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업 특강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다면>

by 러너인

강연당일 아침, 스터디카페에서 발표자료를 고쳤다. 하루 뒤 39km 최장거리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강연의 초점을 어디에 둘지 고민이다. 20대에서 40대 초반의 직원 분들. 이 분들에게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맞을까? 달리지 않는 분들께 달리기를 통한 경험들이 와닿을까?’ 불안해질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네가 오리지널이니 그냥 네 이야기를 하면 돼.’

강연장으로 출발했다. 지하철과 버스로 2시간. 화성시 향남환승터미널에 도착했다. 픽업 나온 도서관 담당자님과 함께 기업체로 향했다. 지역활성화를 위해 마라톤대회를 고민 중이라는 면사무소 관계자도 오셨다. ‘판이 너무 커진 게 아닌가?’ 첫 번째 기업 특강.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기업 담당자님. 복도에 오늘 강연을 알리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계신 분들을 보니 낯설고 정감이 간다.

시작 전 담당자님과의 대화에 힘을 얻었다.
“저 작가님 책 다 읽었어요. 앞부분은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뒷부분, 특히 아버지 산소에 메달을 걸어드리는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전 오히려 뒷부분이 더 좋고 감동받았어요.”
“아! 끝까지 다 읽으셨군요. 사실 뒤에 러너의 마음. 우연처럼 필연처럼. 이 2개 장이 제 이야기를 더 깊이 쓴 부분이에요. 딸들과 새벽에 달린 이야기도요. 보통 제 책을 읽은 분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오늘처럼 뒷부분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는 말씀을 해주신 분은 처음이라 기뻐요. 제가 쓰고 싶었던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시작이 좋다. 마음이 편해졌다. 달리기에 관심 있는 직원 30~40명이 강연 대상이다. 어느 분 자리 위에 내 책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가 들려있다. ‘아! 여기 오신 분들은 이미 내 책을 읽고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는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안경을 쓴 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첫째 줄에 앉았다. 오후 12시 35분. 막 점심식사를 마친 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가장 졸리고 피곤한 시간, 몇 시간 후면 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귀한 시간.

강연 시작 전에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의 위로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열었다. 인트로는 거의 외울 정도로 입에 붙어있다. 빠르게 내용으로 들어갔다. 영혼을 잃고 살아가던 한 직장인이 달리기를 만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회사에서 흔히 부딪히는 부서 내 갈등. 사라져 버린 집에서의 존재감. 우연한 계기로 달리게 된 이야기. 외롭고 힘들 만큼 달리기에 깊이 빠져든 일. 내향인이 조금씩 세상을 향해 달리면서 SNS를 시작하고 글을 쓰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된 일 등.

작년 경기도 인재개발원 강의는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했지만, 오늘은 노트북 화면으로 어떤 내용인지만 확인하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3개월 만에 사람들 앞에 섰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맨 뒤에 있는 분들께도 눈길을 마주칠 수 있는 작은 여유도 생겼다. 첫 하프, 첫 풀코스, 첫 러닝크루, 러닝클래스 가입, 한라산 논스톤, 100k 울트라, 마라톤 자원봉사, 오디오북, 66세에 러닝을 시작한 90세 마라토너의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달라지기 위해 달리는 첫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1시간 10분의 강연을 마쳤다.

항상 쫓기듯 강연을 끝냈지만 오늘은 여유가 좀 있어서 QnA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질문, 맨 앞에서 경청해 주신 분이 질문을 던졌다. “런태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조금 더 상황을 여쭤보기로 했다. “혹시 얼마나 뛰셨는지요?”
“사실 저희가 사내 러닝 크루가 있긴 있는데 요즘은 활동이 뜸해요. 제가 크루장인데 요즘 런태기가 와서... 저도 몇 년 전에는 달리기에 푹 빠졌는데 요즘은 의욕이 없어서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지금은 처음처럼 미친 것처럼 뛰진 않게 되더라고요. (웃음) 처음 러닝 1년 반은 혼자 뛰면서 거리를 늘이고 SNS를 하고 셀카에 빠지고 혼자 놀기로 재미를 키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외롭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재미를 알게 되었어요. 저는 혼자 뛰는 건 집밥, 함께 달리는 건 외식이라고 생각해요. 자극적이고 재미있다고 계속 외식만 하다 보면 건강을 해칠 수 있죠. 매일 집에서 건강식만 먹으면 건강해지지만 맛이 없고 지루하니까요. 그 중간을 적절하게 잘 찾아서 재미를 부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러닝클래스를 선택했고, 글쓰기를 달리기에 더하기 시작했어요. 이미 크루가 있으시면 런데이로 서로 친구 맺고 새벽 달리기를 시작해서 서로 알람이 가게하고 인증하면서 응원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근처에 화성 효마라톤이 열리니 단체대회로 참가도 하시고요.”

두 번째 질문. “곧 첫 풀코스를 나가는데 완주를 위한 꿀 팁을 좀 알려주세요.”
“제가 이런 말씀드릴 자격이 있나 싶지만, 아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후반으로 갈수록 입맛이 없어지는데 에너지젤을 꼭 챙겨서 드시는 거랑 대회장에 가서 그냥 출발하지 마시고 조깅 후 100m 질주를 몇 개라도 해서 호흡을 틔우고 시작하시면 레이스가 더 나아지실 거예요. 그리고 결국 후반은 멘털인데 이 방법을 추천드려요. 일찍 대회장에 가셔서 피니시 연출사진을 미리 찍으세요. 셀카든 뭐든. 완주하고 이 사진으로 sns에 올리겠다는 생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겁나고 두려울 때 이런 방법이 저는 효과가 좋았어요.”

세 번째 질문. “책에 보니 작가님이 뛰신 지 6년 정도 되었는데 부상 이야기가 거의 없더라고요. 달리면서 부상은 없으셨는지,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나이 먹고 운동을 처음 시작해서 그런지 오히려 관절 이슈는 없었어요. 게을러서 폼롤러도 거의 안 해서 관리를 정말 안 하는 데요. 이건 너무 다양한 상황이 많으니까요. 다만 초반에 매일 10km를 빠르게만 뛰다 보니 108일째 부상으로 며칠 못 뛰었어요. 그 이후로 챌린지나 매일 달리기 숫자세기는 안 하려고 해요. 그런 게 동기부여는 되지만 결국 무리하게 되고 그 숫자에 끌려다니게 되더라고요. 평일엔 하루 쉬고 하루 뛰고 주말엔 장거리 뛰고. 회복하는 날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하뛰하쉬도 좋고. 뭐 몸에 무리가 없다면 매일 뛰셔도 되지만요.”

이렇게 질문이 많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듣는 분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강연장에서 나와서 청국장으로 식사를 마치고 도서관을 둘러보고 잠시 담당자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직장생활과 중년이 되면서 내가 책에 쓴 그대로의 번아웃을 느꼈고 조금씩 달려보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중에 내 책을 만났고, 자기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어서 비슷한 분들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섭외했다는 후기를 들었다.


특강을 마치고 버스를 탔는데 길이 꽉 막혀서 4시간 정도 차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내일 39km 뛰어야 하는데 청국장 먹고 차 안에 몇 시간을 앉아있는 게 맞는지... 내리자마자 지하철역에서 매운우동 한 그릇 먹고 집으로 향했다. 내일 달리기는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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