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훈련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면발의 쫄깃함처럼 코스의 쫄깃함이 훈련의 맛을 좌우한다. 30분 워밍업을 마치고 나면 어떤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게 된다. 사형수의 동요를 막기 위해 형 집행일자를 알려주지 않다가 어느 날 매번 지나가던 길과 다른 길로 가라는 안내를 받은 듯 코스를 알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나 매운 2단 언덕 코스다. 업힐이 1단, 2단으로 구성되어 2단 언덕의 끝에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는 구간. 자주 뛰다 보면 익숙해질 만 한데 여전히 새롭고 힘들다.
두 번째 언덕은 짧지만 경사도가 높다. 차라리 조금 빠르게 속도를 올리는 편이 낫다. 힘들어서 속도를 낮추면 오히려 언덕의 경사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해서 데이지가 크다. 고통의 법칙이다.
2단 언덕을 뛰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려오는데 '이 잔을 내게서’라는 성경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의 대목, ‘잔’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뜻한다.
이런 구절이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러너의 성경이 있다면, 힐트레이닝 편에 이렇게 쓰고 싶다. “코치님이여, 코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언덕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코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어제 코치님의 원은 최소 12회에서 많게는 15회까지 2단 언덕을 왕복하는 것이었고 나는 주어진 잔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다리가 잠기는 것도 있었지만, 호흡이 너무 차올라서 고통스럽다. 언덕을 비켜가게 할 수는 없지만, 내 몸을 지나가게 할 수는 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모습이 보이고 마음이 약해진다. 딱 10개만 할까. 죽겠는데. 이 잔을 10잔만 마시고 내 맘대로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9회전이 끝나고 언덕을 내려오며 그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이제 10회전, 나에게는 마지막 잔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아진다.
이상했다. 분명히 나보다 체력적으로 더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여전히 11개째를 향해 멈추지 않고 출발점으로 내려가고 있다. 쉬어야겠다는 약한 마음이 지나갔다. 다시 기도문을 쓴다. “달리기 신이시여, 신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언덕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같은 조 러너분들의 원대로 하옵소서.”
같은 조 다른 러너분들의 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였다. 나도 아까의 기도에 따라 같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발을 뻗었다. 11번째 언덕을 뛰고 내려올 때 기도가 응답받았다. 코치님의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씀. 맨 앞 서브 3조 분들이 빠르게 달려서 1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다 보니 우리 조는 12개로 시간이 맞춰진다.
기적은 일어난다. 달리기 훈련에도, 일상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도문을 다시 쓴다. “신이시여, 당신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시련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당신의 원대로 하옵소서”
함께 하면 기적은 일어난다. 고통의 잔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