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막 끝난 회사 2층 화장실은 이 닦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다. 왠지 그 시간에는 큰 일을 보기가 부끄럽다. 마치 남의 집 화장실에 실례하는 듯한 어색한 느낌. 피할 수 없어서 우연찮게 그 시간대에 문 잠그고 안에 있더라도 바깥에 인기척이 없을 때 비로소 해우소의 역할을 마친다.
조금이라도 이성의 힘이 남아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1층 화장실을 이용한다. 가끔 누군가 마주쳤을 때, "왜 2층 화장실을 안 가고 멀리까지 오셨어요?"라고 물으면 멋쩍은 웃음으로 "사람이 많아서요."라고 답한다. 가끔 2층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다가, 누군가 안에서 큰소리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소리를 들으며 언제쯤 나는 저렇게 용감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게 될까 생각해 본다.
소심. 세심. 내성. 내향. 이런 것도 내향인이 느끼는 생각일까, 아니면 내가 좀 특이한 걸까. 우왁스러운 남자들의 화장실에서 이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는 내가 가끔 우습기도 하지만 나이 50이 넘어서 무뎌져도 아직까지 내향인의 습성이 남아 있다. 부끄러움을 탄다는 건 삶이 피곤해진다는 말과 같다.
그까짓 소리 하나쯤이 뭐가 부끄러울까. 나오는 것을 나오지 않는 것처럼 참고 숨긴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데. 그래도 밖에 사람들이 모여서 양치질을 힘차게 하는데 뛰어들어 문을 닫자마자 힘차게 용트림하시는 분들의 패기와 터프함이 나는 아직 낯설다. 이렇게 간이 작은 나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데는 거침없으니 세상은 공평한 걸까?
달리면서 나보다 더 센 내향인들을 만난다. 몇 년을 만나도 물어보는 말 외에는 먼저 인사를 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는. 보통 잘 달리는 분들이 많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갈증과 욕망이 오롯이 달리기로 승화된 느낌이다. 가끔 그의 빠른 페이스과 그녀의 초장거리 속에 담긴 음악 같은 이야기가 그립다.
어쩌면 달리기는 누군가에겐 세상에 그리는 그림이고 세상을 향해 토해내는 이야기이고,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다. 가끔은 말하지 못하고 쌓여버린 똥덩어리 같은 감정들을 배출하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나도 화장실에서 인기척이 없을 때에야 힘주어 역할을 해내는 소심한 러너지만, 주로에 섰을 때, 글을 쓸 때, 강연장에 설 때, 뜨겁게 도전할 때 큰소리 내며 힘을 주어 세상을 달린다.
세상에 나보다 소심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한 두 사람쯤은 있지 않을까. 달릴 때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사람, 응어리진 마음을 화장실에 풀어내듯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당신.
그런 당신과 나에겐 달리기는 그냥 달리기가 아닌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고 표현수단이다. 그런 면에서 달리기는 내향인의 치트키가 아닐까? 외향인보다 얻을게 많은.
오늘도 화장실에 앉아서 인기척이 없을 때 비로소 힘을 주는 당신이 나는 좋다. 그 소심함과 부끄러움이 좋다. 진짜 부끄러운 건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삶이니까.
나는 달리지 않는 내가 부끄러워 달리고, 글을 쓰지 않는 내가 부끄러워 쓴다. 부끄러움 많은 나에게 달리기는 용기다. 지금 이 글처럼,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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