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책 쓴 줄 알았습니다

by 러너인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한 것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때문이라고 믿으면 미래의 실패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자신이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모험을 피하고,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시도하지 못한다. 결국 과거의 성공에 만족하며 창의력을 잃어버린 ‘안전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의 도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감사의 흐름을 실행하면서 생명의 근원을 당신이 이룩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동 기여자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후에도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 - 세상은 고통이다. 하지만 당신은 고통보다 강하다. p.244. - 필 스터츠,배리 마이클스 지음 -

우리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00 해서 00 했어. 어때? 멋있지? 나를 따르면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판매부수를 몇 쇄나 찍었다며 SNS에서 뽐내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왜 나는 저 정도로 인기를 누리지 못할까 하고 속상해한 적도 있었다. 제목, 표지, 목차를, 전문 편집인의 섬세한 편집, 조직적인 책 홍보 품앗이 네트워킹이 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바늘구멍 같은 순수 투고를 통해 내 돈이 아닌 100% 출판사 투자로 책을 낸 것에 자부심이 있었다. 100여 군데 투고로 기회를 얻었지만, 저자에게 일정부수의 책을 강매하는 시스템으로 책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투고로 책 낼 기회를 얻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지만, 책 출간 후 존재를 알리는 것이 더 힘들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고 나를 알리는 일은 쉽지는 않았지만 노력하면 조금씩 응답이 있었다.

혼자 달릴 때에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나중에 책을 내면 오디오북도 같이 내고 싶었다. 출판사에 여쭤보니 오디오북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밤새 지원서를 써서 선정되자 오디오북 제작의 문이 열렸다. 평소 좋아했던 가수 요조 님을 낭독자로 모셔서 녹음을 마친 일도. 그 용기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도서관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북토크를 하고, 그 인연으로 공무원 대상 강연을 하고, 도서관에서 재능기부 강연도 하고, 도서관과 연계된 기업 강연까지 출간 후 11개월 동안 총 네 번 강연 무대에 섰다. 종이책은 1쇄에 못 미쳤지만 꾸준히 거의 매주 1권 이상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고 오디오북은 밀리의 서재와 윌라에서 1천 회 이상 누군가의 귀에 닿고 있다.


운이 좋았다. 마흔여섯에 번아웃이 오지 않았다면, 그때 회사에서 집에서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던 내가 밖으로 나가서 달려볼 생각을 했을까.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어느 날 운명처럼 달리기가 내 삶에 들어왔다. 손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나를 보이는 것과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체를 힘들어하는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쓰게 되고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을 기록하면서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바나나 러닝클래스에 들어갔다.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더 행복하게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적응하지 못하고 2달 만에 그만둘까 고민하던 나였다. 그때 구석에 서있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신 분들이 아니었다면 계속 다니지 못했다. 성실하게 지도해 주신 코치님이 계셨고, 외로운 시간을 달리기와 글쓰기로 채우던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준 매니저님이 계셨다.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SNS를 볼 때마다 너무 글이 좋다고, 승우님은 글을 써야 한다며 엄마보다 더 많이 칭찬해 주신 분, 나에게 자존감을 알려주신 매니저님께 언제나 깊은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좋은 글을 우리 러닝클래스만이 아니라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보면 좋겠다고 아쉬워하시던 그분의 진심에 나는 언제나 고맙고 용기를 얻는다.


나는 러닝클래스에서 제대로 달리는 기술보다 내 삶의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나는 러닝클래스에 갈 때마다 작아지고 구겨진 용기와 자신감을 충전하고 다시 삶의 전선에 선다. 나를 삶의 작가로 만들어준 모든 경험과 소중한 사람들.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공저냐 단독저자냐, 자비출간이냐 기획출간이냐는 본질이 아니다. 몇 쇄를 찍었는지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걸렸는지도 본질은 아니다. 나는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진심을 다해 뛰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회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지금까지 내 손과 발, 노력으로 이 모두를 해냈다고 착각했다. 아니었다.


그때 출판사에서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내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었을까? 나를 처음 달리게 해준 힘든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을까? 그 경험을 생생하게 글로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 책과 강연장에서 나눌 수 있는 경험이 있었을까?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공저로 쓴 책이 혼자 쓴 책 보다 조금 덜 중요하다고, 몇 권 이상을 써야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공저자가 아닐까? 누군가 잘나고 뛰어나서, 그런 대단한 베스트셀러를 써낸 것이 아니라 그저 때가 잘 맞아서, 그간의 노력이 좋은 흐름과 만났을 뿐 아닐까.


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다. 마라톤 풀코스가 자신의 두 발로 뛰었기에 자기가 잘나서 완주했다고 착각하듯. 급수대에서 자원봉사자가 없었다면 중간에 물을 제때 마시고 달릴 수 있었을까. 주변에 부대끼는 수많은 러너들이 없었다면 그가 뛴 마라톤 대회가 열릴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 그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나 혼자 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뒤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책은 공저다. 한 사람의 삶도 그렇다. 달리기도 그렇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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