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이야기

기차여행과 유목민족(1)

by 루펠 Rup L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 지루한 여행이라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기차의 좌석은 내가 처음 보는 배치였다. 창가에 커피숍처럼 밖을 향해 앉도록 되어 있고 창문 바로 앞에는 테이블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자리씩 나누어져 있어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도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각 자리들은 바로 뒤에 또다시 테이블과 좌석이 하나씩 더 있었었다. 그래서 기차를 위에서 보면 가운데 통로가 있고 두 자리씩 나누어서 통로에 등을 지고 앉는 좌석과 그 앞의 테이블이 있다. 그리고 그 테이블은 또 다른 좌석의 등받이와 닫고, 그 좌석들 앞에는 또 테이블이 있는데 그 테이블은 창문과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여행의 꿈에서 나의 목적지는 정작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것은 그 여행 중 장거리 여행이라 잠이 든 사이에 꾼 꿈들 뿐이다. 책을 읽은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멍하게 창밖을 내다보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내 뒤에는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앉아 있었다. 두 명이 내 뒤에 않고 옆자리 뒤에 자녀 둘이 앉았다. 내 옆에는 어떤 남자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수시로 추입구 쪽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보아 연락할 데가 있는 것 같았다.
기억이 나는 꿈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 꿈과 두 번째 꿈은 연결이 되었다. 첫 번째 꿈을 꾸었을 때 눈물을 마구 흘리며 일어나서 뒷자리의 부부가 놀라서 물과 손수건을 주었다. 첫 번째 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수렵 민족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곳은 사막과 비슷했지만 땅이 온통 붉었다. 그리고 큰 산이 있는데, 그 산으로 올라가면 매우 춥기 때문에 넘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예전에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그 산을 넘어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매우 오래전이었고 또 먹을 것과 관련도 없는 이야기여서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그 산 너머에는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 매우 큰 물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물은 피처럼 짠맛이 난다고 했다. 그리서 우리는 그 산 너머를 대지의 혈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실제로 넘어가면 그런 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산을 따라 산 아래에 텐트를 치고 이동하며 살았다. 이삼 천 명 되는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도 산 아래에서 한 바퀴 돌아오는 데 몇 년이 걸렸으니 매우 넓은 공간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텐트를 보통 치는 곳에서 말을 타고 두 시간 정도 산 반대쪽으로 달리면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 동물들은 어째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냥은 너무 무리해서 하지 않았고, 그저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살았다. 사냥을 하는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나아가면 강이 흘렀다. 처음부터 강을 따라 텐트를 치려는 움직임도 간간이 있다. 지금도 가끔 어린 친구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물어보고는 하는데, 물이 있는 곳은 동물들에게 양보를 해야 충분히 사냥을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우리 때문에 물을 찾아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물이 없는 곳에 있는 놈들은 죽어버려서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똑같이 잡아먹더라도 양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나중에는 우리도 굶어 죽을지 모른다,라는 설명을 내가 어릴 때 들었던 그대로 어린 친구들에게도 해 준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내 말을 잘 듣지도 않았다. 수긍하는 것 같았지만 계속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사냥을 갈 때도 따라가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일은 없고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만 간신히 해냈다.
어느 날 밤, 혼자 길을 나섰다. 모두 잠들고 난 시간에 움직여서 나는 불만 꺼지지 않게 정리해 두고 누울 때까지도 그 애가 나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제쯤 나갔는지도 몰랐지만, 아침에 그의 작은 움집에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하기는 했다. 그때까지는 뭔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 애가 너무 소극적이어서 걱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애가 향한 곳은 먼 곳도 아니고 바로 뒤 산이었다. 아래에서 뻔히 보이는 위치에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멍하게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내려다보는 건지 앞을 보는 건지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다른 청년들과 함께 올라가 급히 데리고 내려왔다. 그 애가 말했다.
"아빠, 여기는 진짜가 아니에요. 나도 아빠 아들이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목소리를 들었어요."
"무슨 목소리?"
"알 수 없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어요."
"어디서?"
"자다가요."
"그건 꿈을 꾼 거야."
"아니에요. 계속 듣기 위해 올라온 거예요. 여기 올라오니까 목소리가 더 잘 들렸어요."
"뭐라고 했는데?"
그때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고기도 전혀 먹지 않았다. 삼일째 되는 날, 나는 젖을 끓여서 주었다.
"무슨 생각을 해도 되는데, 살아 있어야 생각을 하든 말든 할 것 아니냐? 이것 좀 먹어라."
아이는 억지 미소를 지었지만 일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빠, 좋았어요."
"뭐가?"
"아빠하고 사는 거요. 사냥도 잘 배웠는데, 나름 차근차근 배웠는데 써먹을 일이 없네요."
"왜 써먹을 일이 없어? 많이 먹고 이제 다시 사냥 나가야지."
그 말에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없이 끓인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갑작스러워서 아무 말하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아빠"
"어서 다 먹어."
"다 먹고 같이 가볼래요?"
"어딜 같이 가?"
"아까 그 바위."
"알았으니까 얼른 먹어."
아이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하지만 표정은 딱히 변하지 않았다. 나는 다 먹은 그릇을 모래로 닦고 다시 아이 천막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벌써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냥 갈 때처럼 샌들까지 신은 상태였다.
"신발은 왜 신어?"
"아빠, 바위에 지금 가요. 같이 안 가시면 저 혼자라도 가야 해요."
"알겠다. 천천히 가고 있어. 따라갈게."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혹시 몰라 사냥도구를 챙기고 샌들을 신었다. 그리고 나서니 아이는 마지막 천막을 지나가고 있었다. 굳이 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지만 곧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이 시작되면서 오르막이라 빨리 걷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오르막을 이렇게까지 가본 것은 처음이어서 아이를 간신히 따라잡았다. 나무도 하나도 없는 언덕 같은 산으로 보았는데 생각보다 경사가 심했다. 어떤 바위 앞에서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잠깐만 서 봐, 안 보여!"
