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n Aug 11. 2021

업으로서의 공부를 그만둔다는 선언

내가 '아직은' 번역에 눈을 돌리지 않는 이유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제법 명확하게 대답하게 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학부시절 전공이었던 영문학과 사랑에 빠져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수업을 듣고 주어진 과제를 해내는 데에서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인지 능동적으로 연구를 하고 더 어려운 과제를 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영국으로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일부러 현지 졸업반 학부생들이 듣는 세미나 수업만 골라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학과 내의 어려운 수업들을 골라 듣고 시간이 맞지 않을 때에는 청강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확인 과정을 거쳤다. 정말 학업의 길을 걷고 싶은 게 맞을까? 수년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게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대학원은 물론 힘들었지만 모든 수업이 흥미로웠고 나는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좋은 지도교수님과 의지가 되어주는 동기들, 힘들 때 다독여주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선배들까지, 내가 속하고 싶던 세상이었다. 말이 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비슷한 관심사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역경과 고난이 예고되어있는 길이지만 나는 영문학을 깊이 공부하고, 학계에서 다뤄지는 최신 이슈를 따라가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담론에 참여하며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공부를 했다. 내가 사랑하게 된 이 세계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내가 공부하는 이 학문이 현대사회에서도 결코 무용하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택한 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로를 학업에서 다른 방향으로 튼다는 결정은 주변의 우려를 무릅쓰고 선택한 대학원 진학보다 더 어려운 결정이었다. 먼 미래에는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당장은 공부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일임을 인정하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까지는 더 긴 시간과 큰 결심을 필요로 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더 오래도록 슬퍼한 후 결국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다. 공부는 즐겁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고통스럽기도 했다. 항상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체하곤 했다. 정신건강도 덩달아 흔들렸고, 연쇄작용으로 몸도 더 무너져 내렸다. 나는 공부를 오래 하다가 크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내 상태로는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유학을 준비하고, 유학길에 올라 홀로 타지에서 공부를 장기간 해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자 영문학 자체에 대한 사랑의 색도 바래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공부를 업으로 삼는 일은 이런 뜨뜻미지근하고 애매한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눈을 돌렸다.


  비록 공부는 포기했더라도, 문학만은 놓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가장 최근의 이야기들, 그러나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읽히지 못하는 영미권의 책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원만큼은 변한 적이 없다. 2015년 즈음부터 지금까지, 내 꿈이 가리키는 끝은 언제나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책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알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전에 몰랐던 세상을 접하게 되어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토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 구체적인 형태는 조금씩 바뀌었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방법은 언제나 이 방향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장학금 지원서에도, 대학원 학업계획서에도, 내 지인들에게도 수없이 반복하여 쓰고 이야기해왔다. 그만큼 너무나 익숙하지만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출판 쪽으로 진로를 다시 잡았다. 정확히는 편집자. 이렇게 말하면 번역에는 관심이 없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듣는다. 번역 쪽에는 생각이 없다고 조금 난처한 듯이 대답하면 의아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덧붙인다. '아직은' 없다고. 통번역대학원 교수님이 주최하는 번역 특강도 들었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기사나 인터뷰, 가사 등을 번역하는 번역 사이트도 개인적으로 꽤 오래 운영했었으니 번역과 아예 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쪽 일을 택하지 않은 데에는 간단하지만 명확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말하면, 자신감을 가져라, 충분히 할 수 있다, 맥락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한 이유다. 단순히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문학적으로 번역을 훌륭하게 해낼 자신이 없다에 가깝다. 작가의 문체, 고유하게 쓰였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뉘앙스의 단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뜻과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로도 매끄럽게 읽히도록 적당히 의역과 생략을 하는 판단력, 문장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정해진 짧은 기간 내에 해내야 한다는 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완벽하게 하겠냐만은, 이 요소들 중 어느 것 하나가 크게 어긋난 번역을 보면 나는 화가 나곤 했으므로, 내가 만약 번역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가 소수자 문학을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정치적이고 그들이 다루는 이슈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담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은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하는 일보다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들을 선정하여 들여오고 독자에게 닿기 전 더 손 볼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다듬는 일에 더 마음이 간다.

  공부에 전념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공부를 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 커리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금으로서는 불분명하지만, 어느 쪽으로나 도움이 될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가 사랑하는 이 분야에 머무를 것이므로. 이 굳건한 믿음 하나로 어렴풋이 그려놨던 설계도를 지우고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나간다. 2016년 어느 날, 책에 교수님이 써주신 구절대로, 내가 가는 길의 아름다움과 그 길을 함께 걷는 나그네들의 선함을 생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비행기에 천 번의 소원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