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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강연, 프로가 된 날

by 러너인

새로운 도전의 첫날이다. 강연자로 무대에 선 첫날. 아마추어와 프로, 두 개의 강연이 하루에 잡혔다. 1차로 도서관에서 오전 9시 반부터 11시까지 1시간 30분간 재능기부 강연을 진행하고, 2차로 자리를 옮겨서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러닝 인문학 강연을 진행했다.

도서관 재능기부 강의는 내가 도서관에 부탁해서 잡은 무료강연이지만, 경기도인재개발원은 담당 주무관님께서 올 6월 북토크 소식을 우연히 보시고 요즘 핫한 러닝 추세를 감안해서 먼저 연락 주신 유료 강연이다. 오전 강의는 아마추어의 첫 강의, 오후 강의는 프로의 첫 강의다. 오늘 모든 강연이 각자의 처음이다.


기회는 간절한 시도에서 나온다. 운이 좋아서 눈에 띈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도인재개발원 담당자분이 확인한 6월 북토크 소식은 사실 내가 발로 뛰며 도서관에 직접 전화해서 행사 담당자 메일주소를 받은 뒤 정성껏 제안서를 써서 만든 기회였다.


처음 강의를 준비할 때 처음엔 막막했다. 책이 나왔음을 알리는 북토크와 강연은 달랐다. 북토크가 동료작가들이나 가족, 가까운 지인들이 오는 자리라서 아는 분들이 절반 이상인 축하파티 같은 분위기라면, 강연은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아닌 책의 내용을 가지고 1~2 시간 분량의 강연을 이어가야 했다. 이야기할 주제가 명확해야 하고 강연을 끌고 가는 흐름이 있어야 했다.


오전, 시민 대상 도서관 강의 인트로는 언젠가 들었던 어느 작가님 강연 이야기로 시작하기로 했다. 가족의 사랑으로 위기를 넘겼다는 훈훈한 이야기였지만, 그때 나에게는 답을 주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넣었다. "어느 작가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시기를 가족의 응원과 지지로 이겨냈다는 이야기였죠. 저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약 그때, 가족조차 위로가 되지 않았다면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셨을까요? 그 질문의 답을 오늘 제 이야기로 전하려고 합니다."


오전 9시 30분, 도서관 강의가 시작되었다. 총 16분이 참석해 주셨다. 도서관 강연 때 브런치로 알게 된 지영 작가님과 책과 강연으로 알게 된 리치온 작가님께서 남편과 함께 오셔서 기뻤다. 어제 연습한 멘트로 강연을 열었다. 강연에 집중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더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공무원 대상 교육 연수는 유료 강연이라 부담감이 컸다. 담당자분께서 팁을 주셨다. "강의하실 때 호응이 없을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마세요." 강의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정공법? 어차피 억지로 듣는 연수라서 벌 받듯 앉아있는 상황이라면, 아예 대놓고 그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공무원 대상 강의 인트로에 이 이야기를 넣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공무원 분들 대상 강의는 반응도 없고 표정도 없고 호응도 없을 거라고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제가 달리기 전 세상에서 가장 영혼이 없이 살던 사람이었거든요." 아예 대상을 정조준하면서 시선을 끌며 정면 돌파했다.


1부는 번아웃된 나를 회복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 배 나오고 의욕 없는 어느 45세 남자가 우연히 달리게 되고, 셀카를 찍고 금기로 여긴 레깅스를 입고 달리며 조금씩 거리를 늘여서 달리게 되고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과정을 그렸다. 즉, 어느 지친 중년 남자가 러닝을 통해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는 모습을 함께 따라가도록 1부를 구성했다.


2부는 혼자서 뛰고, 온라인으로만 만남을 가졌던 소극적인 1부와는 달리 러닝클래스에 나가서 진짜 사람들과 만나서 훈련하고 대회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얻는 기쁨을 그렸다. 자기 안에 숨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도전하는 이야기였다. 결국 오디오북을 통해 소리로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 나를 사랑하고 나로 살기 위해 뜨겁게 달리는 내용까지.


1부는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이었다면, 2부는 함께 도전하며 세상으로 나가가는 과정을 담았다. 시간 조절을 실패할까 봐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충분히 시간을 잘 컨트롤해서 쉬는 시간 15분도 잘 지켜서 진행할 수 있었다. 점심을 거르고 오전 1시간 30분을 서서 강연하고, 또 이동해서 2시간을 서서 강연하고 나니 힘이 탁 풀렸다.


사실 강연 중간중간에 퀴즈를 내어 책을 선물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퀴즈를 낼 상황은 아니어서 지켜보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2시간의 강연동안 가장 눈을 맞추며 잘 들어주시는 분이 계시면 끝나고 책을 선물하기로 했다. 두 분을 찾았다. 강연을 마치고 책을 드리고 사인을 했다. 근처에 사신다고 하고 러닝클래스에 관심이 있다고 하셔서 언제든지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면 전화 달라고 했다.


그 말은 틀렸다. 공무원 분들이 표정이 없고, 반응도 없고 표현도 없다는 말은 틀렸다. 오늘 내가 본 그분들은 집중해 주시는 모습이 많이 보였고 그중 정말 몇 분은 도서관 강연 때처럼 나와 눈 맞추고 웃어주고 공감해 주시는 모습에 용기를 내어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새로운 글쓰기 100일 수련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백일백장 글쓰기 도전 첫날이기도 하다. 첫날, 첫 강의. 나는 오늘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것이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준 단 하나의 가르침이다. 도전하고 도전하고 도전하라고.


P.S 오늘 두 개의 강연을 잘 해내고 싶어서 새벽에 나가서 언덕을 두 번 전력질주했다. 힘들어도 멋지게 해내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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