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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13. 2024

안테나

내가 어렸을 때 텔레비전 채널은 공중파 방송밖에 없었다. 초등학 때 SBS가 개국을 했고 중고등학교 때도 케이블 방송 같은 것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중파도 집으로 들어오는 기본 케이블이 공중파 방송만 지원하는, 케이블 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아니라 옥상에 설치한 안테나를 통해 수집한 전파 수신하말 그대로 공중파 방송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채널이었지만 교육방송은 학교에서 꼬박꼬박 틀어 주었고 나머지 채널은 돌아가면서 만화영화를 보았다. 채널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방송 편성표를 신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케이블 방송이 그리 많지 않을 때까지는 케이블방송까지 합친 편성표가 실린 신문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도, 우체국 금융 최초의 횡령사건(이걸 왜 자꾸 금융'사고'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농협도 포함해서.)이 발생했을 때에도 모두 공중파를 통해 접한 것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을 트위터를 통해, 그렇게 엄청난 일인지 모르고 해일이 논 위를 덮고 있는 사진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닐하우스로 착각하면서 접했는데 그게 20년 차이도 되지 않으니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한 이다.
안테나로 전파를 수신하던 공중파 방송 시청 시절에는 갑자기 텔레비전이 지지직거리면 옥상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만졌다. 보통 너트가 풀려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어서 해당 안테나 가지의 위치를 잘 잡은 후 다시 조이면 되었다. 영화 같은 데서 보듯 옥상에서 집안에 있는 사람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살짝 풀고 이리저리 비틀고 움직이다가 집안에서 잘 나온다고 하는 순간 그 위치에 고정하는 그런 정밀한 작업은 없었다. 그건 아주 옛날이고, 빠진 너트를 원래 고정하는 위치에 맞게 다시 조이기만 하면 다시 방송이 잘 나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과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 사이에 괴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의무감이다.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내 마음이다!'라고 아이들이 우길 때, 그 마음이어서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다. 생각과 마음. 마음이 따르면 생각대로 몸이 따르는 것일? 마음이 들었을 때 마침 생각 들면 몸이 따르는 것일까? 가장 이상적인 것은 후자이지만 그렇다고 전자가 글을 쓰기 힘든 건 아니다. 마음은 글을 쓰고 싶지 않은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면 괴로울 것이다. 아니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은데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수 있다. 의무감이 아니라, '하고 싶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따르지 않으면 의무감이나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결국 쓰이는 글을 최종적으로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표시되는 방송 화면에 비유하면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쪽을 방송국 쪽, 내가 뭔가 조정할 수 있는 쪽을 안테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거나 저항이 있다는 말은 텔레비전에서는 화면에 제대로 표시가 되지 않는 것이므로 지지직 거리는 현상과 같을 것이다. 안테나 쪽은 얼마든지 전원을 공급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충분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글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방송국이 문을 닫으면 방송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안테나가 이상해서 방송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손봐야 할 일인 것이지 당연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실제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기보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될까? 마음을 방송국, 이성을 안테나에 비유하는 모델에서는 정확히 그렇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에 제대로 공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너트를 조여서 각도를 맞추든 뭔가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자라면 그 생각과 함께 글을 썼다. 하지만 세상에는 적을 가지고,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결론을 미리 만들어 놓고 글을 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글을 써지는 대로밖에 쓰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의도에 맞는 글을 쓸 필요가 있을 수 있으니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가끔은 그렇게 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이 흐릿하게 자꾸 뭔가가 발목을 당기는 것은 느낌일 때, 나 자신의 무엇을 바로잡으면 될까? 어느 부분에서 너트가 빠진 것일까?
아직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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