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핑계 삼지 않기 위해 나는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유를 마치고
곧장 침대로 가지 않고
서재로 나온다.
늦어도 5시까지는 서재 앞에 앉으려고 한다.
집 안이 아직 깊게 잠든 시간,
물 한 잔을 마시고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이 질문이 없던 시절의 나는
하루를 견디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울음에 반응하고, 밥을 차리고
잠을 재우고 나면
하루는 이미 끝나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남으면 쓰는 것’이었고,
대부분 남지 않았다.
결혼 후 다른 지역으로 내려와
곧바로 아이를 가졌다.
임산부의 몸으로 회사를 구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낳았고
그렇게 경력이 단절된 시간은
어느새 4년이 되었다.
첫째 때는 그래도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첫째가 잘 때 둘째가 깨어 있고,
둘째가 잘 때는 첫째가 깨어 있었다.
하루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먹지 않으면
나의 자유시간은 거의 생기지 않았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자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
핸드폰 하고 싶을 때 핸드폰 할 수 있는 자유 등등
나의 자유는 사라졌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경단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이 질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집어삼켰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끝없이 같은 생각만 반복했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 가라앉았다.
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하면
모든 설명이 쉬워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의 선택으로 태어난
나의 아이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을 핑계 삼지 않기로 했다.
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대신,
할 수 있는 시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시간이 새벽이었다.
둘째를 낳고 몸조리를 마친 뒤,
백일 즈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늦어도 5시에는 일어났다.
그 시간이 아니면,
나에게 남는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 새벽에 하는 일들은
소소하게 할 수 있는 부업 지원해보기,
이메일 확인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 등
거창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것들이다.
지금은 점처럼 흩어져 보이는 시간들.
오늘의 선택과 이 순간들이
언젠가는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고,
그 선이 나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이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