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놓고 막 쓰는 대용량 로션이 있다. 원래는 로션 같은 것을 일체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2,30대는 굉장히 지적, 아니 지성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전에 손발에 조금 바르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문득 대용량 로션과 인생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닮았냐고? 처음 펌프 형식의 대용량 로션을 쓰기 시작할 때는 생각한다. 와~ 양 진짜 많다. 이거 언제 다 쓰지. 그래서 조금의 망설임이나 걱정 없이 마음껏 푹푹 눌러 짜서 몸 여기저기에 척하고 바른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써도 대용량 로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만 같다. 육중한 무게 덕분에 펌프를 막 눌러대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고. 마치 영원히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로션의 펌프를 푹푹 누르는데 로션통이 조금 흔들리기 시작한다.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애써 외면한 채 넘어간다. 또 다음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로션을 푹푹 짜서 척 바르며 지냈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펌프를 누를 때 묵직한 느낌과 함께 로션이 가득 나오는 것이 아니라 푸슉하는 소리와 함께 로션이 덜 나오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로션통을 들어 무게를 확인해 본다. 뭐야. 이거. 언제 이렇게 가벼워졌지. 벌써 다 써가네.
우리네 인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젊고 건강한 시절에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다. 체력도, 정신력도 계속 유지될 것만 같고. 사실은 끊임없이 늙어가고 있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불투명한 로션통 속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점도 있다. 다 쓴 로션은 버리고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인생은 단 한 번으로 끝이란 사실이다. 로션의 펌프에서 푸슉하는 공기 소리가 난 뒤에야,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깨닫고 아쉬워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거의 다 비어버린 로션통을 들어보고 깜짝 놀라지도 않았으면 하고.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얼마 남지 않은 로션, 아니 시간을 부디 잘 활용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속상해하고, 책임을 물을 시간이 없다.
다만 사랑할 시간이 있을 뿐이다.
마크 트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