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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02. 2024

커피프린스

꿈이었다.

한 여인이 공장 위에 올라서 있다. 멀리 공장 부지 끝에 세워진 둑과 그 너머 바다가 보인다. 여인은 이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 잘 일인지 떠올렸다. 그녀가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해서 유치한 공장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생겨났을 수십 가지의 추억들이 없던 일이 되어서는 안 돼.' 그래서 마을이 사라져 다른 곳으로 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했고 모두가 마을은 사람이 살며 농사를 짓는 곳에서 그저 농사 지을 용도의 땅만 남고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와서 마을을 부활시키는 대신 기계를 잔뜩 가지고 와서 공업 같은 업만 유지하리라 생각하게 되면서 시청을 찾아가 공장을 유치하는 탄원서를 넣게 되었다.
공장은 강 하구와 바다 사이에 위치해 있었고, 농업용수는 강 상류에서 받았으며, 우리 마을은 어업은 하지 않았기에 바다 오염 같은 것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물고기 잡는 근처 마을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 공장에 어업권도 주면 조심하려나. 우리 마을은 사람이 없어 죽어 가던 마을이었고 어촌 마을들은 아직도 왕성했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마을끼리도 충분히 대화를 했고 동의를 했으니까. 그럼에도 여자는 이렇게 육중한 공장이, 몇 세대를 거쳐도, 심지어 움직임을 멈추더라도 몇 세기는 거뜬히 이 자리를 지킬 만한 이런 엄청난 것이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을의 외형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키고 싶던 마을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씁쓸한 기분으로 천장을 보았다. 하얀 천장에 아침의 푸른 기운이 비치고 있었다. 더워서 잘 때 열어 놓았던 다용도실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주섬주섬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 꿈에서 깨어나서 내용은 마지막 부분만 짧게 생각이 나면서도 그 감정은 지속되는 때가 있다. 원두를 소분해 놓은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그라인더에 부었다. 꿈에서도 커피와 관련된 뭔가를 했다. 원래 마을에서 커피 농장도 운영했던 건가? 여자에게 고백했던 남자가 커피를 입으로 후후 불어 불씨를 유지하는 어떤 기구를 들고 커피를 볶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두만 구할 수 있는 환경이면 되는 거니까 농장은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다. 그라인더에 더 이상 아무것도 걸리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모카포트에 물을 붓고 커피망을 올려놓는다. 그라인더를 열고 가이드링에 대고서 모카포트 커피망에 커피를 붓는다. 모카포트에서 사용하기 위해 커피를 갈 때는 그렇게 곱게 갈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잘 뭉치지는 않지만 뭉친 가루를 풀어주는 기구를 샀으니 기구를 사용해서 잘 풀어주고 뚜껑을 덮는다. 조립을 끝내고 가스불을 가장 작게 켠 다음 모포트를 올려놓고 침대로 와서 걸터앉는다.
꿈을 꾸면 잠에서 깨어나서 현실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 꿈에서 기억나는 양이 달라진다. 오늘은 어젯밤에 인스타그램을 보다 잠이 들었는데, 끄지도 않고 그냥 옆에 두고 잤는지,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지문으로 잠금이 풀리면서 어제 보던 사진이 뜨고 곧 업데이트되면서 새로운 사진으로 새로고침되어 버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잠의 쇠사슬이 끊어져 버린 듯하다. 현실에 있으면서도 그 쇠사슬만 잘 잡고 있으면 꿈을 한순간이라도 더 기억해 낼 수 있는데, 그게 끊어지면 직전까지밖에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 여자의 얼굴은 파스텔로 그린 그림 속의 주인공 같고, 여자에게 커피를 주며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 커피를 볶던 남자는 오래된 명화 속의, 저 멀리 서 있어서 터치 서너 번으로만 표시한듯한 그런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공장은 여전히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하얀 페인트가 눈부시게 빛나는 거대한 철골과 회색이지만 그 틈 없는 직선의 어지러운 향연으로 압도하는 콘크리트 벽이 명확하게 생각난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기억들이, 그 앞부분이 있었던 것이 확실한데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 감정 없이, 아쉽기는 하지만 분노할 일은 아니다, 슬퍼할 일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데 문득 '커피프린스 1호점' 생각이 났다.
