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롤모델은 나다

by 러너인

(A) "맨날 러닝 혼자 뛰다가 오늘은 친구랑 같이 뛰었는데 확실히 더 많이 뛰게 되고 힘든지도 모르겠더라! 이래서 운동메이트가 있어야 하나 봐."
(나) "맞아. 수다런은 힘든 줄도 몰라."
(B) "두 분 대화에 살짝 끼어봅니다. 러닝 클래스 동기라고 해야 하나요. 그 러닝 메이트가 이어지나요??"
(나) "네. 찐 러너들은 계속 나와요. 페이스 비슷한 분들이 그룹으로 풀코스 대비 수업 때 몇 시간씩 뛰고. 주말에 lsd로 또 2-3시간 같이 뛰거나 번개로 만나서 같이 뛰니까요. 자연히 아는 러너들도 많이지고 친해져요. 전 극내향인이라 처음엔 시간이 걸렸는데 1년 정도 같이 뛰고 대회도 같은 러닝 클래스 이름으로 나가니까 더 친해지더군요 :)"
(B) "비슷한 페이스들끼리 같이 대회 준비하고 나가고.. 이거 좋은 거 같네요."
(나) "네. 대회 끝나고 모여서 뒤풀이도 하고. 그렇게 대회 몇 번 다녀오면 서로 너무 좋아요. 어차피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오니 서로 관심사도 같고 코치님 계시니 항상 진지하게 훈련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

어제 바나나런클럽 화요일 저녁훈련. 바나나의 B, 런클럽의 R을 따서 BR이란 알파벳이 큼지막한 싱글렛(짧고 파인 러닝용 상의)을 입고 사람들 안에 내가 있다.

2022년 5월 처음 바나나에 왔다. 훈련장소인 광교는 집이고, 용인아르피아는 퇴근 후 지하철로 1시간 30분 이내로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뚜벅이로 다녀서 대중교통 연결이 되어야 했으니까.

어느덧 문을 두드린 지 3년 3개월째. 오늘은 러닝경험이 적은 분부터 많은 분들까지 함께 훈련하는 화요일 저녁 정기훈련이다. 오늘의 주제는 '서킷 트레이닝'. 서킷은 가장 꺼리는 훈련 중 하나다.

생각해 보니 쉬운 훈련이라는 게 없다. 인터벌도 힘들고 언덕을 빠르게 뛰는 업힐 훈련도 힘들고, 2시간 3시간씩 뛰는 장거리 훈련도 쉽지 않다. 훈련 시작 전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익숙한 내가 어색하지 않다. 운동을 배우러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내 모습은 5년 전엔 상상도 못 했다.

운동을 떠나서 극내향인이라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꾸준히 달리니 많이 변했다. 지금은 함께 다닌 지 오래된 분들도 좋고 새로 오신 분들도 좋다. 달리기란 이름으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좋다.

모처럼 선선한 날씨 덕에 서킷을 3세트 했다. 1세트에 10~12개 동작과 함께 50m 질주가 사이사이 연결된다. 동작은 열심히 했지만 질주는 몸을 사리게 된다. 전력이라곤 말 못 하겠다. 아무래도 3세트를 버티려면 체력 안배를 해야 하니까.

런던베이글을 만든 이효정 대표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각자 다르게 태어났어요. 진짜의 나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유니크할 수밖에 없죠. 남들이 알려준 지름길은 그 사람의 길일뿐, 내 최단거리는 아니에요.”
“왕따 같았던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관찰력이 생겼고, 진짜 나를 발견하는 법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말해요. 저를 롤모델로 삼지 마세요. 나의 롤모델은 철저히 ‘나 자신’이어야 해요.”

울림이 컸다. 내향적인 나 자신을 45년 동안 부끄러워하고 미워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러닝클래스에 처음 발을 들이기 위해 1년 반이나 고민해야 했다.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내가 아닌, 진짜의 나로 사는 것이 좋다. 러너처럼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진짜 러너로 사는 것이 좋다. 작가처럼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좋다.

여전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함께 있는 시간도 좋아하게 되었다. 소중한 돈과 시간까지 써가며 달려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땀방울은 짜릿하다.

이곳이 대회장이다. 이름이 적힌 배번, 화려한 음악소리와 터질듯한 함성, 웃음이 나는 ‘HAFE 메달’(하프가 ‘HAFE’로 잘못 인쇄된 레전드 대회)은 없어도, 힘든 훈련을 버티느라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와 힘찬 코치님의 구령소리가 응원이고 함성이다.

나는 퇴근 후 달려오는 달리기에 진심인 당신이 사랑스럽다.

진짜 나는 유튜브나 쇼츠 안에 없다. 시작부터 남을 따라 하는 2등의 삶은 거부한다. 매일의 내가 모여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러너처럼 보이는 내가 아닌, 인스타 속의 보이는 내가 아닌 진짜 내가 좋다. 나의 롤모델은 나다.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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