들어섰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숨죽이고 있던 수만 명의 뜨거운 삶이 자음과 모음을 뚫고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쏟아지는 듯 벅찬 느낌을 받았다. 촛불모양 스티커가 놓여있었다. 브런치 10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생일케이크가 그려진 벽면에 붙이는 시간이었다. 브런치에 남길 축하메시지를 촛불에 쓰고, 찬란 작가님께 줄 메시지를 또 하나의 촛불 위에 담았다.
찬란 작가님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첫 글에 적었던 스레드와 sns를 통해 서로를 댓글로 만났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어렵게 만난 작가님 사인을 받고 싶었다. 아까 준비한 촛불 스티커와 책갈피를 선물하고 빈 촛불 스티커를 내밀었다. 그 위에 찬란 작가님의 글과 사인을 부탁드렸다.
'무명독자' 작가님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아헤브' 작가님과도 우연히 만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찍고 다시 혼자가 되어 브런치 전시공간을 차분히 돌아보았다. 전시된 100개의 글을 하나씩 읽으며 사진을 찍었다. 송지영 작가님의 글도 소중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말이다." 그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스레드에서 송작가님을 찾아 브런치 10주년 전시 글에 댓글을 달았다.
"지금 전시장에 왔어요. 송지영 작가님 글은 사진이 아닌 영혼에 담았어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과 작가님의 글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살릴 거예요. 고맙습니다. 작가님은 우리들의 용기예요."
브런치를 통해 나온 책들이 꽂힌 책장을 보며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 많은 꿈과 귀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왔구나. 얼마나 소중한 자리이고 기회의 장인지.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었을까.
내 글이 오늘 전시회에 뽑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글 하나와 만나지 못했을 테니. 내 글이 있다는 걸 알리기 바빠서 오늘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온전히 누군가를 응원하지 못했을 테니.
뿌듯한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나오는데 포토존이 있었다. 작가의 서재처럼 꾸며놓은 화사한 공간. 햇볕이 들고 밝고 예쁜 공간이었다. 브런치 스태프 분이 찍어주시겠다고 해서 자리에 앉았다. 찍어주시는 분이 "진짜 잘 나왔어요."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오기 전날 프로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는데 순수하게 응원의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프로필 사진처럼 멋진 사진 선물을 받게 되다니...
별자리를 찾는 어른의 마음으로 이곳에 섰다.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작가님을 만났다. 나는 오늘 브런치에서 빛나는 별들을 만났다. 그 별 하나하나를 내 영혼에 새기고 왔다. 도전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준 나의 달리기와 나를 달리게 해 준 시간들을 떠올렸다. 나도 당신처럼 누군가의 꿈을 환하게 밝히는 촛불이... 밝은 빛을 내는 별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