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내 물건을 가져보지 못했기에 스무 살에 처음 내 돈으로 책상을 샀다. - 명랑처자의 말말말-" 오늘 명랑처자님 글을 낭독하며 나에겐 무엇이 처음 내가 나를 위해 해준 선물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물건들이 떠오르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준 건 '옷'이다. 5년 전 달리기를 만나기 전 잔뜩 불은 몸으로 어머니를 만난 날 어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쏟아냈다. "넌 나이가 아직 40대인데 왜 그렇게 아무거나 막 입고 다니냐? 몸매에 맞게 바지도 입고 관리도 좀 해야지." 내가 볼멘소리로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젠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요 뭐."
그날 결국 어머니의 손에 끌려 어느 가게에서 바지를 하나 샀다. 극구 싫다고 짜증 내는 나의 몸부림에도 어머니는 기어코 나에게 바지를 사주셨다. 스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바지는 펑퍼짐하지 않았다. 살찐 몸을 가려주면서도 몸매를 살려주는 맵시 있는 바지였다. 집에 와서 거울에 비춰보며 바지가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의 말이 한참 귓가에 남았다. "80넘은 나도 비싸지 않더라도 색감이 어울리게 스타일링하며 다니는데, 너는 나이도 한창인데 왜 그러고 다니냐. 신경 좀 써라." 잘 보일 사람도 없다고 했던 말이 부끄러웠다. 가장 잘 보일 사람은 내가 아닐까? 그때부터 내가 직접 속옷도 사고 작은 것부터 나를 위해 챙기기 시작한 것 같다.
명랑처자 작가님이 자신의 존재를 새길 책상을 스무 살 자신에게 선물했듯 나는 다시 태어난 마흔여섯 나에게 첫 선물로 옷을 선물했다. 그 작은 선물이 내면을 변화시키고 변화에 대한 작은 씨앗이 되었다. 남들이 아무렇게나 쓰고 싶은 대로 쓰던 낙서장 같은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글씨를 새기는 작가로서의 삶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달리기도 그렇다. 발로 대지 위에 글씨를 새기는 행위. 똑같은 땅이지만 주체적으로 달리기 전에는 남의 책상처럼 수동적인 공간이었지만 두 발을 딛고 달리겠다고 마음먹고 나가서 뛰기 시작하면 땅은 더 이상 수동적인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쓰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상 위에 글을 새기듯 나는 두 발로 대지 위에 존재의 발자국을 남긴다. 작가로서 가상의 책상은 브런치 같은 자기만의 SNS 공간이 아닐까. 자극적인 쇼츠와 이야기들 속에서 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공간의 주인이 되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스무 살 명랑처자님의 첫 책상처럼, 오늘 나에게 어떤 좋은 생각을 입혀줄지, 어떤 좋은 것으로 세상과 나눌지, 진정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생각해 본다. 지금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공간이 나를 위한 또다른 책상이니까.
P.S. 낭독영상은 댓글로 나눕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