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펀드매니저는 뭔데?

합법의 차익거래

by runaway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쓴 탓에, 이 시리즈의 이전 글이 어디까지 왔나, 어디로 가야하나 하는 고민을 제쳐두고 좀 더 일 자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타칭 ‘펀드매니저’ 였고, 누군가는 이 직업을 사기꾼, 영화에서는 엄청나게 똑똑한 양아치, 혹자는 보험팔이/재무설계사 쪽으로 생각을 하는 직종에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내 직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 직업이 가진 위치나 대외적 이미지, 연봉과 같이 주어지는 것 보다도 순전히 일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는 다른사람의 돈을 대신 받아서 매년 수수료를 받고 대신 투자해주는 사람이다. 굉장히 세부적으로 그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뉘지만 딱 한마디로 설명하면 이게 제일 간결한 이야기같다.

결국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아서 사고없이 목표한 수익을 달성해서 투자자를 만족시키는지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일에

대한 호기심과 수치화 하려는 능력이 몸에 베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당연히, 돈을 잘 투자하려면 어디에 투자할지, 얼마나 투자할지, 언제까지 투자할지, 왜 투자할지, 얼마나 돌려받을지 등등 수 없는 의사판단의 과정이 필요하고 대게 그 금액이 커질수록 의사판단은 넓은 폭과 깊이를 요구한다.


이 의사판단을 대신 해 주는 일 자체가 나에겐 굉장한 재미였다. 마치 내돈이라 생각하고 그 돈을 투자자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다보면 정말 많은 세상의 것들에 관심을갖게 되는데 물론 학계에 계신분들 만큼의 깊이에 비교하자면 발톱에 때도 못미치겠지만 애초에 세상돌아가는일에 관심이 많았기에 일 자체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일 자체의 플로우를 간단히 이야기 하면 잠재적인 투자자를 찾고, 투자할 대상을 찾고, 투자자에게는 매력적인 투자기회가 있음을 설명하고 그 돈을 대신받아서 언제 사고, 언제 팔고, 얼마씩 사고 등등을 한다. 그렇기에 ‘시장’과 ‘상품’ 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게 되고 주식/부동산/채권/기타 의 영역에 따라 각자가 특화하면서 커리어를 쌓아 나간다.


이까지 읽다보면 요즘은 ‘아니, 개인투자자도 유튜브 보고 책보면서 투자하는데?’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맞다. 과거 주식거래를 하려면 증권사에 방문해 객장에 앉아서 지켜보던 시절이라면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이 좀 더 유효해(?)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개인이 투자하기 위한 환경이 개선된 시점에서 굳이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세금을 대신 받아서 투자하는 펀드매니저였다. 개인이 아닌 기관은 생각보다 자금의 단위가 크기에 아무리 고민을 해서 투자를 해도 시점과 변동성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다양한 펀드매니저에게 마치 금액을 흩뿌리려 집단지성의 효과를 얻기 위한 식으로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경험이 길지 않은 펀드매니저였기에 많은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운데, 이쪽일은 의외로 영업력도 중요했다. 투자자에게 가서 ‘우리가 투자 잘하니 대신 해드림’ 이라고 한다면 누가 믿고 돈을 맡기겠는가.

그 투자자의 성향과 투자자를 둘러싼 상황, 투자자의 고민, 투자자가 바라보는 방향등등을 꽤나 정확하게 추측해서 ‘이런이런 고민들 하시는데, 우리가 이러이러 하게 해볼테니 같이 해보실까요?’라는 식의 영업이 필요했다. 그 한번의 과정을 위해서 컴퓨터에는 무수한 보고서와 파워포인트가 쌓여가고 그것의 주니어 펀드매니저의 일상..이였다고 회고하면바람직해 보인다.


근데 이 재밌고 다이나믹한 일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놀아난다고 생각했는데 테두리 딱 그 경계에서 화려한 발재간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아 나는 이일 오래 못하겠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법의 테두리를 지키면서 기발한(?) 안목으로 투자대상과 방법을 고안해 내는게 펀드매니저의 능력일텐데 재무관리의 효율적 시장이론 관점에서 볼때 이미 시장은

효율적 이기때문에 펀드매니저가 추가 수익의 기회를 찾는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법의

경계 또는 제도화 되지않은 영역을 찾아서 선점하는 형태로 접근을 하는 시도가 보였다. 내가 뼛속까지 펀드매니저 일이 맞았다면, 그런부분이 큰 거부감 없이 나에게 다가왔겠지만 그런 영역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부턴 집에와서도, 회사에서도 계속 불편한 생각과 마음이 들었고 개인의 돈이 아닌, 내친구,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이 조금씩 낸 세금의 집합을 대신 투자하면서 그 과정에서의 오점을 무시하고 가는게 정말인지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웠다.

과연 그들은 그들 노력의 산물이 이렇게 취급되는걸 알까? 하는 죄책감, 직업에 대한 회의, 나아가 업군에 대한 환멸까지 들면서 결국 나는 떠났지만 또 다른 훌륭한 펀드매니저는 충분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상적으로 제 역할을 묵묵히 해 내고 계실 다른 분들에게는 경외심 마저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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