그러자 아이가 그 바위 뒤에서 고개를 쓱 내밀었다.
"여기 사이에 길 있어요. 여기로 오시면 보여요. 숨겨진 그런 건 아니에요."
가까이 가 보니 정말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누군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길이 나 있었다. 그 사이로 들어가니 아이가 앉아 있던 그 바위가 나타났다. 그 옆에 서 있던 아이가 다시 바위에 앉았다. 아침에 텐트에서 보였던 그 자세였다.
"아빠, 아빠도 저처럼 이렇게 앉아 보세요."
아이가 진지해서 나도 옆에 한 번 앉아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텐트가 쳐져 있는 것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니 장관이었다. 밤에 불을 피울 때 보면 훨씬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텐트 쪽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산 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나 싶어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정적뿐이었다. 사실 내 도구 내려놓는 소리도 그리 크게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이어서 마을에서 아무나 텐트 밖에 나올 일이 있으면 우리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텐트 안에서 요리를 해 먹고 누워서 쉬고 있을 것이었다.
"아빠, 저는 들려요."
"뭐가 들려?"
"아빠, 혹시 이런 거 얘기하면 모르시겠죠?"
"뭔데? 들어야 무슨 말하는지라도 알 것 아니야."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빠, '기차'라는 말 알아요?"
"아니, 그게 뭔데?"
"모르겠어요. 그럼 20이라는 숫자에 삐삐 거리는데 그게 뭔지 아세요?"
"아니..."
"저는 다 자라서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사냥꾼이 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빠가 돌아가시면 다 없어질 일이에요."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말이냐? 너도 여자를 얻고 아이가 생기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거다."
"죽는 게 아니에요. 그전에도 아빠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 마을은 다 사라질 거예요. 여기 산도. 나머지 사람들은 선택권이 없어요. 아빠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빠도 선택하는 건 아니겠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완전히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 눈물을 보고 말했다.
"아빠도 내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려고 좀 해 주세요. 아니면 저를 기억만 해 주세요.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아빠 대신 목소리를 잡은 사냥꾼으로라도 기억해 주세요."
"목소리를 잡았다는 건 또 무슨 말이냐?"
"아빠가 들었어야 하는 목소리예요. 지가 들으면 안 되는 거였어요."
애가 미친 정도를 떠나서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들은 저렇게 진지하게 하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그 모든 일이 이 바위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여기 와서 이상해진 것 같은데 밤에 대체 왜 여기 온 거냐? 사람들에게 말해서 바위를 부숴버려야겠다."
"아니요, 내내 혼자 있을 때는 뭔가 소리가 들렸어요. 계속 웅웅 거리는 소리가 제 귓가에서 울려서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 목소리가 특히 커서 알아듣기 쉬운 거예요. 그 목소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조용한 곳에서 들을까 해서 올라온 거예요. 밤이라 소리가 멀리까지 들를 거니까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라면 더 잘 들릴 곳이니까요."
"그래서 여기서 더 잘 들리더냐?"
"아니오, 똑같아요. 텐트에 있을 때나 여기 있을 때나."
"그럼 그 목소리가 뭐라고 하는데?"
"말은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기차라는 말도 하고 표라는 단어도 계속 반복되는데,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에요."
"뭔데?"
"아빠 일어나 앉으래요."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앉았다.
"그다음에는?"
"아니, 일어서라는 게 아니라, 잠에서 깨라는 거예요."
"나는 자고 있지 않잖아. 얘야, 대체 왜 이러는 거냐?"
"아빠, 귀를 잘 기울여 보세요. 안 들려요?"
내 눈에서는 쉬지 않고 눈물이 흘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잘못 키웠다는 소리는 듣지 않으려고 열심히 사냥도 가르쳤는데 너무 심하게 한 적이 있나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지만 답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답 없는 순간이 지나고 아이가 내 얼굴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았다.
"제가 생각을 해 보았는데요, 제가 아마 가로챈 것 같아요."
"또 뭘 말이냐?"
"그 소리는 아빠가 들어야 해요."
무슨 소리길래 그러냐, 내가 들어도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나도 똑같이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아이는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나는 울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소리를 질렀다. 내 소리를 듣고 천막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었다. 몇 명이 천막에서 산 쪽으로 걸어오다가 아이를 보았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나는 소리를 들었다.
"일어나셔야 해요. 표 보여주세요."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표 검사를 하기 위해 서 있는 여자분을 보았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깨어나서도 계속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뒷자리 아저씨가 손수건을 주었다. 눈물을 닦으며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어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은 표를 확인하고 곧 사라졌다. 우리 칸에서 내 표만 남았던 모양이다.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을 테니 숨좀 골라. 그러다 과호흡 오면 큰일 나."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꿈에서 아들이 죽었어요."
옆에서 아 주머니가 딱하다는 표정을 했다. 아저씨가 물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결혼을 했어? 총각인 줄 알았네."
"결혼 안 했습니다. 아들도 꿈에서만 있었지 실제로는 없어요."
"원래 없는 아들이 꿈에서만 있었는데 꿈에서 죽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냥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서럽게 울어서, 풀어야 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설명해도 된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신경 쓰이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야, 뭔가 다른 게 걸리는 게 있어서 그런 꿈을 꿨을 수도 있으니까. 쉬어요. 말 안 걸게."
나는 다시 앞을 보고 멍하게 창밖을 보았다. 그때 양복을 입은 사람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아까 울고불고한 것을 보았던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나는 애써 모른 척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무들이 그림자처럼 휙휙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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