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이 발견되셨습니다

by 러너인

"건강검진에서 십이지장 선종이 발견되었어요. 선종은 당장 위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암병변이라서 1년 이내에 제거하시는 게 좋습니다. 크기가 좀 커서 입원 후 제거하셔야 돼요. 생살을 집어 뜯어서 제거해야 해서 출혈이나 천공이 생길 수 있어서 입원이 필요해요. 1박 2일만 입원하시면 돼요. 혹시 불가능한 일정이 있으세요?"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에 와있다. 2주 전 건강검진 센터에서 위 내시경에서 선종이 발견되었는데 조직검사를 해본다는 말을 들었다. 선종? 학창 시절 대승불교 중 참선을 통해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는 종파로 선종이란 말을 들었지만 질병으로 선종은 안 좋은 뜻이다.

선종이란 용종(Polyp) 중에서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종양성 병변을 뜻하는 말이란다. 3.1절 전 근무일에 건강검진 센터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마치 오래전 회사업무로 분쟁에 휘말려 조사를 받게 된 수사관의 전화처럼 멍해졌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선종이고 암으로 전이될 수 있어서 다시 내원해서 상급병원 진료를 받으시라고.

부처가 되긴 아직 멀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분당서울대병원 홈페이지를 열었다. 위암, 십이지장 쪽 전문의를 찾아 예약했다. 검진센터에 가기로 한 같은 날 3월 3일 오후로. 어차피 연차를 내야 하니 오전, 오후로 바로 검진을 받는 일정을 짰다.

연휴를 마치고 검진센터에 가서 진료 의뢰서를 받고 검진결과를 들었다. 선종이 발견되었어요...라고 말씀하셔서. 무덤덤하게 네네. 이렇게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이 사람이 왜 안 놀라지?) "혹시 어디서 미리 설명 들으셨어요?" "네. 전화로 간단하게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영상 CD를 받아서 다시 분당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암센터 문을 처음 밟았다. 공기가 다르다. 2시간이나 먼저 와서 휴게실에서 기다린다. 뒤에 앉은 젊은 분들. 20대 초반따님 같았다. 아빠가 병에 걸리신 듯했다. 곧 아빠를 보내드려야 하는데 장례식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게 맞을까? 몇 천만 원 든다는데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 있냐고. 그런데 우리만 있으면 아빠가 외로울까? 두 분의 대화를 듣다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아까 처음의 대화로 다시 돌아간다. "건강검진에서 십이지장 선종이 발견되었어요. 선종은 당장 위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암병변이라서 1년 이내에 제거하시는 게 좋습니다. 크기가 좀 커서 입원 후 제거하셔야 돼요. 생살을 집어 뜯어서 제거해야 해서 출혈이나 천공이 생길 수 있어서 입원이 필요해요. 1박 2일만 입원하시면 돼요. 혹시 불가능한 일정이 있으세요?"

조심스럽게 여쭤본다. "선생님. 혹시 추적관찰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꼭 시술로 떼어내야 하나요...?" 선생님이 철없는 아이를 보듯 나를 쳐다보시더니, "크기가 크고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요. 암으로 가면 내시경으론 안 돼요. 떼어내셔야 해요."

소프라노로 분명한 어조로 말씀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5~6월쯤에 시술하시면 되는데 다 괜찮으세요? 6월 17일 어떠세요? 수요일 날 입원해서 목요일 날 집에 가시는 일정이세요." "네. 그날 괜찮습니다." 암센터에 발을 디딜 때는 암만 아니면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암은 아니지만 입원 수술해야 한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수납을 마치고 밖에 나왔다. 오늘 저녁엔 바나나러닝클래스 저녁 훈련이 있는 날. 훈련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달리는 삶이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미리 알려준 건강검진과 의사 선생님, 그 기회를 준 회사에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아르피아 트랙에 섰다.

빌드업으로 2km. 2km. 1km를 뛰었다. 사람들과 숨 가쁘게 달릴 수 있는 기쁨. 하늘엔 블러드문이 빛나고 있고 우리는 달린다. 빠르지 않아도 달릴 수 있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쁨인지. 마치 조직검사 사진에서 본 이름만 선한 선종처럼 블러드문이 떠있고 수많은 발소리가 트랙 위에 떠있다. 마치 달려서 달까지 가겠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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