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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07. 2024

백작은 수술을 명한다

백작은 누군가 자신을 비웃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했다. 그것은 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눈과 코 사이 안쪽에 인공 성대를 달도록 했다. 코로 자연스럽게 숨 쉴 때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비웃거나 해서 풋, 하는 터지는 듯한 공기의 압력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인공 성대에서 '음음', 하는 듯한 목 가다듬는 소리가 고음으로 나게 하는 장치였다. 마치 잘난 척하는 다람쥐가 내는 소리 같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이 사실이 유머스러운 가십을 전하는 잡지에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비난이 있었다. 아무리 하인이라고 해도 물건이 아닌데, 그것도 사람 몸에 칼을 대서까지 한 사람의 취향을 맞추겠다는 것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가만히 있다가는 다른 귀족들도 하인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었다. 천민이 평민이 되거나 평민이 귀족이 되는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지만 평민이 천민이 되는 데에는 수만 가지 이유를 붙일 수 있다. 어느 귀족의 집에서 한두 달 일하고 나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그 귀족을 위해 일했다는 이유로 천민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그 집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몸에 낙인처럼 새길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백작은 사람들이 남을 비웃는 것으로는 무어라 말을 하지 않았다. 하인들 역시 다른 귀족을 비웃는다고 해도 별 말이 없었다. 그 자신을 비웃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는 또한 이상한 쪽으로 신경질을 자주 내는 성격이었다. 트림을 하는 소리나 트림할 때 나는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 본인도 후에는 30분 동안 하인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식사 직후에 간단한 운동을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인들을 만나지 않을 뿐 방문을 열어두고 있어서 아무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가 30분을 경계로 설정한 만큼, 하인들도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을 합쳐서 한 시간은 무조건 식사 때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인들 별로 교대로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는 식사 순서를 종이에 표로 그려 놓으면서까지 식사와 그 뒤의 30분을 즐기는 하인을 부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특이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평범하려고 노력했다는 평을 받는 백작은 나이가 들어서 약간 더 심한 증세를 보였다. 젊을 때 도입한 하인들의 인공 성대는 나중에 백작을 비웃는 것이 들키면 거액의 배상금과 함께 바로 해고를 받아들이겠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면 굳이 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격이 조용하고 웃음에 헤프지 않다거나 하면 접합수술로 다시 원상복구에 준하는 상태로 되돌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백작의 집에 머무는 하인들 외에는 그런 위치에 성대가 있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생각보다 점잖아서 일을 그만두고 도시에 나가면서도 접합수술을 하지 않은 하인들이 몇몇 있었고, 그 효과가 제법 좋아서 한때는 해당 수술을 받겠다는 사람들이 병원으로 모여들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다른 위치면 몰라도 그 위치는 백작과 독점 계약이 되어 있어서 수술할 수 없다고 했고 대중이 백작의 눈치를 보아야 하느냐는 분위기에 결국 백작이 직접 나서서 비웃음이 왜 필요한 행위이고 평범한 삶에서 그 수술이 왜 필요 없는지, 그 수술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자기 집에 도입되었지만 그로 인해 자신 또한 얼마나 하인들에게 미안해하고 있는지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백작의 노년에 하인들에게 강제한 수술은 백작의 공적인 사과가 없었고 그로 인해 하인들도 대다수 나가 버리게 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권 모독이었다.
백작은 비웃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정신 활동이니 못 본 척 넘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의로' 인공 성대를 달겠다고 하면 수술비는 지불해 준다고 했다. 아직 인공 성대를 뺨 안쪽에 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이미지가 아니었고, 어쩌면 좋은 생각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다들 달았다. 마부는 그 성대를 평소에도 자유자재로 써서 말에게 입을 벌리지 않고도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노년에 도입한 수술은 인공성대와 달리 겉에서도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혈관 같은 관을 눈물샘 옆으로 달아서 목구멍으로 연결을 한다. 입 안쪽, 턱 옆의 살 안쪽으로 통과하는 관은 어쩔 수 없이 겉에서 보면 기다란 벌레 같은 것이 얼굴 피부 아래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이것을 강제하게 된 계기가, 트림을 할 때 냄새가 나는 것을 눈으로 느껴보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가학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따끔한 느낌이 나면 30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취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인공성대가 있는 사람은 인공성대가 있는 곳을 피해서 관을 돌아서 달아야 하기 때문에 눈물샘이 수시로 자극을 받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일이 잦았다.
이 일로 60명에 달했던 하인들이 5명으로 줄어듬과 동시에, 그 다섯 명의 수술날에는 기자들이 병원 앞에 진을 치는 사태도 벌어졌다. 병원들은 그런 일정은 비공개로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기자들은 어떻게 눈치를 채고 평일임에도 이상하게 수술이 잡혀있지 않은 시간은 백작의 하인들이 수술받는 시간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한 것이었다.
수술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는데, 수술 후 나온 하인들의 얼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격적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는데, 괴물로 만든 이유가 고문을 위해서라고, 백작이 그 통증과 괴로움을 버티면 나머지 그만둔 사람들의 연봉을 모두 나누어 주겠다는 식의 악마스러운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었다. 백작은 하인들에게 그 수술을 하게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정말 필요했고, 그 수술에도 불구하고 남은 하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기는 했으므로 그 연봉을 다 나누어 주려고 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백작은 그 수술로 하인들의 길을 막을 생각도 없었고, 관을 다시 빼내는 수술도 무척 쉽다는 것을 확인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백작과 거래하는 병원들 외에는 의사와 병원들이 이름을 걸고 신문에 다들 나서서 심각한 실명이 우려된다는 등의 기사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목숨을 돈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악독한 귀족제 철폐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귀족들은 가까스로 백작의 죽음으로 귀족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백작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그 충격은 다시 대중들을 잠재웠다. 백작의 하인들의 수술은 이제 다시 기사로 오르내리는 일이 없었고, 귀족 집안에 대한 가십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은 모든 귀족 가문과의 싸움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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