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글 작가님 <걱정인형 엄마>
「사주를 보는 곳에 전화를 했다. “과연 아이가 대학을 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 평소에 하늘 무너질까 봐 걱정 돼서 어떻게 살아요?” 순간 웃음이 팡 터졌다. 사주에 보면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걱정이 너무 많다고 했다. 무사히 대학을 간다고 하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며 아이 성적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며 나는 한사코 그의 말을 부인했다. - 어쩌다 내 인생 해피엔딩일지도 : 걱정인형 엄마 / 소리글 작가」
회사일을 걱정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올해 처음 맡은 사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결산을 오류 없이 잘 마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년 4월 트레일러닝 대회와 회사일이 겹지치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뭔가 계획하는 것은 두렵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달래다가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새벽에 낭독할 작가님을 정하고 잠들기로 했다. 소리글 작가님이 눈에 띄었다. 나와 같은 에세이스트라 반가웠다. 가장 최근에 쓴 대학입시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아이의 성적이 걱정되어 사주를 본 일,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한 일, 정시로 대학에 가려고 준비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논술장으로 향하는 모습, 오전 오후 각기 다른 논술로 바쁘게 아이와 뛰어다니는 장면, 발을 동동 구르며 오토바이에 아이를 태우는 장면, 결국 꿈같이 논술로 대학에 합격하는 소식, 부둥켜안고 울던 아이와 소리글 작가님. 그 장면들이 한 편의 기억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올해 큰 아이가 대학교 1학년. 작년에 고3을 겪었다. 자기 나름의 시간표와 계획을 가지고 잘해나가고 있던 아이가 5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 들고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교 후 스터디카페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니 데리러 오라는 말도 사라졌다. 스터디카페를 바꿨다고 했지만 입을 꾹 닫기 시작했다. 불안했지만 잔소리가 될까 싶어 눈치를 살폈다. 어느 날 불쑥 “나 자퇴하고 기숙학원 가서 공부할래.”라고 고집을 부려서 가까스로 말렸다. “올해는 틀렸으니 재수할 거야.”라고 무표정하게 말을 꺼내는 아이와 “재수를 하더라도 수능은 치고 경험은 쌓는 게 좋잖아.”라는 나. 여행이라도 가면 나아질까 싶어 바쁜 회사일을 뒤로하고 오키나와로 단 둘이 향했던 시간들. 결국 불안한 마음에 잔소리하다 안고 울기도 했지만 다녀와서도 달라진 모습은 없었다.
출간을 코 앞에 두고 퇴고에 한창일 때였다. 이까짓 책이 무슨 소용인가.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데... 걱정이 커졌다. 혹시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땐 두렵고 아팠다. 걱정만 하던 나를 붙들어준 장인어른 덕분에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모든 과목을 잘 보지 않아도 선택한 2~3 과목으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글 쓰는 데 소질이 있는 아이를 수시 논술장으로 향하도록 이끌기도 했고 소리글 작가님처럼 면접장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논술은 되지 않았지만 특별히 잘 본 몇 개 과목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다가 결국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아이는 다시 생기를 되찾았고 나는 몇 달 뒤 행복한 마음으로 첫 달리기 에세이를 출간했다.
며칠 전 아이가 1학년 수업을 마치던 날 톡을 보냈다. “아빠, 나 해부학 실습 뽑혔어! 성적순으로 뽑는데 잘 본 것 같아.” 딱 1년 전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번아웃이 왔던 나처럼 아무런 의욕도 없던 그날의 아이의 모습. 무조건 재수하겠다던 말, 자퇴하겠다던 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아이의 말에 걱정만 하고 애태우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처음에 계획했던 그림이 아니었지만 세상일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무지개는 사실 반원이 아니라 완벽한 원형이라는 소리글 작가님 글이 가슴에 남았다. 지평선 아래 가려진 절반의 무지개를 우리는 보지 못하고 산다. 걱정이 가리지 않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어느새 아이는 환하게 빛나는 완전한 무지개를 만날 거라고. 그러니 기다려주자.
걱정도 무지개와 같은 원형이 아닐까. 지평선 아래 가리어진 절반의 가능성을 찾아 묵묵히 가다 보면 만나는 반원의 빛나는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걱정인형 뒤에는 소중한 사랑과 관심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러너인 낭독영상]
https://www.instagram.com/reel/DSTLYahE1My/?igsh=Yzkwb2FsbWVtdmdl
[소리글 작가님 원글]
https://brunch.co.kr/@dramayoung/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