언젠가 '커피프린스 1호점'이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오랜 기억 속 존재에 커피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생각난 것일까. 그 드라마는 이제 잊혔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해도 내 주위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던 20년 전 어느 토요일, 세트장이 학교 근처에 있다는 말에 학교에 가면서 멀리 돌아 그쪽으로 걸었던 날이 있었다. 그 뒷길은 그렇게 돌지 않고 중간에 신촌 쪽으로 직진을 하면 마음에 드는 헌책방이 있는 곳이고, 그날처럼 중간에 꺾어서 학교 쪽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가도 주택가가 끝나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이 학교 뒤에 있으니 대부분 하숙을 하고 있을, 아니면 단순히 집 역할만 하는 곳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좁은 골목이 끝나고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온다. 바로 거기가 헌책방 가는 길과 '커피프린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에 가지 않던 길을 향했다. 원래 가던 길은 골목이 잠깐 큰길로 인해 끊어졌다가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다면 새 길은 그 골목길을 끊었던 큰길을 따라가는 경로였다. 햇빛이 가득한 오르막을 올랐다. 여기서 학교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오르막이 별로 힘이 들지는 않았다.
학교 정문을 관통하는 큰길이 나타나기 직전, 이 거리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에 오른쪽으로 '커피프린스1호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실제 커피숍이 아니고 그냥 세트장인 건가. 완전한 주택가여서 아무도 다니지도 않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커피숍이라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지만 장사를 하지 않는다면 그 안의 인기척은 드라마 촬영일테니 굳이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그곳이 드라마 인기를 이용해 문을 연 커피숍인지 실제 세트장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 사이에 시간은 20여 년이 훌쩍 지나 버렸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지방으로 취직하는 바람에 학교는 그야말로 추억팔이로 2,3년에 한 번씩 학교 앞만 한 바퀴 돌아보는 정도였고, 홍대 앞은 이미 내가 다니고 있을 때부터 먹자골목을 철거하고 주차장거리가 주차 못하는 거리로 개편되고 정문도 한동안 버려져있다 싶은 땅에 건물을 실제로 올리기 시작하는 변화를 겪고 있었기에 졸업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20여 년 만에 수도권으로 돌아오면서 방문한 홍대는, 다들 코로나 때문에 어렵다는 와중에도 공항철도와 경의선이 만나는 곳, 연남동, 합정 쪽으로까지 상권이 커져 있었고 호기심에 커피프린스도 다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거리를 찾았지만 찾지 못하고 네이버지도를 꺼내고야 말았다. 네이버 지도를 보니 그때의 그 주택가가 모두 상권이 되어 있었다. 상권이 끝나고 주가가 시작되는 곳을 찾으니 찾지 못한 것이었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던 철도는 그대로 터널을 덮어버린 건지 그 위로 건물이 올라가 있었고 조용해서 소리만 질러도 누군가 내다볼 것 같던 주택가는 온통 술집과 고깃집이 차지하고 있었다. 의아해하며 상권이 살아났으니 커피프린스도 가볼 수 있겠다, 싶어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 올라갔는데 간판은 그대로이지만 쇠사슬과 폐허로 변해 버린 카페가 있었다.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혼술 바가 생겨서 한동안 그 앞을 지나다니게 되었지만, 아직도 아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날 듯 기억나지 않는 꿈과 꿈에 나온 커피는 예전 내 기억 속의 거리와 모두 햇빛 아래에 잠든 듯 조용하던 주택가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활기찬 커피숍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제 내 손에 닿는 커피 원두를 갈아내어 직접 내린 모카포트 커피는 언제든 버스만 타면 방문할 수 있는 홍대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홍대 거리에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카페의 간판이 걸려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몇 년 전까지 영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리 아쉽지는 않다. 20년 전에 방문해 보았다면 아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 기억은 기억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고 만져보지 못해 애틋한 것도 물론 있다. 모두 사람이 하는 영업이니까 괜히 방문했다가 진상과 마주쳤거나 너무 손님이 많아 투덜대는 직원을 마주쳤다면 지금 아쉬운 느낌은 들지 않을지도 모르니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내 추억 보정은 그저 그 간판만 오래도록 달려 있다면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새로운 건물만 올라가지 않는다면. 추억을 깔고 들어서는 건물은 꿈에서 본 육중한 공장 같은 느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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