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다. 오늘도 할 일이 있다. 아, 그 전에 소개할 사람이 있다. 늘 지척에 있었으나, 부쩍 가까워진 친구다. 이름은 ‘권태’다. 그는 요즘 나에게 귀찮을 만큼 찰싹 달라붙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한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어 나 역시 녀석이 없는 하루를 상상하기 힘들 때도 있는데, 여전히 매 순간을 같이할 만큼 믿음직스럽진 않다.
그는 참 게으르다. 특히 내가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미동도 없이 붙어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곧 맥없이 신경질적으로 변할 내 모습을 마주 보기 싫어, 쓰는 단순한 특효약이 있다. 바로 나가서 걷는 것이다.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녀석이 잠시 나와 거리를 두거나, 때때로 사라지기도 한다. 오늘 같은 금요일이 되면 한 주 동안 걸었던 발자국을 상상의 자루에 담아 저울에 잰다. 무게를 재보고 역시나 적잖은 무게가 나간다면 주말 동안은 더 걷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럴 땐 고향에 내려간다. 성냥갑 같은 서울방보다 훨씬 쾌적하고, 넓고, 또 탁 트인 창문으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고향 집에 가면 권태가 귀찮게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옆에 있기 때문이다. 집밥의 온기가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 느껴지는 따스함은 언제라도 좋지만, 함께 식사할 때 부모님의 애잔한 눈빛은 요즘 유난히 온도가 뜨거워 피하게 된다. 특히 정면으로 응시하고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다면 가슴에 괜한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기에, 홀로 늦은 시간에 조용히 요리하고 나만의 만찬을 즐기는 편을 택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기에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날이다.
뉴스가 나오는 터미널 대합실 TV 앞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귀에 울리는 앵커의 목소리를 멍하니 흘려보낸다. 한주의 빈약한 성취감도 함께 보내주기로 한다. 홀로 사방이 탁 트인 고향 집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몇 가지 요리를 하고 여유롭게 주말을 맞는 금요일 밤을 보낼 수 있다니 설렌다고 되뇐다. 버스에 올라 한참을 잤고 중간에 약간의 교통 체증이 있었지만 이내 도착했다.
배가 고파졌다. 먼 길을 따라온 권태는 조금 피로해 보인다. 집 앞 마트에 간다. 수중의 돈을 치열하게 계산해 최적의 만족감을 남길 장을 볼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집에 뭐라도 있겠지라는 확신에 차 싸구려 와인 한 병, 통조림 햄, 과자 한 봉지만 산다.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TV부터 켠다. 리모컨 숫자 버튼을 재빠르게 눌러 영상 없이 음악만 나오는 650번 홈 클래식 채널에 맞춘다. 마침 익숙하지 않은 브람스가 흘러나오니 고상한 기분이 갑작스레 들어찬다. 산 것도 없는데 쓸데없이 큰 비닐봉지가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주던 공허함이 덩달아 가려진다.
이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통조림 햄을 굽고, 배가 고프니 냉장고에 시든 채소를 넣어 제법 두꺼운 계란말이도 한다. 냉장고 맨 밑 칸 오른쪽에 기대선 큰 통에서 오랫동안 허우적거리던 오이피클 몇 개도 꺼내준다. 와인을 천천히 따르고 또 따르고, 제법 빨리 마셨다. 한 병을 다 비웠다. 포만감이 느껴질 만큼 충분히 배도 채웠다. 몽롱해진 기분으로 춤추듯 소파로 간다. 팔과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핸드폰을 든다. 정말 오랜만에 취했다. 갑작스럽게 헤어진 최근의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머뭇대지만 견고한 자존심에 가로막힌다. 이런 취기가 언제 또 찾아올지 두렵다.
머리가 슬슬 가벼워진다. 그나저나 친구 권태가 옆에 없다. 고개를 돌아보니 녀석은 고즈넉한 밤공기가 빚은 저 너머 야경을 배경으로 둔 거실 유리창 한가운데 서서 나를 보고 있다. 눈을 끔뻑거리며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니 재밌는 구경거리를 본 양 히죽대고 있다. 그 웃음이 기분 나쁘지 않고, 반갑기도 해 나도 멋쩍은 웃음으로 응대한다. 그리고 한참을 호쾌하게 같이 웃었다. 이제 가장 들뜬 한때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통화 버튼을 누른다.
필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