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으로 놀러 갈까 하고 친구들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섯 명 중 바다에 가자고 유독 조르던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바다로 가지 않으면 함께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 버렸다. 그렇게까지 외골수로 행동하던 적은 없었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유튜브로 뉴스를 보여준다. 계곡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에서 시체 네 구가 발견되었는데, 신원 조회를 해 보니 그 위의 계곡으로 놀러 온 네 명이어서 누군가 죽이고 나서 미처 건져 올리지 못하고 떠내려 보낸 게 생각보다 빨리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어서 제법 떠들썩했는데 그 주장을 뒤집을 CCTV 화면이 발견된 것이었다.
CCTV는 인근 밭을 감시하는 카메라였다. 그 카메라 구석에 그 일행이 놀고 있는 것이 찍혔는데, 갑자기 누가 팔짝 뛰어오르고 다른 사람들도 도망가는 모양이 보였다. 그리고 나서 한 명이 물가로 나와서 누워 있고 다른 한 명이 다리를 물고 뭔가를 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나자 다시 네 명은 물에 들어가 놀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네 명이 차례로 쇼크가 온 것처럼 쓰러지고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그 시각과 발견된 시각 사이에 떠내려왔다고 하면 시간이 딱 맞는다고 했다. 원인은 독사로 추정되었다. 부검 중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 명, CCTV에서 누웠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발목에 뱀에 물린 흔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뱀독보다는 감전이 훨씬 유력해 보아는 장면이었지만 어차피 도움이 되는 의견은 아닌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곡으로 가지 말라던 녀석은 그때까지는 외진 곳이라 강도나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냐는 이유였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렇게 죽어버리면 어떡하냐, CCTV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하면서 더 난리를 피웠다.
'이제 설득이 안 되겠구먼.' 하면서 마침 다들 뱀까지 나온다니 그냥 바다로 갈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 터라 한숨을 푹 내쉬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깨었다.
다시 잠에 들었을 때는 일본 출장을 다녀와서 소득이 좋아서, 축하연이 열렸다. 일본 회사와 연결되는 한국회사와 우리 부서가 함께하는 회식이었다. 제법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곳이었지만, 다행히 뭔가를 먹는 꿈은 꾸지 않았다. 꿈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에서 받아온 선물이었는데, 나무로 만든 상자에 여러 개의 도장을 넣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정사면체 모양에 내 이름이 한글로 새겨진 도장이 있었는데, 딱 맞는 정사면체 모양의 홈이 상자 뚜껑에 나 있어서 거기에 넣을 수 있었고 나무 안에는 자석을 박아 넣어서 그 홈 안에 넣으면 한쪽을 눌러서 밀려 나오게 하지 않으면 혼자 빠져나오는 일이 없게 되어 있었다. 상자에는 기다란 상자 한 변보다 약간 작은 커다란 도장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한자로 멋지게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더 작은 도장 두 개, 양면이 모두 도장이 되는, 대신 양쪽으로 모두 뚜껑이 달린 것 한 개, 망치모양이어서 세 개의 도장을 한 번에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게 한 개 있었는데, 내 이름이 새겨진 두 개 외에는 모두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아서 필요한 대로 도장을 파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비싸 보여서 혹시 이런 걸 받아도 되냐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우리 같으면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또는 "원래 판촉물로 다 드리는 겁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정도로 하고 넘어갈 것을 그 업체에서는 "영수증도 써 드리겠습니다. 현금받고 판매한 걸로 하면 됩니다." 해서 깜짝 놀랐다. 회식이 끝나고 선배를 집에 데려다주는데 시간이 아홉 시쯤이어서 시간 여유도 있어서 집에 들어가는 걸 보고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선배가 "야, 너 뭐 좀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집에 가서 페트병과 이것저것 쓰레기를 가지고 나왔다. "이거 버리고 가라고요?" "아니야, 따라와." 그러고는 다시 동네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녹이는 냄새와 구두가죽 냄새가 뒤섞인 냄새가 훅 불어왔다. 구두 만드는 곳인 것 같은데 간판도 없었다. 선배가 그곳으로 들어가더니 "이건 서비스로 되죠?" "그럼요."라고 허락을 받고는 캔 찌그러뜨리는 기계처럼 투박한 쇳덩어리 기계 앞으로 갔다.
"너 양말만 신고 여기 올라가."
거기 보니 뭔가 작은 막대기들이 마구 박혀있는 상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위에 올라가자 발 모양으로 그 막대기가 들어갔다. 다시 내려오니 선배가 "잘 봐라"하고는 페트병과 뚜껑을 옆의 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잠시 후 김이 나는 것 같더니 빨간불이 켜졌다가 녹색불이 들어왔다. 선배가 녹색으로 깜빡이는 버튼을 누르자 위로 도어가 열렸다. 그 안에는 하얀 실내화 같은 운동화가 있었다.
"밑창은 페트병과 페트병 뚜껑이 섞인 거고 위는 페트병이야."
"색깔은요?"
"색깔은 색소를 넣어야 하는데 이 기계는 전부 하얀색. 안에서 섞이면 이상한 색이 나올 수 있어서 색깔은 미라 정해놓고 못 바꾸게 되어 있어. 다른 색은 다른 기계 쓰면 돼."
"지금 꺼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직 뜨거워.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온도로는 금방 떨어져. 온도가 다 되면 위로 알아서 올라올 거야. 그럼 신어 봐."
5분도 되지 않아 어떤 장대 같은 것이 아래에서 나와 신발을 위로 들어주었다. 플라스틱을 넣자마자 갈아서 섬유와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녹여서 위아래를 만든 다음 다시 옆에서 녹여서 붙이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방식의 단점은 옆부분이 잘 터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본드가 아니라 아예 녹여서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슬리퍼보다도 오래갈 것이라고 했다. 신어보니 따뜻하고 잘 맞았다.
"더 식고 나서 신으면 조금 작아도 안 늘어나는 거라서 힘들어. 지금은 다행히 잘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식기 전에 신어서 그런 걸 수 있어."
다시 구두를 신자 선배가 옆에 있는 쇼핑백을 꺼내어 신발을 담아 주었다.
"이거, 나도 투자해서 만든 거야. 쏠쏠해."
오, 이건 좀 부러웠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