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멘털 카본. <대회용 싱글렛 입기>
39km 최장거리 훈련날 새벽 5시. 오늘 뭐 입고 뛰지? 날이 더워서 반팔을 입으려다 바나나런클럽 싱글렛에 생각이 닿는다. ‘대회 복장으로 입고 뛰면 오늘 장거리 훈련을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여름옷상자를 뒤져 싱글렛을 꺼냈다. 싱글렛은 대회복장이다. 오늘 훈련은 대회를 뛰는 마음으로 뛰기로 했다.
두 번째 멘털 카본. <승리 포즈 셀카 찍기>
아파트 1층 입구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고 손을 번쩍 들어 파이팅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오늘 완주하고 이 사진에 기록을 입히기로 했다. 나와의 약속. 새벽 6시 훈련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 번째 멘털 카본. <내 말대로 살기>
장거리 전날 카보로딩 대신 달리기 동기부여 강연을 했다. 1시간 넘게 이야기하며 나 스스로 달리기를 통한 성취, 감사함, 도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전날 남들 앞에서 중년의 비운동인이 달리기를 만나며 체력의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19시간이 지나 달리다가 포기했다고 하면...? 내 책, 내 말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전날 풀코스 완주 꿀팁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한 내가 완주조차 하지 못한다면 민망하니까.
네 번째 멘털 카본. <내 책대로 살기>
내 책 Tip에 쓴 거리 축지법 활용하기. 광교호수공원 원천호수 1회전 3km를 3km가 아닌 1회전 = 1km로 가정하고 10회전 = 30km(X), 10km(O)로 계산해서 심리적 부담을 1/3로 낮추는 전략. 시계를 보지 않고 1바퀴를 소수점으로 계산한다. 1.5바퀴 째라면 1.5km를 뛰는 중이라고. 진짜 효과가 있었다. 10회전까지 멘털이 든든하게 버티는 힘이 되었다. 꿀팁 내가 먼저 실천하기.
다섯 번째 멘털 카본. <완주 표정 미리 짓기>
장거리 출발 전 바나나 러너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일부러 그때 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작년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29분 완주 후 세상 초연한 얼굴로 눈 감고 팔짱을 낀 채 미소 짓고 있던 완주 사진처럼. 파이팅 대신 눈을 감고 ‘춘마에서 완주 후 웃으며 찍었던 그 순간’을 상상했다. 그때 춘마 피니시처럼, 오늘 완주할 것이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단체사진 확대하면 혼자 눈 감고 있는 내 사진이 있다)
7시 30분, 풀코스 3시간 30분 바나나 열차에 탑승했다. 총 10명의 승객.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서 싱글렛은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 몇 바퀴는 제일 뒤에서 조심스럽게 뛰어본다. 리딩 선두조가 바뀌면서 앞에 나가서 뛰기 시작했다. 바람막이를 벗어던지고 뛰기로 했다. 바나나 싱글렛을 입고 뛰기 시작했다. 더 힘이 난다.
에너지젤은 출발 직전, 9km, 18km, 30km에서 각각 하나씩, 총 4개를 먹고 6km마다 급수를 했다. 에너지젤을 먹는 시점은 업힐을 내려올 때다. 회전 수로 거리를 줄여서 생각하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 생각 없이 뛰니 어느새 10회전, 30km가 지났다.
바퀴 수만 생각한다. 한 바퀴를 소수점으로 쪼개. 나무데크를 지날 땐 소수점 0.4km 지점이라고, 업힐을 지날 때는 소수점 0.9km 지점이라고 상상한다. 2회전마다 물을, 3회전마다 젤을 먹는다. 힘들면 지금 고작 2km 뛰었으니 절대로 힘들 수가 없다고. 너는 아무 때나 10km를 뛸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계속 1바퀴씩 쪼개서 계산하면서 뛰면 힘든 시간이 지나고 금세 30km가 된다.
열차의 끝, 마지막 2바퀴는 혼자다. 속도를 조금 당긴다. 전략을 바꿀 때다. 이제 2바퀴만 돌면 끝이다. 쿨다운 한다는 생각으로 뛰기로 했다. 마지막 1회전. 언덕을 오르는 다리가 묵직하다. 39km에 가까워질수록 데미지가 느껴진다. 드디어 마지막 언덕을 넘는다. 피니시라인을 지난다. 완주. 완주.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훈련 성공인지. ‘오늘 새벽 싱글렛 입기로 결심한 순간, 아파트에서 나오다가 승리포즈 셀카 찍은 순간, 책에 썼던 꿀팁을 달리면서 실천한 순간, 출발 전 단체사진 찍을 때 춘천마라톤 완주 포즈로 사진 찍은 그 순간 이미 39km 완주했다는 것.’
레디샷에 빠져서는 안 되는 건 '멘털 카본'이다.
내가 가야 할 목표를 이미 이룬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