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 "생각을 바꾸면" 에피소드. 노래방 이야기. 평소 마이크를 놓지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노래방에서 앉아만 있어도 괜찮았는데, 어떤 모임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
노래를 못해서 안 한다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래를 하라고 다들 강요하는 상황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참고 참다가 결국 정색하고 이렇게 일갈했다. "너희는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난 왜 안 할 자유가 없냐?" 순간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작가는 돌아오는 내내 자신의 발언을 후회하고 자책한다.
좀처럼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왜 나는 노래를 못하게 태어났을까 속상해할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가 박완서 작가의 하소연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노래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그러자 노래만 빼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줄줄 떠올랐다고 했다. 새벽에 나와서 6:30 정도로도 힘들게 달리면서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웃음이 났다. '왜 이렇게 못 달리냐?'라고 묻는 머릿속 비평가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내가 달리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훈련을 하면서, 또는 더 빨리 더 길게 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자책하기보단 이 마법의 문장을 말해주자. "야! 네가 달리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뭔가 모래알만큼이라도 당신이 잘하는 게 있을 테니. 세상에 아무런 잘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박완서 작가님 방식에 더해서 그 질문을 상황에 따라 바꿔봐도 좋겠다. 예를 들어 글을 쓰다가 글이 잘 안 써지고 자꾸 새 책을 내는 사람들이 부러울 땐... 달리기를 꺼내는 전략이다. "네가 글쓰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넌 달리기는 전업작가들보다 낫잖아?"
러닝훈련이나 마라톤 대회에서 잘 달려지지 않거나 다른 이들이 부러울 땐 이렇게 말해보자. "네가 달리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넌 글쓰는 게 빠른 러너들보다 낫잖아?" 사실 러닝실력이나 글쓰기나 변변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 아닌가.
러닝 판에서 러닝이 모자라다 생각할 땐 글쓰기나 자기만의 장점을 떠올리고, 글쓰기 판에서 글쓰기가 모자라다 생각할 땐 러닝이나 자기만의 장점을 떠올리면 된다. 자책할 필요 없다. 형편없이 달린 날에도 웃으며 자신에게 쿨하게 질문을 날리는 자존감 높은 우리가 되자. "네가 달리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글을 쓰다가 더 잘 쓰고 더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넌 책 한 권만 냈잖아? 너는 매일 안 쓰잖아? 너는 몇 쇄까지 찍은 베셀작가도 아니잖아?' 라며 빈정대는 머릿속 톨스토이(?)에게 한 마디 톡 쏘아붙여주자. "그래? 내가 글쓰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
달리기든 글쓰기든 모든 일은 기세다. 기세를 꺾는 사람은 내 인생의 마이너스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 자신이 될 때 발전이 없다. 회계일은 처음 맡아서 힘겨워도 악착같이 해낸 팀원이 "저 최선을 다했는데, 틀릴 수도 있어요."라고 해서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괜찮아. 회계는 기세다!"
그렇다. 다 필요 없고 인생은 기세다. 느리던 빠르던 달리기도 기세다. 일을 잘하건 못하건 업무도 기세다. 기세를 꺾지 마라. 그런 사람은 멀리하고 자신이 그런 사람라면 자신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자책만큼 쓸모없는 일은 없으니까.
P.S. 페이스 6:30이면 어때? "네가 달리기까지 잘했으면 어떡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