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아..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왜 그랬던 거야 도대체. 왜 그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거지? 머리를 부여잡고 후회하는 나를 볼 때가 종종 있다. 가깝게는 바로 어제. 저녁을 잔뜩 먹어놓고, 맥주 한잔만 하자는 소리에 이끌려 피자와 생맥 한 잔만 딱, 그렇게 해놓고 결국 두 잔을 마셨다. 오늘 아침, 늘어난 뱃살과 약간의 두통. 건강 염려증까지 더해져서 나는 또 나에게 말한다. ‘왜 그런 거니, 너.’
하지만 자잘한 이런 후회는 쌓여도 내 삶을 크게 흔들지는 않는다. 가끔 우울하게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한숨 자고 나면 지나가는 후회이다. 그러나 내 삶을 뿌리째 흔들어 결국 뽑히게 만든 일들은 돌아보면 대부분 나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를 끝까지 추적해 보면 결국 하나로 모인다. 욕망.
내 욕망이 나의 지적능력을 이길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의 승리는 자주 나를 무너뜨린다. 특히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욕망을 마주했을 때다. 그 사람이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언어와 태도로 돈에 대한 욕망, 관계에서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 혼자 서지 않으려는 욕망을 드러낼 때. 그때 나는 흔들린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랑받고 싶은 심리, 돈 앞에서 초라해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 이런 욕망들이 끓어오르면 나는 끝내는 모든 걸 피하고 싶어진다. 특히 회피 욕망이 강하게 올라오는 게 보인다.
이상한 건, 그 순간 나는 감정부터 무너지는 게 아니라 생각부터 무너진다는 것이다. “또 시작이네.” “내가 참아야지.” “그냥 도망가고 싶다.” 이런 문장들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이 문장들은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당장 싸움을 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아주 조용히, 내가 아닌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간다.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만들고, 결국 그것은 동조의 모습으로 상대에게 비친다.
그리고 결정적인 트리거가 있다. 상대의 말이 빨라질 때다.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 될 때, 같은 문장이 다른 모양으로 반복될 때.
“그래서 결론이 뭐야?”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너는 진짜 문제야, 네가 이렇게 만든 거라고! 왜 반성이 없어?"
그 속도에 맞춰 대답하려는 순간, 나는 나를 잃는다. 그래서 나는 침묵해 버린다.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 속도에 끌려가면 결국 내 삶의 핸들이 넘어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피하고자 하는 나의 방어 심리는 결국 상대에게 굴복당하고 뒤돌아보면 엄청난 후회를 남기는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늘 전전긍긍 끌려다니던 나의 지난 시간이 심장을 아프게 한다. 타인의 욕망 앞에 내 욕망이 지적인 힘을 잃고 잠식당해 버린 시간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일은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현명해지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내가 흔들리는 순간을 더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어떠한 이유로도 나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대신 내 행동을 바꾼다. 압박을 느끼는 순간 침묵 대신 속도 제한을 건다. 도망치듯 입을 닫는 대신, 보류를 선언한다. 지금은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내 마음이 내 편이 아닐 수 있는 시간을 멀리하는 것. 그게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나는 욕망을 없애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영역임을 안다. 다만 욕망이 내 결정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겠다. 빨간 단추를 없앨 수는 없어도, 적어도 빨간 단추를 누르기 직전의 나를, 내가 먼저 붙잡을 수는 있다.
현명함은 상대의 욕망에 휘둘려 정답을 빨리 내는 능력이 아니라, 내 인생의 속도를 내가 정하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