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Jun 03. 2024

일상의 글쓰기, 그 지향점

저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합니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보기 좋아진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장점은 몸이 건강해진다는 목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보기 좋은 몸을 갖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건강을 잃었다는 글이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곤 합니다. 보기 좋은 몸은 건강한 몸이라는 것을 건너뛰고 보기만 좋은 몸을 만들려고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지만 눈으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냄새로도 이미 맛있어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맛이나 냄새를 무시하고 보기에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식당 진열장에 있는 견본만 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본질을 무시하고 좋은 결과처럼 보이는 것을 얻고자 하면, 본질은 백이면 백,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매일같이 글을 쓰려고 몸부림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기를 가지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10여 년 전부터 그냥 매일 하는 일상의 일부였기 때문에 어제도 운동을 했고, 오늘도 운동을 하고, 내일도 운동을 할 것이다, 수준으로 습관처럼 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습관이 된 탓에, 2,3일 운동을 하지 않으면 뼈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 나면서 가슴이나 어깨, 허벅지 등이 근질근질해집니다. '건강해지려면 운동을 해야겠다'라거나 '좋은 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목표를 정했다면, 그래서 하기 싫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일입니다. 저는 하루에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만을 순수한 운동에 투입합니다. 그냥 그날그날 '오늘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만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은 날 몸이 느끼는 차이가 있기에 운동을 매일 하게 됩니다. 운동을 하는 것이 이미 제 일부가 된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습관처럼 볼펜을 들고, 습관처럼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지만 항상 생각이 정리되면서 글이 술술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런 짧은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그 상태로 이틀만 지나도 머릿속이 마구 헝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글을 쓰면서 하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머릿속 전체를 정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하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한두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이 머릿속을 실제로 정리해 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루에 많으면 두세 시간도 그대로 앉아서 내내 글을 쓰기는 하지만, 보통은 삼십 분 정도만 글을 씁니다. 다시 읽으면서 비문을 고치고 하는 시간은 별도로 필요하기는 하지만, 하루라도 빼먹으면 근질근질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글쓰기 역시 운동처럼 제게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계속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무한하고 몸은 유한합니다.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이 작동하는 원리가 유한해서 넘쳐서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되는 물리적인 몸과 동일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은 몸의 상태를 채워주는 것이 목적이라 지금처럼 유지만 할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은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키운다는 것이 단순히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 것만 의미한다면 책을 읽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데 글쓰기는 그럼 왜 매일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고민을 상당히 오래 해 보았는데, 결론은 운동을 바른 자세로 계속하면서 그 자세로 무게를 점점 올리듯이, 글의 경우에는 반대로 글의 무게를 점점 올려 가면서 바른 자세를 찾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글의 자세라면, 문체를 의미하겠지요. 나만의 문체를 찾는 것이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가게 되는 목적이 아닐까요?
내 문체의 특징은 내 글을 모두 모아 보아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문체를 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단, 바꾼다는 것은 바뀌기 전의 문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남들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쓴다고 할 때, 누구든 잘 읽히는 문체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입니다. 내가 내 문체를 그런 문체에 가깝게 한다고 할 때는 단순히 글의 어투를 바꾼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전체적인 문체를 그 방향으로 가깝게 한다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해온 덤벨의 자세가 무게를 더 올리게 되면 팔꿈치를 다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바로 자세를 바꿀 수 있겠지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습관도 아직 없는데 자세를 교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자세 교정이라는 것은 일단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생기는 것입니다. 글의 문체 역시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야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직 저는 또렷한 문체가 잡히지 않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누구의 문체를 따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어떻게 고쳐야겠다는 것도 없습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교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문체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미련이 생기는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건강은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지 않으니 나이를 먹으면서 운동이 필요해집니다. 건강한 적이 없었다면 운동도 금맥을 찾으러 다니는 것처럼 뜬구름 잡는 일로 보였을 겁니다. 보석을 찾기 위해 원석으로 보이는 돌들을 쉬지 않고 캐내는 것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없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원석의 이미지는 불가능이라는 가능성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원석을 찾고 있다기보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제 문체를 되찾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하고 싶습니다. 아직 써 보지 않았을 때, 아직 쓴 적이 없을 때 잃어버린 것이기 때문에 써 보아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면서 헤어진 제 문체가 저를 기다립니다. 저는 수많은 글을 통해서만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프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