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 말한다. 하지만 운 좋게 올라타는 게 정답일까? 의문이 들었다.
먼저 고백 하나. 올해 3월 책을 내고 2주 정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상승세가 꺾였다. 홀로 애쓰며 도배하듯 sns에 알렸지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졌다.
그즈음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에게 무료강의를 들었다. 그는 책을 내며 자신을 브랜딩 해서 7만이 넘는 팔로워의 자기 계발 멘토로 자리매김한 사람이었다. 책을 낼 때부터 자신을 브랜드로 설계하고 전략적으로 포장하는 그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돋보였다. 왠지 영향력이 큰 그가 내 책이 좋다고 피드에 띄워주면 내 책도 7만이 넘는 그의 팔로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기로 했다.
출판사에 투고메일을 보내듯 그의 강의후기를 꼼꼼하게 적고 그의 피드에 댓글을 달았다. 30분은 족히 썼을 정성스러운 댓글이었다. 감사와 칭찬, 그리고 내 책 제목을 적었다. 그의 강의 덕분에 흔들림 없이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적었다. 오버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적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강의후기는 감사히 받되, 부담스러운 책 이야기에는 차갑게 선을 그었다.
"그 책은 러너인 작가님이 애써서 쓰신 거니 저와는 관련이 없죠. 애쓰신 본인이 칭찬받으셔야죠."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내가 투고하고 퇴고하고 책을 내는데 그는 아무런 도움을 준 사실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인의 어깨에 무임승차하려는 생각을 지웠다. 어깨에 올라타면 물론 손쉽게 높은 곳에서 멀리 갈 수 있다. 마치 내가 거인이 된 듯 우쭐한 마음으로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그 거인의 어깨는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그 7만이 넘는 팔로워는 그의 어깨였지 나의 어깨는 아니었다.
나는 날개가 필요했다. 7만 인플루언서인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지만, 나는 낮은 어깨에서 2,000개의 깃털이 솟아나 커다란 날개가 되어 하늘을 자유로이 훨훨 나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거인보다 더 높게 더 멀리 푸르른 창공을 나르는 이카루스처럼.
책이 인플루언서 피드에 오르면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방법은 아니라고. 거인의 어깨는 진짜 나의 어깨가 아니다. 어느 순간엔 잘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그에게 댓글 두 줄로 팔로우와 관심을 구걸하던 그날, 아니 구걸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던 그날 나는 가슴에 새겼다. 프로가 되겠다고. 아니 나는 이미 프로작가라고. 돈을 받고 책을 파는 이상 팔로워 수나 판매부수와 관계없이 난 프로 작가라고 속삭였다. 조금 덜 팔릴지언정 팔로워가 많고 거인처럼 보이는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구걸하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누군가의 성공을 연구하고 그의 장점을 배우고 따라 하는 것과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쉽게 남의 영향력을 빌리려는 시도는 본질부터 다르다. 나는 거인의 장점을 배우되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려는 가난한 마음을 거부하기로 했다.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는 시도를 관두기로 했다.
당신은 모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달리고 같은 시기 책을 낸 작가들의 북토크에 다녔는지. 가기 전날 내 책을 내가 주문해서 얼마나 정성껏 손 편지를 책 겉표지에 써서 타인의 북토크에 다녔는지. 그건 거인의 어깨에 무임승차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비굴하게 무릎 꿇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는 당신이 낸 책 이상의 책을 쓴 작가이고 당당하게 홀로 서서 당신과 함께 나란히 달리고 있는 작가로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홀로서기는 둘이 만나 홀로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출간 후 맨바닥에서 홍보를 하고 무작정 세상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나를 세상에 보이며 배웠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려고 애쓰는 게 답이 아니라 내가 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호랑이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행세하는 여우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영향력 있는 누군가에게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억지 미소를 짓는 내가 아니라, 2,000명이라도 나를 믿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 도전을 멈추지 않는 뜨거운 삶으로 용기를 주는 나, 러너인 작가 정승우가 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거인의 어깨를 꿈꾸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거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