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 아악. 쿵!" 잠실역 남자 화장실 대변줄. 이제 겨우 내 차례다. 갑자기 누군가 사색이 되어 뛰어온다. 문이 열린 곳이 없자 괴성을 지르며 벽에 몸을 세게 부딪힌다. 분명히 들어오면서 줄 서있는 나를 힐끗 보았는데 고통에 눈이 뒤집힌 듯 나를 보지 않는다.
일촉일발 상황. '저분도 오늘 대장내시경 건강검진 예약자인가?' 밤새 장세척제를 네 번 꼬박 챙겨 먹고 나온 나였다. 먹은 뒤 폭발 시간을 감안하여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당일용 2포, 1리터를 마셨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안심하고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왔다. 버스정류장까지 걷는데 그새 다시 신호가 온다. 위험해! 결국 상가 화장실로 몸을 비틀며 대피 후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내렸다.
수원에서 잠실역까지, 오늘 나는 완주해야 한다.
다행히 가는 동안 별 탈은 없었다. 드디어 장청소약도 약빨이 떨어졌나? 안심하며 개찰구에서 나오는 순간 기분 나쁜 신호가 폐부를 찌른다. '헉. 안돼!' 엉덩이 코어에 힘을 주며 다리를 꼰다. 겨우 버텨냈다. '빨리 화장실로 가야 한다.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걸음을 바삐 옮긴다.
코앞 건강검진 장소에서, 마지막 폭탄이 터졌다.
허겁지겁 달려간 지하철역 화장실. 변기가 있는 비밀의 문은 모두 5개. 만원이다. 문은 꽁꽁 닫혀 있다. 내 앞에 하나라도 문을 놓칠세라 철통경계를 서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제일 안쪽 좌변기 문을 민다. 문이 열린다. 급하게 들어가 문을 잠그더니 바지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달리고 을 그의 환한 미소가떠오른다.
또 한 번 쓰나미가 지나갔다.
엉덩이 코어에 힘을 주며 겨우 버틴다. '딱 한 번만 참자. 이제 내가 변기에 앉을 차례니까!' 바로 이 순간 아까 첫 줄에 등장한 '화장실 투우사'가 들이닥쳤다. '아니, 저 사람은 기다리는 내가 안 보이나?' 살짝 부아가 치민다. 하지만 투우사는 등장부터 무시무시했다. 거대한 몸으로 쿵쿵 달려와서 나를 제치고 비밀의 문이 모두 잠긴 것을 확인하곤 괴성과 함께 몸을 벽에 쿵쿵 부딪히기 시작했다.
화장실 보시.
화장실 차례를 더 급한 이에게 양보하여 이루는 궁극의 선.
나도 급했지만, 눈이 뒤집힌 투우사 분껜 투명인간과 다름없었다. 계속 신음소리를 내며 다리를 꼬다가 또 벽에 반복해서 몸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연민과 그의 절박한 분노 에너지에 나는 감히 내 자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오체투지 하듯 온몸을 던지던 근처 닫힌 문 안쪽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 문이 열린다. 누군가 나오자마자 투우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나도 절박했지만 생사를 오가던 그가 안심하고 천국의 시간을 누리는 장면을 상상하니 새치기당한 게 속상하지 않다.
고통 속에 피는 꽃은 아름답다.
사람 속에 피는 꽃은 더 아름답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화장실꽃> - 러너인 정승우
변 참기가 어려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지하철역 입구
화장실 줄에
비켜서서 가실 길을 열어드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문을
사뿐히 즈려밟고 들어가시옵소서
변 참기가 힘들어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