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여, 계속 나아갑시다.
작년 출간한 제 달리기 책에 ‘금욕’ 이야기는 뺐습니다. 중도 포기는 아니지만 달리기 내용과는 결이 맞지 않아서였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출간 후 금욕에 실패하면 망신스럽고 도전을 비웃는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언젠가 완전히(?) 성공하면 한국판 도파미네이션 같이 금욕을 주제로 새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 네이버 금욕카페 멤버는 한 곳은 17,686명, 다른 곳은 1,952명. 디시인사이드 금욕 마이너 갤러리는 45,003명입니다. 다들 익명으로 활동 중입니다. 모든 글을 본 건 아니지만 보통 금딸 0일 차, 00차 성공, 실패, 리셋, 금욕 효과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납니다. 마치 러너들이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애쓰고 달린 거리와 페이스(속도)를 매번 올리는 것처럼.
누군가 해탈한 듯 글을 올리면 누군가는 떠받들고 누군가는 글쓴이가 얼마나 오래 금욕을 실천 중인지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극적인 주제라서 저는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습니다. 자주 가던 카페에 불과 4-5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100일 성공 후, 1년 성공 후, 2년 성공 후기를 올렸죠. 큰 성취를 이룬 것 같았습니다. 2년이 넘어가니 우쭐해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왠지 음란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도 있었죠. 금욕기간 중 출간의 뜻을 품고 투고로 출판사와 계약 후 진짜 책을 출간할 수 있었으니까요.
출간 후 세상에 책을 알리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종이책뿐 아니라 오디오북을 통해 소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연 후 무대 뒤 외로움 같은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열심히 달려왔던 탓일까요. 몸도 마음도 지친 어느 날, 체력적으로도 완전히 소진된 날 저녁, 한순간 무너졌습니다. 2년 2개월이 넘게 지켜왔던 금욕이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었습니다. 휴대폰만 켜면 음란물을 1분도 안되어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금방 후회되더군요. 왜 한 순간을 참아내지 못했을까. 스트레스와 힘든 상황을 피하기 위해 손쉽게 택하던 어두운 선택을 왜 다시 시작했을까.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다시 금욕카페에 들렀지만 한 번 무너진 결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까짓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본성을 거스르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 아닐까. 자꾸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들고 마치 익숙한 노래가 재생되듯 다시 끝없는 윤회의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중독의 늪에 빠진 마약 중독자처럼, 다시 금욕을 시작할 힘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부끄러워졌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선악과를 따먹자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몸을 가리기 시작한 것처럼. 금욕 이야기를 책 내용에서 뺀 결정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안심하기도 했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듯 전에 쓴 SNS 금욕 글을 남들이 볼 수 없도록 보관하거나 삭제했습니다. 카페에 쓴 모든 글도요. 마치 금욕이라는 세계에 발조차 들여놓지 않았던 사람처럼 흔적을 지웠습니다. 혹시 누군가 알아보고 "작가님, 요즘도 금욕하세요?"라고 묻기라도 할 것처럼.
과거의 안 좋은 습관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퇴근 후 일이 힘든 날이면 자기 전까지 1~2시간의 검색과 영상 시청이 이어졌습니다. 매일 새로운 영상을 찾아 헤매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이 시작된 거죠. 도파민은 익숙한 장면, 익숙한 자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몸과 마음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도 어느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속상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나날이 길어졌습니다.
부서를 옮기기도 했고, 부서를 옮기자마자 기존 직원이 퇴사하여 새로운 도전과 어려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상황이었죠. 금욕인들은 그 모든 것이 금욕에 실패해서 일어난 일로 여기겠지만, 사실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나를 믿는 마음이 작아지기 시작했고 세상에 감추고 싶은 모습이 다시 생겼다는 거였죠.
다들 이렇게 대충 살아간다고 자위하듯 말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작아지는 시간들. 아무리 보고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다시 물을 붓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도 다시 깨진 독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은밀하게 행해지는 일이니까요. 그 행위에 대한 대가는 오로지 자신이 받을 뿐이니까요. 단순히 하루에 1~2시간을 허비하고 체력을 의미 없이 소모하는 것뿐이라면 오히려 괜찮지만, 더 큰 문제는 정신적으로 공허해지고 더 외로워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외로워서 하는 값싼 위로가 오히려 더 외로움으로 이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죠.
새롭게 시작해 보려는 노력도 했습니다. 습관을 리뉴얼하려는 어플을 깔고 새 출발을 해보려 했습니다. 일주일을 못 버티겠더군요. 리셋을 했습니다. 한 번 무너지니 계속 넘어지더군요. 회사일의 압박, 스트레스, 출간 후 홍보 정체, 금욕 정체에 대한 자책까지. 25년 7월, 금욕 2주년 성공 이후 계속된 도전 실패로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승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자기 합리화가 그 빈틈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고, 최선을 다해서 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금욕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시 SNS에 도전의 글을, 새 출발의 글을 올리는 것만큼 확실한 도전은 없지만 부끄러웠습니다. 이제 책도 출간하고 대외적으로 얼굴을 알린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다시 세상에 드러낸다는 것이. 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익명 뒤에 숨어서 자신의 도전을 드러내고 며칠도 못 가서 실패하고 다시 욕구에 굴복하고 윤회의 밤을 보내는지 아니까요. 그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드는 도전이고 실패에 대한 후유증이 작지 않거든요. 게다가 세상은 금욕을 도전하는 자체가 미친 짓이고 바보 같은 자들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비웃고, 더 많이 욕망하고 더 많이 취하고 더 많이 도파민을 쏟아내라고 응원하니까요.
금욕을 포기한 지 5개월이 지나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도전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1월이 지나갈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배정이 확정되기 전 날,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나 내일 2시에 어느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는지 아빠가 보고 알려줘.” 걱정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첫째는 가까운 고등학교를 두고 1시간 거리로 배정되어 3년 간 힘들게 통학했던 사례가 있어 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편도 2시간을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곳도 있었죠. 매년 몇 명은 그곳을 배정되기에 불가능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발표하는 날 새벽, 가만히 책상에 앉았습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편지지를 꺼내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편지였죠.
“2025. 1. 23. 나와의 약속. 지금은 AM 06:56입니다. 오늘 오후 2시에 사랑하는 아이의 고등학교 배정 결과가 발표됩니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 친구들이 있는 고등학교에 꼭 배정되리라 믿습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온 멋진 아이가 행복하게 3년간 자신의 꿈을 향해 자신의 두 발로 다닐 수 있는 학교에 배정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아이가 재학하는 3년간 금욕생활을 지키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만큼 저의 온몸과 마음을 새로움을 창조하는 여정에 쓰고 정결한 생활로 세상에 감사의 빛으로 내놓겠습니다. 저의 모든 행운과 감사함이 오늘 고등학교 배정에 온전히 쓰이도록 저를 약속의 도구로 하늘에 선언합니다. 앞날과 미래, 좋은 운을 위해 제 욕망과 나태함은 모두 버리고 우주에 맑은 몸과 마음을 담아 온전히 저의 에너지를 쏟겠습니다. 우주님, 오늘 오후 2시에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하지만 그조차 진정 저희에게 좋은 선택을 선물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6. 1. 23. 러너인 - ”
편지의 힘이었는지, 우주의 응답이었는지 아이는 정말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에 배정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편지에 쓴 약속대로 그날 이후 다시 금욕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쉽지 않고 어떤 날은 무난하지만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제 고작 36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시금 공개선언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3년을 향해 다시 힘차게 달립니다. 지금 이 순간 익명으로 저와 같은 도전을 하고 계신 형제여, 계속 나아갑시다. 형제여.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