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들은 얘긴데, 골 요리 파는 식당에 가면 닭장 같은 커다란 우리 속에 원숭이가 가득 있답니다. 자기가 먹을 원숭이를 자기가 고르는데, 사람이 가면 이놈들이 갑자기 골골거리면서 전부 아픈 척을 한다고요. "야, 나 병 있어. 맛도 없고 탈 나면 누가 책임지니. 너까지 병 걸리려고. 그렇게 먹고 싶으면 병 나으면 먹어라." 이런 거죠. 그래 봤자 결국 먼저 찍히는 한 놈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다른 놈들이 춤추고 생난리. 꾀병 부리고 아픈 척하던 놈들이 팔짝팔짝 뛰면서 "야, 살았다". 곧 따라갈 놈들이 박수 치고 웃고 막 소리 지르면서, "야, 좋다. 나 살았다."
-팬데믹 플레이 / 용정, 중국 / 조정일 저 -
팬데믹플레이 연극 희곡집 뒤쪽 글 하나에 가슴이 사르르 아프다. 이건 원숭이 이야기일까 우리들 이야기일까.
이건 우리 얘긴데, 지구라는 곳에 가면 닭장 같은 커다란 도시에 사람들이 가득 있답니다. 저승사자가 자기가 데려갈 사람을 고르는데, 저승사자가 가면 이 사람들이 갑자기 땀 흘리며 전부 열심히 사는 척을 한다고요.
"야, 나 할 일 있어. 내가 가면 누가 하니. 그렇게 데려가고 싶으면 꿈을 이루면 데려가." 이런 거죠. 그래 봤자 결국 먼저 찍히는 한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춤추고 생난리. 바쁘게 사는 척하던 사람들이 팔짝팔짝 뛰면서 "야, 살았다". 곧 따라갈 사람들이 손뼉 치고 웃고 막 소리 지르면서, "야, 좋다. 나 살았다."
누군가 아파하고 불행에 처해있을 때 불쌍하다고 동정하고 눈물짓는 우리지만, 어쩌면 그 순간 살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아닐까.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괜찮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드는 건 결국 아직 골라지지 않은 원숭이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닐까.
박수를 치고 웃고 막 소리 지르지는 않아도, 매일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며, 사건사고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아파하는 건 그래도 나는 아직 괜찮다는 그런 안도의 마음이 아닐까. 인간이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함께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그조차 불가능하니까.
윗글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곧 따라갈 놈들이..."란 구절이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달리기를 떠올리며 나를 돌아본다. 지금까지 5년간 부상으로 뛰지 못한 시간이 단 3일이다. 부상을 달고 사는 분께는 부러운 이야기다. 나머진 피곤했거나 바빠서 뛰지 못했을 뿐, 러너로서 지금까지 즐겁게 달려왔다.
달리기에 처음 빠졌을 때 100일 넘게 매일 10km씩 빠르게 달리다가 생긴 부상이었다. 그 3일이 3년 같았으니, 몇 달간 부상으로 뛰지 못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실지 감히 상상조차 어렵다. 사실 자기가 다치기 전까진 다른 러너들이 조심하라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넌 매일 못 뛰니까 부러워서 그러지?" 그런 대찬 글에는 이런 댓글도 꼭 따라온다. "그런 의지박약인 사람들 말은 듣지 마세요. 님이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예요.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파이팅! 매일 달리기 00일 너무 멋져요."
그럼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죠? 어이가 없어서. 내 무릎이고 내 다리인데. 그런 잔소리하려면 매일 달리기 00일 해낸 사람이나 충고할 자격이 있죠. 해내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하고 부상이니 머니. 전 그냥 차단하고 계속 달릴 거예요. 파이팅!"
부상의 신이 누구를 데려갈진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률적으로 매일 뛰고 자주 뛰고 긴 거리를 뛰면 그 신을 만날 기회가 커진다는 건 안다. 누군가 아프고 부상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자기가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손뼉 치고 웃는 원숭이보단 조금은 나은 사람이다.
트랜스제주 100km를 취소했다. 10월에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나가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나는 트레일러닝의 매력과 즐거움을 느낄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로드 훈련을 위주로 하며 산을 100km에 오기로 도전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니까.
보이는 달리기가 아닌 내실 있는 달리기를 생각한다. 예전엔 러닝페이스를 빠르게 보이려고 시계를 자주 멈추곤 했다. 요즘은 달리려 나가서 집에 올 때까지 시계를 멈추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르든 걷든, 평균 페이스가 떨어져도 괜찮다.
인생의 시계가 멈추지 않는데, 스포츠 시계를 멈출 이유가 있을까?
살아 숨 쉬는 1분 1초. 화장실에 가든 걷든 멈춰서 울든 웃든 모든 달리기가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