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음
나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목표를 정하고, 역산해서 오늘 해야 할 것을 정하고, 그것을 해냈을 때의 작은 안도감들이 쌓여서 나를 움직이게 했다. 돌이켜보면 여의도에 처음 발을 붙인 것도, 그곳을 나온 것도, 다시 금융공기업을 목표로 잡은 것도 전부 그 방식으로 해온 일이었다. 나에게 계획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라 일종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계획 안에 있으면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 감각이 없으면 불안했다.
그런데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계획표에 넣을 수도, 일정으로 잡을 수도 없는 종류의 일. 그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 그게 꽤 낯설다. 평소라면 빠르게 선택지를 좁히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갔을 텐데, 이번에는 그 과정이 잘 되지 않았다. 정리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리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잘 들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부산으로 내려가야 하는가.
부모님은 부산에 있다. 서울에 있는 나를 곁에 두고 싶어할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외면하고 서울에 계속 있는 것이 맞는 일인지, 지금의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산으로 내려가면 무엇이 달라지나. 부모님 곁에 있다는 것 외에, 내가 쌓아온 방향이 흐트러지는 것은 아닌가. 아니, 애초에 그 방향이 지금도 유효한가. 나는 여전히 금융공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인가.
물음표가 너무 많다.
나는 원래 이런 물음표들을 오래 방치하지 않는다. 빠르게 정리하고, 답이 나오면 행동으로 옮기고, 그렇게 넘어가는 방식이 편했다. 그런데 지금은 물음표를 정리하려는 시도 자체를 미루고 있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 미룸의 일종일지 모른다. 뭔가를 쓰고 있으면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이라도 들어서.
서울이라는 곳은 묘하다. 올라올 때는 목표가 있어서 올라왔고, 나가고 돌아오고를 반복하면서도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고, 그 감각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게 욕심인지, 필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여기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연함이 흔들린다.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를 새삼 따져보게 되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 이유를 댈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유를 대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아무 이유 없이 당연하게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이 끝났다는 느낌이랄까.
흔들림이라는 것도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부딛쳐서 흔들리는 것과,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전자는 어디서 왔는지 보이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다. 후자는 표면이 아직 잔잔할 때도 이미 시작되어 있다. 지금은 후자에 가깝다. 아직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그게 아직이라는 것도 안다.
나는 결론을 내야 한다는 것은 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결국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그 선택을 내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냥 이 고민이 지금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일단 꺼내두는 것으로 오늘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내 상태를 억지로 비유하자면, 돛단배가 강 위에 떠있는 것 같다. 바다보다는 잔잔한 강이다. 그런데 강 저 깊은 심연에서 알 수 없는 해류가 올라오려 하고 있다. 표면은 아직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배 위에 있는 사람은 느낀다. 그리고 그 배에는 방향이 없다. 어딘가로 가려는 것도 아니고, 닻을 내린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