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언 방혜린 작가님
"마음에 알지 못하는 허기가 느껴졌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나를 위해 밥을 짓고 싶어졌다. 새 밥을 안치고, 미역을 불려 투 뿔 한우를 듬뿍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꼭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 올리브유에 굵은 대파를 깔고 고등어를 구웠다. 살면서 나 혼자 먹자고 나만을 위해 생선을 구운 건 처음이었다. 어쩌면 삶은 이렇게 아주 작은 것부터 나를 챙기는 일에서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닐까. - 지언 방혜린 작가, 브런치북 <집밥에 진심> 21화 중"
낭독 5일 차. 새벽 4시 10분에 지언 방혜린 브런치 작가님의 최신 글을 골랐다. 영양사이신 작가님의 글이라 레시피를 상상했지만 나를 위한 저녁이 시작되는 밤에 대한 글이라 반가웠다. 글을 읽으며 9달 동안 새벽마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공저에 들어갈 글을 쓰셨을 작가님의 치열한 나날을 떠올렸다. 퇴고를 마친 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오고 수십 년 간 가족을 위해서만 구웠던 생선구이를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새 밥을 안치고 미역을 불리고 한우를 듬뿍 넣은 미역국으로 내가 나를 대접하는 일, 내가 나를 위해 차리는 정성스러운 한 끼 식사. 수십 년 간 처음으로 내가 나를 대접하는 순간이 그려졌다. 글을 읽으며 이름과 눈인사로만 마주했던 방작가님이 얼마나 많은 새벽을 인문학 공부로 보내셨는지, 일과 역할을 쪼개어 구슬땀을 흘리셨을지 그려졌다.
나도 올해 첫 달리기 책을 출간하며 24년 한 해를 치열하게 보냈다. 첫째가 고3, 전세가 안 나가서 몇 달을 애태웠고, 직장은 10년 만에 종합감사를 받았고 나는 실무담당이자 팀장이었다. 한 달 넘는 투고의 과정 끝에 출판사와 계약한 순간은 마치 베스트셀러를 낸 듯 기뻤지만, 사실 계약은 시작도 아니었다. 내용을 봐줄 사람이 필요해서 87세인 어머님께 부탁하여 주말마다 빵집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6개월이나 퇴고를 거듭했던 시간들. 일하고 돌아와 졸면서 퇴고하던 시간들이 생생하다.
퇴고의 끝무렵,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더 이상 원고가 보기 싫었다. 새벽 1시가 넘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자려고 누웠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딘가 단어 표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짜증이 밀려와서 툭 쏘아붙였다. "이제 그만하시죠. 끝도 없는 것 같아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충분히 고쳤잖아요."
엄마가 차분히 말했다. "일하며 책을 쓰고 퇴고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첫 책이고 할 때 제대로 해야 된다. 내 나이가 올해 87이다. 눈도 아프고 금세 지친다. 아직 정신이 있어서 네 글을 봐줄 수 있지만,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 노력과 시간이 아들인 네게 주는 나의 마지막 유산이라는 생각으로 잠을 줄여서라도 계속 보고 고치고 있다. 너도 최선을 다 해라."
말없이 전화를 끊고 한참을 자리에 앉아있었다. '엄마의 유산'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어쩌면 이 책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내가 썼지만 엄마와 같이 퇴고한 엄마의 유산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퇴고를 시작했다. 방작가님의 글을 낭독하며, 지금 쓰신 '엄마의 유산'이라는 책 제목, 편지글을 상상하다 그날 그 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9달의 새벽, 인문학과 씨름하며 써 내려가신 글이 궁금해졌다. 영양사로서 엄마로서 고된 일상을 버티게 해 준 힘, 윤회의 늪 같은 퇴고를 끝마치고 몰려온 허기를 채우려 정성스럽게 차려낸 미역국과 고등어구이. 작가님이 한 술 뜨며 환히 웃었을 그 '왕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고 싶어졌다. 그래서 낭독과 오늘 글로 그 귀한 밥상에, 앞으로 세상을 비출 책 '엄마의 유산'에 응원의 마음 한 숟가락을 가만히 놓아본다.
P.S. 낭독영상은 댓글에 둘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