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휴먼북 신청이 들어왔다. 휴먼북. 책처럼 사람을 열람하는 일. 달리기를 주제로 등록했지만, 이번에는 출간 멘토링이다. 출간에 관심 있는 분께 도서관에서 가장 최근에 출간한 나를 추천했다. 신청하신 분도 그림책 테라피 휴먼북으로 활동하고 계신 안유정 대표님. 두 휴먼북의 만남.
출간 도움 자료를 준비했다. 실제 투고 메일, 출간기획서, 출간 전 프로세스를 꼼꼼히 쓴 브런치 북 주소까지... 3월 22일 일요일 오전 10시, 약속시간에 맞춰 도서관으로 갔다. 아무도 없었다. 조금 늦으시나? 마음 편히 기다리는데 20분, 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당황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직 안 오셨어요?”
“네, 괜찮아요. 뭔가 사정이 있겠죠.”
“연락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잠시 후 도서관 선생님이 와서 말했다.
“죄송해요. 연락이 안 되네요. 며칠 전에도 확인했었는데.”
약속시간은 원래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 이미 11시가 지나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저녁에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가 있어서 자료 준비하면 되니까요.”
“네. 계속 연락해 볼게요.”
오전 11시 10분. 다시 도서관 선생님이 들어왔다.
“지금 연락이 됐어요. 오늘 낮 2시로 착각하고 계셨네요. 어쩌죠. 지금 오셔도 11시 30분은 될 텐데, 1시간 30분이나 기다리셔서. 아니면, 오늘 일정은 취소하셔도 되세요.”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마음 편히 기다릴 테니,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오시면 된다고 말씀 전해주세요. 어차피 오늘 뵙기로 했으니 뵙고 가려고요.”
오전 11시 30분이 넘어 한 분이 정신없이 들어왔다. 그분이구나! 그림책 테라피 선생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책이다. 낯익은 책.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권 분홍색 예쁜 그림책 ‘나를 찾아서’.
“사실 제가 오늘 휴먼북 신청하고 작가님 책도 주문해서 다 읽고 오늘 사인받으려고 준비했거든요. 제가 그림책 테라피를 해서, 작가님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그림책이 한 권 있어서 그 책을 선물해 드리려고 미리 준비해 왔어요.”
솔직히 오늘 오시는 분이 내 책을 읽었을 거라고 또 이렇게 가져올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 책을 미리 사서 선물로 드리지 못해 후회하고 있었다가 먹먹해졌다.
그분이 그림책을 꺼내 한 장씩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선생님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찾아가는 시간, 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 같다고요. 이 동화책의 물고기는 바깥세상에는 뭐가 있을까? 저 바다 멀리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계속 바다를 나아가죠. 새롭고 신기한 것들을 만나게 되고, 그것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빛으로 몸 색깔이 바뀌기 시작해요. 반짝이는 것들과 만나면 몸이 보석처럼 반짝이게 되고 계속 그렇게 자신의 몸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워가기 시작해요.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이 물고기는 까만색이 돼요. 모든 색깔이 다 합쳐지면 검은색이 되잖아요. 그래서 미움을 받기 시작해요.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친구들이 물고기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비난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넌 우리랑 달라. 넌 이상해.” 물고기는 외로움을 느끼죠. 어느 날 수많은 눈들이 가득 있는 바다에 도착하고 그 눈들이 다 같이 물고기를 쏘아보며 비난하기 시작해요. “넌 이상해. 넌 우리와 달라.”
물고기는 도망치듯 계속 헤엄치다가 어딘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공간을 만나게 돼요.
그 벽에 비친 자기 모습은 투명할 정도로 하얀색이었어요. 그 하얀 물고기가 입을 열고 이렇게 말해요. “나는 너야. 나는 너야.” 그러자 검은색 물고기가 본래의 자신이었던 하얀 물고기와 입을 맞추고 하나가 됩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그 까맣게 꽉 채워져 있던 모든 경험들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물속으로 하나씩 빠져나가면서, 그 까만 몸 안에 하얀빛의 덩어리가 생겼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까만색이 아닌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거죠. 그 수많은 경험 안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빛으로 환하게 빛나면서 이야기가 끝나요.
저는 이 이야기가 작가님이 달리기를 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 책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와 너무나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작가님께 꼭 전하고 싶었어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사함으로 잠시 숨을 멈췄다. 1시간 반의 기다림이 이런 빛, 이런 선물로 돌아올 거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 책 한 권에 담지 못한 그 이야기까지 내 마음을 그대로 읽고 ‘나를 찾아서’라는 물고기의 여정을 담은 그림책으로 전해주는 그 마음에 한없이 감사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출간 과정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명함을 나눴다.
그림책 테라피, 그 짧은 순간에 해주신 그림책 소개, 두 물고기가 입을 맞추는 순간, 하얀 물고기가 까만 물고기가 되어가는 과정, 달라진 모습에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 결국 자신이 가진 내면의 빛으로 더 환한 가슴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까지. 휴먼북 시간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언젠가 꼭 그분의 휴먼북을 신청하리라 마음을 정했다. 그분이 주신 빛은 곱고 깊었다.
미운 내가 싫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를 늘여가고 더 빨라지고 풀코스를 뛰는 사람이 되고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뛰었다. 회색으로 죽어가던 몸에는 생기가 돌았고, 새로운 경험과 성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때로는 보석처럼 빛나고 때로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내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쓸 용기를 내고 투고로 출간을 하게 되고, 오디오북을 내고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무슨 색일까? 경험을 쌓다가 검은색이 되었을까. 아니면 점점 검은색이 되어가고 있을까. 주위의 사람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과정을 넘어 이제 원래의 내 모습에 다시 입 맞추고 있을까.
더 멀리 더 빨리 뛰고 더 멋진 사진으로 원래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려 달려왔던 게 아닐까. 거울 앞에 있는 내 안의 나와 입을 맞춘다. 내 안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내면의 빛을 환하게 세상에 밝힐 모든 순간을 꿈꾼다.
‘내면의 빛을 찾은 동화 속 물고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