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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을 용기

그리고 다시 살아갈 용기

by 러너인

브런치 작가 모임에서 송지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서로 낯설었다. 출간 후 한참 내 책을 홍보할 때였다. 본인도 곧 책이 나온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넸다.
"제가 흙수저 작가인데 경험이 있으니 책 홍보 도와드릴게요." 작가님이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제가 쓴 책은 제가 나서서 홍보하기가 좀 그래서... 어쨌든 감사합니다."

"작가가 홍보하기 어려운 책이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송 작가님 브런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열 일곱 딸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의 기록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걸까. 홍보 잘하는 법이라니.
이 분께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작가님께 책 한 권 더 팔고 나를 알리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웠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 책은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읽고 알려야 하는 책이었다. 내 책처럼 번아웃을 빠져나와 세상으로 달려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영원히 열일곱일 소중한 딸을 떠나보내고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첫 번째 글을 읽고 두 번째 글을 읽다가 대학생 때 생을 끝낸 둘째 누나가 떠올랐다.

기말고사 때였다. 큰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승우야. 지금 바쁘니?"
"응, 내일까지 시험이라."
"그래, 알았어. 해줄 이야기가 있으니 시험 끝나면 전화해. 꼭."
"응, 누나. 내일 전화할게."
시험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나, 나야. 뭔 일인데?"
"승우야. 놀라지 마. 00 이가 죽었어."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믿기지가 않아서 처음엔 놀라지 않았다.
"진짜야. 어젯밤에. 어떻게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 지금 바로 서울로 올라와."

너무 큰 소식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누나를 떠나보내고 49재를 지냈다. 누나를 화장하던 날 같은 과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도와주러 왔다. 애써 안 힘든 척 꾸며내며 친구들을 맞았다.
"친구들아. 미안해. 쉬는 날 연락해서."
침통한 표정으로 친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야. 네가 제일 힘들 텐데..."
내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괜찮아. 금방 끝날테니 조금만 도와줘. 고마워."

나도 신기했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나는 아무 일이 없는 사람처럼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대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감정이 없는 냉혹한 사람이었나...?'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누나를 담은 화장터에 번호가 떴다. 누나 차례였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이번이 우리 누나 차례래... 우리 누나가 지금 저기에 들어간대... 엉엉.. 우리 누나 차례래..."

그때부터 슬픔은 현실이 되었다. 한 번 열린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누나를 떠나보냈다. 용기를 낼 틈도 없이 그렇게 하늘로 보냈다. 송지영 작가님의 책을 사고도 끝까지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책을 만지막거리다 첫 페이지. '여전히 열일곱 인 별이 된 너에게' 이 문구에서 수십 년 전 그날 밤으로 나는 돌아가 우두커니 서있다. 왜? 왜? 왜? 이유도 모르는 누군가와의 이별. 죄책감인지 뭔지 모를 이유로 그 기억을 애써 지우며 살았다.
누군가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 상처주기도 했고 가슴이 시린듯 아파도 말하지 못했다.

송지영 작가님의 책 "널 보낼 용기"를 읽으며 누나를 보낼 용기를 꺼낸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용기를 내본다. 아픈 시간을 꺼내어 곱게 접어 나비처럼 푸른 하늘로 날려 보내려 한다. 널 보낼 용기. 끝까지 읽을 용기. 다시 살아갈 용기. 이 책은 그런 책이다.

P.S 송지영 작가님의 책 "널 보낼 용기" 이 책이 한강 작가님 책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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