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걸 어떻게 미리 알아차리니?
회사에서의 내 책상은 그 누구보다 깔끔했었다.
책상이 너저분해서 업무와 관련된 자료를 찾는데 시간을 낭비하는게 싫기도 했고
개인적인 용품이나 물건들이 회사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프로같아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내 물건을 잔뜩 가져다 둔다는건 내 눈에는 회사에, 그것도 내 자리가 있음에 엄청난 애정을 두는것 처럼 여겨진다.
내가 자리에 물건을 그렇게 가져다 두지 않았던건, 이곳이 내가 긴시간 지낼 자리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공기업을 다니는 친구들은 정년이 보장되는건 아니지만, 노력을 한다면 정년에 근접하게 다닐수도 있을것 같고 돈도 그럭저럭 모을수 있을것 같은데, 내가 앉아있는 회사의 그 자리는, 옆자리 팀장님 하나만 보고 가야하는데 너무나도 불안했다. A4용지 이면지를 사용하고, PPT를 좀더 멋지고 빠르게 만드는 툴을 결제해달라는 요청에 그냥 PPT쓰라고 하시는 대표님을 보면 더더욱 회사에 출근하고 싶은 기분은 나지않았고 뭔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꾸준히 열심히 하는게 고수겠지만, 나는 그런 대목은 아니였나보다.
상사가 나를 챙겨주는걸 바라지는 않았다. 어쩔땐 마치 내가 팀장님을 챙기는것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팀장님은 메일을 받는 상대방의 이름을 잘못 쓴다던지, 상갓집에 방문해야 하는데 현금과 봉투를 미리 준비하지 않아 (그곳에 당연히 있겠지만 없다면 낭패아닌가) 내가 미리 챙겨둔 것을 사용하신다던지. 나는 팀장님이 놓치실걸 알고 미리 준비해갔는데, 이게 나중에는 팀장님이 어떤 일을 직접 처리하시거나 지시하셨을때 '과연 제대로 한건 맞을까' 라는 불안감과 재확인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상당히 피곤했다.
자신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인사팀에 퇴사서류를, 대표실에 사직서를 던져버린 나에게 팀장님은 서운함과 동시에 티하나 내지 않았으면서 돌변해 나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런 나는 팀장님께 역으로
'제 자리가 늘 깨끗한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 물었는데, 당연히 그냥 청소를 잘 하고 깨끗한걸 좋아한다고 느끼셨다고 한다. 내가 팀장이 된다면,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유독 자리가 깨끗한걸 보면 나는 좀더 관심을 가져야 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으로 자리를 깨끗이 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회사와 내 자리에 애정이 있다면 키보드도 바꾸고, 작은 사진이라고 가져다 두고, 나만의 흔적을 그곳에 남겨두려고 하지 않을까.
회사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일. 나아가 집에서도 나는 나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겠다.
내것이 아닌 공간이기에 조심스럽고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늘 정리하고 비우려는 자세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걸 다 내려두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무언가를 소유하고 흔적을 남기는 행위가 참 덧없기도 할텐데 왜 우리는 늘 소유하고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걸까.
인간은 본인의 존재가 사라지는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건가? 나는 죽음이 두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죽음을 목전에 둔 경험을 해 보지 못하거나 내가 아직 어리고 건강해서, 이 세상에 내 가족이 있거나 무언가 책임질만한게 없어서 그런가 싶은데, 당장 내일 죽어도 아쉬움이 남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이런 내 생각을 누군가는 허무주의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후회 없는 매일을 착실히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던데 한 가지 생각을 두고도 평이 갈리는건 참 신기한 일이다.
직업을 정할때, 나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디든 취직만 해서 최저에 가깝더라도 월급만 나오면 땡큐였는데 부모님의 기대, 미래에 관한 고민들로 점점 눈은 높아졌고 취업시장에서 내 몸값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값 사이 괴리는 계속 벌어졌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당장 내일 죽어도 이 일을 할까 싶은 직업을 찾는데 매진했었다. 어차피 최저시급 받는다면, 당장 죽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정도의 일을 하면 좀 애정을 갖고 보람차게 나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고,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였기 때문이다. 회사를 돌아 나온 주니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다녔던 회사와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에 대한 약간의 감사함과 고마움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