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을 지나 다시 펜을 들며(이사벨라 작가님)
새벽 4시, 이사벨라 작가님의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새벽 1시간을 쪼개어 평소 감사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시간은 지금 나에게는 작은 도전이고 또 감사의 기도와 같다. 내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다른 작가님들 글을 잘 읽지 못했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려고 계속 앞으로만 달려온 게 아닐까. 지난 100일간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는 작고 기쁜 일도 있었다. 송지영 작가님 북토크에 다녀와서 이어진 브런치 작가님들 모임을 통해 작가님들 글에 관심이 생겼다.
브런치에서 구독자가 관심작가보다 많기를 바라고 자신의 글에 좋아요가 많아지고 메인에 걸리기를 바라는 마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기를 얻고 관심을 받으려는 것, 이름을 얻고 유명해지는 것, 나를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 아마도 그것이 브랜딩이고 sns가 속삭이는 달콤한 맛이다.
나 역시 그것이 정답이라 여겼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출간과 동시에 앞으로만 달렸다. 언제나 누군가는 더 앞에 있었고 비교할수록 작아졌다. 마치 판매부수와 구독자수가 많을수록 좋은 글, 더 나은 작가인 듯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매번 부족한 글을 올리면서도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분들의 정성스러운 시간과 고마움을 단순히 좋아요 스물몇 개가 달렸구나 하는 작은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 단 10권이 팔린 책이라도 그 뒤에는 소중한 열 분의 마음이 있다. 몇 천 부, 몇 쇄도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작은 숫자에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함께 얼굴을 맞댄 인연으로 이어진 브런치 작가님들 열 분의 글을 소리로 만났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평소 새벽 5시나 5시 30분에 일어나던 시간을 새벽 4시 10분으로 당겨야 했다. 세상이 잠든 시간을 목소리로 깨우려면 조금 더 고요한 새벽이 필요했다. 브런치에 입성한 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글을 쫓기지 않고 가만히 읽어보았다.
처음엔 그냥 짧게 읽으면 되는 일이니 뭐가 문제일까 생각했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릴스로 올릴 생각이라 주어진 낭독시간은 최대 3분. 그중 1분 30초는 작가님 글 소개, 30초는 작가님 소개, 나머지 30초는 나의 이야기로 구성했다. 1분 30초에서 2분 사이에 누군가의 글의 핵심 구절을 정리해서 낭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버벅거려서 다시 녹음하고, 읽다가 너무 길어져서 다시 문장을 스킵하며 읽기도 하고, 버벅거린 부분을 다시 읽고 편집하며 잘라내는 과정. 나의 글을 시간 내어 읽어주신 작가님들이 어떤 분들이고 어떤 글을 쓰고 계신지를 소리 내어 만나는 일은 그럼에도 행복했다. 작은 나를 넘어서는 시간, 2분 30초의 녹음을 위해 1시간을 써야 하는 비효율의 시간.
AI 시대에 나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일을 시작했다. 자청의 역행자가 세상의 느린 접근방식을 역발상으로 통렬하게 비판하며 남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치고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지금 나의 낭독도 역행자다. 다만 그가 말한 효율과 성취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AI가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시간에 나는 버벅거리며 누군가의 글을 읽고 목을 가다듬고 다시 녹음버튼을 누른다. 작가소개를 읽고 나의 목소리로 전해본다. 그가 쓴 글의 소리를 듣고 입으로 전한다. 지난 시간 받은 좋아요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듯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조금씩 천천히 소개해보려 한다.
효율보다 마음을 전하는 일. 가장 느리게 읽는 아날로그 방식인 낭독처럼. 누군가에게 또 나에게도 선물이 되는 시간. AI가 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나는 시간을 들어 바보처럼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시간 내어 무용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처럼.
[이사벨라 작가님 원문]
https://brunch.co.kr/@d2e0c592de39427/180
[러너인 낭독영상]
https://www.instagram.com/reel/DSQhpIVk6Oz/?igsh=MTExbTdrc2w2ejEwb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