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하나 되는 순간
정원에게
비가 오지 않아 단수를 걱정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단다.
다른 지역엔 비 피해가 심각하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우리 동네는 아직
가뭄 해갈이 끝나지 않은 듯해.
오늘은 태양 빛이 더 뜨겁게 내리쬐고,
비는 이제 물러간 걸까?
무엇이든 지나간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어제 오후, 모처럼 너와 함께 차를 운전해서
할머니 댁에 향하는 길.
엄마는 괜히 들떠서 너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고 있었지.
그때 네가 갑자기 '송골매'의 '세상만사'라는
노래를 플레이했어.
낯익은 전주가 흘러나오고
너는 큰 목소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어.
어, 어떻게 송골매 노래를 알지?
이거 엄마 세대 노랜데 싶어 너를 돌아봤어.
얼마 전에는 김광석, 산울림 노래도 틀고
"엄마도 이 노래 알지?"하고 묻던
네 모습이 떠올랐지.
"엄마, 예전 노래들은 가사도 그렇고
리듬도 그렇고
뭔가 가슴을 찌르는 감성이 있어.
사운드가 시끄럽지 않고
마음을 울려"
그렇게 말하던 네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 순간, 우리 둘이 음악으로 하나가 된 것 같았어.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작가 데이비드 색스는
"정서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아날로그 영역에
있어요. 반면 디지털 영역은 모두 완벽함과
속도에 관한 단어들이었지요"라고 했어.
핸드폰을 고를 때 사진이 얼마나 선명하게
잘 찍히는가를
기준으로 삼던 네가 어느 날
엄마가 예전에 쓰던 셔터 카메라를 꺼냈을 때,
필요 없는 물건이라며 저 한구석으로 치워두고
장식으로만 있던 LP판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만지작 거리던 모습.
요즘에는 생소할 법한 옛 가수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조용히, 때로는 신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네 모습을 바라보면
엄마는 묘하게 낯선 감정이 스며드는 걸 느낀단다.
내가 예전에 즐겨 듣고
손에 익숙했던 것들이
너에겐 완전히 새로운 세계일 텐데
왜 어떻게 너의 관심사가 되었을까?
궁금하고 신기하기도 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네가 찾는 건 아날로그에 묻어나는
정감과 따듯함이 아닐까 싶더라.
내겐 익숙한 것들이 너에겐 새로움이고
그 새로움이 주는 매력에 너도 조금씩
물들어가는 것 같아.
네가 좋아하는 '마마무'의 노래를
엄마가 열심히 들었던 이유도,
함께 콘서트장에 갔던 기억도
모두 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였지.
늘 내가 너를 따라가기 바빴는데
가끔 네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나 물건을
먼저 찾아서 엄마에게 묻고
함께하는 순간이 오면
뭉클한 감정이 가슴을 스쳐간단다.
50대의 엄마와 20대의 네가
송골매의 노래를 차 안에서 큰 목소리로
함께 부르며 신나게 드라이브하던 그 시간
엄마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네가 알까?
우리의 소통은 서로의 시간들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