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Little kitty 작가님 글 낭독
"행동에서 시작된 문제지만 존재 자체가 비난받을 때, 아이들은 수치심을 키워간다. 수치심은 감정의 심연으로 내려가지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공격성으로 고개를 쳐들 수 있다. - sweet little kitty 작가님/매거진 아이들을 키우는 느린 삶/교실에서 일어난 일(선생님이 째려보고 계시니 조용히 하세요)"
초등 6학년 과학교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평소 자주 선생님 말씀을 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지적을 많이 받던 학생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려는 의도로 한 말로 오히려 크게 혼났다는 이야기다. 소리 내어 글을 읽으며 나도 비슷한 시기 수십 년 전 교실의 장면이 떠올랐다.
나 역시 초등 6학년 과학시간이었다. 선생님은 625 전쟁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신 국가유공자셨다. 멀고 가까움에 대해 누군가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두 눈이 있어서 멀고 가까운 걸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표정이 일그러지며 그 친구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게 말이 되냐? 나는 지금 한쪽 눈으로도 잘 보고 이렇게 구분이 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화를 내시며 나무라는 바람에 수업은 정신없이 끝났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기억만 남아있는 건 왜일까? 아마 트라우마에 빠진 생각은 이성적인 판단을 흐린다는 것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역린(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트라우마가 있고 역린이 있다. 가족이 가장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이유는 누구보다 서로의 역린을 잘 알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나눈 사람일수록 어디를 눌러야 정말 아픈지 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이와 멀어지는 경험은 존재를 아프게 한다. 서로의 행동을 비난하다가 더 상처를 주기 위해 상대방의 역린을 건드리게 되고, 역린을 건드려진 상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진다. 결국 다툼의 원인이 된 행동을 넘어 존재를 비난하고 미워하다가 무시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작가님의 글이 단순히 교실 현장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싶지만 존재를 부정하고 살기도 한다. 달리고 쓰기 전에는 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말과 행동, 의도와 표현, 상처와 치유. . . 이 주제는 50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어렵고 어렵다.
모든 원인을 나로 향하게 하는 것이 치유의 조금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하와이에서 내려오는 치유법 '호오포노포노'를 좋아한다. 지금 현실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과거로부터,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조상과 우주의 기억이 무의식에서 재생되고 있다는 말. 그 말을 깊이 새기게 된 건 현실에서 높은 관계의 벽을 만났을 때부터였다.
나 자신을 정화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헌혈을 하고 공중화장실에서 변기 뚜껑을 열어두는 일, 분리수거장에서 다른 이가 흘린 쓰레기를 줍거나 작은 일을 하나라도 실천하려고 한다.
더 나은 내가 되고 나를 치유하다 보면 현실도 더 친절해지리라 믿는다. 나부터 나를 째려보지 않고, 문제를 부정하기보단 문제의 원인이 되는 나를 용서하고 치유하는 것.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존재 너머의 기억을 용서하는 중이다.
https://brunch.co.kr/@kitty/307
P.S. 낭독영상은 요기 둘게요♡
https://www.instagram.com/reel/DSI-8CIk1WD/?igsh=MmJqdGVxZTRoMnQ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