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님, 안녕하세요. 세종사이버대 한국어교육원입니다. 이번 학기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관련 사항을 메일로 발송해 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유난히 지치는 하루, 업무로 화장실 갈 새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문자 알림이 왔다.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 아! 3월 11일 홈페이지에 뜬 공지를 보고 망설이다 신청했던 기억이 났다. 말이 좋아 한국어학과 3학년 1학기 재학생이지만, 학사편입으로 3학년에 들어와서 고작 개강 2주 차 신병 신세라 고민했다. 형태소니 뭐니 문법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고 이제 겨우 3주 차에 들어가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기뻤지만 걱정이 앞섰다. 만일 자음, 모음부터 알려드려야 하는 상황이면 지금 수업을 갓 시작한 내가 제대로 알려드릴 수 있을까. 아야어여오요우이. 가나다라... 어이쿠. 눈앞이 캄캄해진다. 가만히 메일을 열었다. “3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총 5회(최소 5시간) 봉사 후 일지 및 최종보고서 제출을 바랍니다. 학우님이 담당할 학생의 한국어 레벨은... 정보는...” 낯선 도메인의 메일 주소와 이름 하나가 보인다. 자원봉사자가 먼저 신청하신 분께 메일을 보내서 연락처를 드린 후 카톡으로 일정을 잡는 방식이다. 메일을 써서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자를 맡은 '정승우'입니다. 처음 인사드려요 저는 직장인이며 세종사이버대학교 한국어학과 3학년 1학기에 다니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달리기 에세이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처음 자원봉사를 맡게 되어 많이 떨리지만, 선생님께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하는 일정이더군요. 토요일 또는 일요일 저녁 중 언제가 편하신지와 zoom 등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드리면 좋으실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카카오톡 등록해 주시면 궁금하신 내용 답변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내가 한국어교육학과 3학년 1학기 재학 중이니 체계적으로 잘 도와줄 거라 기대하실 텐데, 실상은 이제 3주째 온라인 강의를 듣는 초보라 걱정이 앞선다. 야근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데 모르는 카톡이 하나 와있다. 이번에 매칭된 학우님이다. 나는 신청서에 주말 저녁만 가능하고 한국어 외에 중국어를 약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중국어를 쓰는 분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분이다. 걱정이 커진다. 다행히 초중급 단계라 아야어여를 알려드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zoom 앞에서 얼어붙지는 않을까. 뭔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망연자실할까 눈앞이 캄캄하다.
학우님이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이에요. 이메일을 바닸어요.”
대화를 이어갔다. “저는 정승우입니다. 반가워요. 세종학당에서 공부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3-2 급 다녀요. 3월 10일부터 2주 동안 시작했어요. 이 교재 알아요?”
“이 교재 내용으로 도움드리면 될까요?
“우리 방은 8 과부터 공부하는 것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1 과부터 7과까지 잘 못 알아요”
“그럼 내일 1과부터 할까요?”
“네. 일요일 저녁 6시. zoom.”
“zoom은 제가 만들까요? 아님 000님이..?”
“선생님.”
헉. ‘선생님’이란 단어 하나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비록 3주 차 쌩초보 한국어 교원자격 후보생이지만 타국에서 오신 분이 초면에 ‘선생님’이라 불러주시는데 없던 힘이라도 짜내야 하지 않을까. 하루 있다가 zoom으로 뵙기 전에 잠시 먼저 인사드리려고 보이스톡을 열었다. 어색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몇 마디 나누자마자 오직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높은 언어실력을 필요로 하는지 깨달았다.
나 혼자 말하고 상대방은 “음.. 음...” 상황을 보니 거의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 이분은 초급 정도라고 생각하고 쉽게 말해야 하겠구나. 그래도 대화가 가능했던 대목은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했던 부분이었다. 이런 대화였다.
“저는 달리기를 좋아해요. 아이 라이크 러닝”
“음. 아. 달리기.”
“네. 맞아요.”
“몇 킬로미터?”
“42킬로”
“아. 42. 마라톤?
“네. 저번 일요일에 마라톤 뛰었어요.”
“와. 멋있어요. 몇 시간 걸렸어?”
“3시간 25분.”
“우와.”
“힘들었어요.”
뭔가 반말과 존댓말이 서로 엉킨 대화였지만, 모처럼 대화가 이어져서 기뻤다. 일단 전화를 끊고 집에 들어갔다. 일은 벌어졌고 이제 어쩐다.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한국어 자원봉사를 신청했단 말인가. 이번 3주 차 온라인 강의는 일하느라 6과목 중 3과목은 아직 강의도 못 들은 상황인데 누가 누굴 돕는다는 말인지... 하지만 아까 카톡에서 받은 ‘선생님’이란 단어가 아직 귀에 맴돌았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갔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지금까지 무심히 써온 모국어, 한글로 누군가의 삶을 더 밝힐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 벅찬 일이 아닐까.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첫 수업 교재를 다운로드하고 1과에 나오는 단어를 제미나이에 넣어 그림으로 만들어 ppt를 만들었다. 아는 것과 알려주는 것은 다르니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에서 zoom 앞에서 서면 좋겠지만..
훈민정음, 자신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어쩌면 누군가에게 한국어를 알린다는 건, 내가 나 자신을 바르게 가르친다는 말이 아닐까. 내일 아침 10시, 책 출간을 희망하시는 분을 위한 1대 1 멘토링 자원봉사에 이어 저녁 6시 쌩초보 선생님의 첫 zoom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가 시작된다. 부디 작은 도움이 되길. 서로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서로 작고 소중한 힘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