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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MI 몇 기가 쓰시나요?

by 러너인

모바일 데이터처럼 사람마다 일생동안 주어진 대화의 총량이 있을까? 있다면 내겐 얼마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글로 말하는 시간보다 직접 누군가와 대화할 시간은 갈수록 줄어드는 요즘이다.

업무적인 대화를 제외하면 말 한마디 없이 사는 날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말이 고프고 사람이 고프다. T.M.I. Too Much Information. 나는 말없이 살지만 가끔은 TMI다. 말할 기회가 생기면 솔직하게 나를 드러낸다.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가감 없이 나를 보인다.

17세기 작가이자 신부였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도 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손해 볼 일이 많고, 공격받을 확률이 커진다고. 때로는 독한 마음으로 TMI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보지만 돌아서면 그대로다.

나는 여전히 솔직한 글을 쓰고 마음의 말을 꺼낸다. 며칠 굶다가 고기뷔페에 온 사람처럼 배고픈 입을 닫고 살다가, 우연히 입이 열리면 TMI 하고 다시 입을 닫는다.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TMI다.

TMI에 관해 쓴 '무명독자' 브런치 작가님 글을 만났다. 이런 글이다. 사실 TMI는 죄가 없다. 아이스브레이킹. 가끔은 대화에 조미료가 되니 너무 TMI를 미워하지 말길. 건조한 일상에 TMI조차 없으면 너무 맛없는 일상이 되지 않겠냐는 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내어 누군가의 귀에 닿아야만 말이 되는 건 아니다. 무언의 표정과 행동, 비언어적 언어가 더 진실에 가깝다. 말할 사람이 없을 때, 정말 마음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없을 때, 아니 하고픈 말이 너무 무거워서 누군가와 나누기 버거울 때 눈처럼 가슴에 쌓이는 말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인 감정은 조금씩 스며 나온다. 입과 마음을 닫고 살면 마음에 병이 든다. 가슴을 차갑게 하다 보면 강해진 듯 하지만 결국은 얼음이 깨어지듯 한 번에 무너진다. 달리기를 만나기 전에는 입을 꾹 닫고 강해져야만 한다고 다그치며 살았다. TMI는 꿈도 꾸지 말라고. 너의 이야기에 세상은 관심 없고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고.

사람의 온기가 그리울 땐 달리기가 나의 TMI였다. 흐르는 땀방울이, 벅차서 흘리는 눈물이, 터질듯한 심장이 외치는 헐떡이는 숨소리, 그만 포기하고 멈추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와의 치열한 대화가 나의 TMI였다. 일그러진 얼굴, 세상을 다 가진 듯 활짝 웃는 표정, 진지한 표정, 규칙적인 발소리. 모든 몸짓이 TMI였다. 달리는 나 자신이 내 존재의 TMI다.

책이 작가의 TMI이듯 달리기는 러너의 TMI다. 눈물은 감정의 TMI다. 고통은 존재의 TMI다. 주로 위 러너들의 상기된 얼굴, 앞뒤로 흔들리는 팔,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에서 나는 각자의 TMI를 본다. 나는 살아있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무언의 TMI를 듣는다. 온몸으로 전하는 데이터 무제한 TMI를.

다시 한번 당신께 묻는다.

그래서, 요즘 TMI 몇 기가 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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