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감동을 하는 감동조절장애를 가진 나는 운전을 하다가도 마음이 울컥하곤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앞 차가 나를 위해 비상등을 켜줄 때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앞 쪽에 무언가 비상상황이 생겨서 위험하니 속도를 줄이라고 알려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파도타기를 하듯 차례차례 비상등을 켜는 차들을 보면 마음이 찡하고 인류애가 샘솟기까지 한다. 맹자님 보고 계신가요? 당신이 주장한 성선설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이리도 다른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백 프로 타인을 위한 배려는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위험 상황을 알리지 않으면 자신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비상등을 켜는 것이리라. 어쩌면 우물가의 아이를 걱정하는 인간의 선한 마음도 사실은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도 그렇지만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에는 아이들이 더욱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사라지면 그 마을의 미래, 아니 나라 전체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옛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우물가에서 위험하게 놀고 있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이리라. 얼핏 보면 남을 위한 행동이지만 사실은 나를 비롯한 전체를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도로가 합류되는 지점에서 끼어들기를 하고 난 뒤 나는 거의 비상등을 켜는 편이다. "고맙소."라고 혼잣말을 덧붙이기도 하고. 확실하게 나를 배려해서 속도를 줄여준 경우뿐 아니라 조금 애매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는 아마 의아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감사를 표시하지 하며. 뭐 어떤가. 원망이 아닌 감사는 얼마든지 그래도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비상등을 켜며 "고맙소."라고 혼잣말을 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배려 받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작은 배려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제대로 감사할 줄 아는 멋진 인간이 된 것 같아서이다.
반대로 내 쪽에서 "드루와 드루와" 하며 애써 속도를 줄여주었는데 쏙 끼어든 뒤 감사의 비상등을 켜지 않는 차량도 있다. 고집스러운 그 모습을 보면 너의 배려 덕분이 아니라 그냥 내가 운전을 잘해서 쉽게 끼어든 거야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게다가 그런 운전자일수록 차선 변경을 자주하고 깜빡이도 잘 켜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얌체 같은 그들을 보며 예전에는 약이 오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감사를 표현할 줄 모르는 그들의 삶이 더 팍팍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많은 것들을 당연히 주어진 것, 내가 잘해서, 내가 잘나서 얻은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이렇게 눈을 떠서 새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 역시 선물이고 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도록 하자. 다른 사람의 작은 배려도 흘려보내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더욱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