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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May 31. 2024

대구 출장길

나는 본사에서 네트워크 설비를 담당하고 있다. 웬만한 문제는 원격 접속으로 해결할 수 있고, 각 지사에도 네트워크 담당자가 있어서 방화벽 같은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을 하기 때문에 내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일은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실물을 보러 가는 것 정도밖에 없다. 지사가 새로 생기거나 지사 위치를 바꾸게 되면 통신상태 확인을 위해 한두 번 다녀오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간 적은 없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처럼 다른 것은 모두 정상인데 몇 가지의 원인을 찾지 못해서 내가 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인트라넷에 결재 기능을 추가했는데, 특정 지사에서만 결재 올릴 때 첨부한 파일이 사라진다는 신고가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모든 파일이 제대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다운로드하여 보면 열리지 않거나 하는 파일도 없고, 결재에 파일을 첨부했는데 사라졌다는 문서도 클릭해 보면 파일이 모두 정상적으로 들어 있었다.
그 지사 네트워크 담당자와 통화한 결과, 내가 본사에서 지사로 내려보낸 공문에서도 파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다른 지사에서는 모두 보인다고 했다. 어떤 지사에서는 보이고 어떤 지사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서버가 본사에 있는 만큼, 다운로드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파일을 열지 못할 수는 있어도 아예 첨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었다. 해당 지사에서 본사 네트워크를 어떻게 접속했는지, 웹서버는 제대로 연결이 되어 있는지 등을 보려면 직접 가서 연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출장 결재를 올렸다.
한 시간 만에 출장 결재가 나서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사장이 호출했다.
"여보세요?"
"그래, 정 부장. 지금은 말고, 이따가 다섯 시쯤 잠깐 올라오게."
"알겠습니다."
세시쯤 미리 나가서 준비하고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안 되겠다. 회사는 이천에 있고 출장지는 대구이다. 바로 출발해서 저녁을 대구에서 먹을 생각이었지만, 그냥 저녁을 먹고 출발하는 편이 낫겠다.
사장은 특별한 일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었다. 혹시 대구역에서도 경주빵 같은 걸 팔면 사 오라는 말이 다였다. 직원이 가면 안 되냐, 왜 직접 가냐, 하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말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여덟 시 반에 해당 지사에 도착했다. 호텔이 회사 근처였다. 지사 사무실을 대구역 근처에 마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사는 상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일반 회사 사무실은 우리 회사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곳은 모두 미용실, 안경점 등 영업점이었다. 출입증을 대고 들어가자 다시 뒤에서 자동으로 문이 잠겼다. 상담하는 곳인지 뭔가 흥신소 분위기가 나는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옆에 있는 작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두색으로 벽을 장식한 휴게실이 있었다. 작은 테이블 두 개와 귀여운 의자들이 있고, 한쪽 벽에는 빔프로젝트용 스크린, 다른 쪽 벽에는 대형 TV가 걸려 있었다. 여기는 직원이 두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 처음에 설치해 준 대로 그대로 있었다. 뭔가 거창한 일을 하려면 외부 사람을 써야 했기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옆에는 유리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무실 문인 것 같았지만 내 카드로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휴게실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설치하고 벽에 있는 랜 포트에 케이블을 연결했다. 그리고 회사 전용망 로그인을 한 후 전자결재 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신고가 들어왔던 대로였다. 파일들이 보이지 않았다. 본사 사무실을 경유해서 들어가 보았더니 붙임 파일이 보였다. 본사 사무실을 경유한 상태로 다시 대구 쪽으로 연결해 보았다. 이번에는 파일이 보였다.
생각보다 쉽게 답이 나왔다. 본사 서버 쪽에서 어떤 보안 설정을 잘못해 놓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곳 네트워크 담당자가 보안등급을 낮추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본사에서 대구 쪽 IP가 보안등급이 낮다고 입력했을지도 모르고. 다행히 지금 모두 점검 가능한 사항이다.
"안녕하세요!"
그때, 지사장이 들어왔다. 이곳은 지사장과 직원 둘이 일한다. 그 직원은 일반 사무도 하지만 네트워크 담당자이기도 하다.
"직원이 지사장님보다 늦게 출근하나 봐요?"
"아니요, 아홉 시까지만 오면 뭐라고 안 합니다. 주말에도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알아서 일하는 친구라서요."
"아, 대단하네요. 옆에서 모범을 보이시니까..."
"아니요, 회식 안 하고 챙겨줄 거 챙겨주면 잘할 사람은 알아서 잘합니다. 제가 인복이 있는 거죠."
그때 직원이 들어왔다. 직원은 사무실 도어록을 번호를 눌러서 연 다음 노트북을 가지고 휴게실의 나머지 테이블에 설치했다.
"여기서 일하시게요? 사무실로 가시지요?"
내가 묻자 지사장이 이상한 듯이 쳐다보았다.
"여기가 사무실입니다."
"네? 여기 휴게실 아니에요? 저기가 사무실이라서 문 잠가 두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 저기는 창고라서 잠가둔 겁니다. 여기서 일을 하고 식사는 배달시켜 먹게 되면 밖에 소파 보이시죠? 거기서 먹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결재 문제는 벌써 보신 겁니까?"
내 모니터 화면에 있는 첨부파일 창을 보고 직원이 물었다.
"네. 답은 나온 것 같네요. 테스트 몇 가지만 하면 한 삼십 분 안으로 결과가 나올 거예요. 금방 정상화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사장은 인사만 몇 마디 하고 직원에게 할 일 몇 가지를 알려준 다음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한 시간 정도 그 직원과 나 둘이서 마우스 클릭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날 뿐, 조용한 사무실이 이어졌다.
테스트를 해 보니 지사 여섯 군데 중 두 군데가 이런 문제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익산에서도 내가 결재 올릴 때 파일을 첨부했는데도 불구하고 파일을 따로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던 적이 몇 번 있었던 기억이 났다. 본사 서버 보안 등급에서 두 군데 모두 보안 등급이 한 단계 낮게 설정되어 있었다. 5단계 중 1단계는 인트라넷 접속이 안 된다. 2단계는 로그인을 하기 위해서는 본사에서 내가 승인을 해 주어야 한다. 3단계는 전자결재 외에 일정표 같은 것을 입력하는 것만 가능하다. 4단계는 전자결재를 읽을 수는 있으나 작성할 수 없고 첨부파일도 볼 수 없다. 5단계는 본사와 동일하게 사용 가능하다. 원래는 협력업체와 이원화하려고 구축한 시스템이었지만 우리가 직접 지사를 세우면서 등급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대구와 익산은 처음에는 지사를 세우지 않고 협력업체를 통해 영업할 계획이어서 4단계로 설정했던 걸까 싶었다.
둘이 있기 너무 어색해서 작업만 끝내고 지사장에게 휴대폰으로 연락한 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대구역 근처에 유명한 게 뭐가 있을까 싶었지만 일이 너무 쉽게 끝난 것이 허무해서인지 즐길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제 늦은 저녁을 먹었던 백반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그대로 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천안아산역에서 다시 차를 끌고 이천으로 가려면 생각보다 번거롭기는 하니까. 대구역에서 경주빵을 팔길래 한 상자 샀다. 그리고 기차가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오려 할 때 잠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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