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hill Princess
사과나라 설탕공주
옛날 옛날에 그랜드힐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랜드힐은 사과나라라고도 불렸습니다. 아니, 그랜드힐이라는 이름은 공문에만 등장했고 이웃나라에서는 모두 사과나라라고 불렀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나라의 이름을 사과라고 부른 이유는 누구나 한 번에 알겠지만, 그 나라에서 열리는 사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맛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주변 나라에는 밀이 많이 열렸지만 이 나라는 산이 많아서 평지가 필요한 곡식은 재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과일을 쌀이나 다른 곡식, 과일들과 바꿔오고는 했습니다.
사과나라는 사실 이런저런 과일들도 많이 자라기는 했지만 유독 사과에 단맛을 내는 데 성공한 선왕의 공이 가장 컸습니다. 이웃 나라에서는 일명 사과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제렌불린 왕은 궁전 마당에 수십 그루의 사과를 심고 일생동안 각 나무마다 다른 실험을 한 끝에 맛있는 사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고, 나라 안의 모든 사과를 자신의 비법대로 키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습니다. 농부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똑같은 수입으로 엄격한 지시에만 따라야 했으니까요. 사과가 열리는 양도, 맛도 그다지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왕이 죽고 제레불린2세가 즉위한 지 1년 만에 모든 상황은 바뀌고 맙니다.
제레불린2세가 즉위하자, 농부들은 선왕의 지시를 어기려고 들었습니다. 왕실 또한 그런 시도를 억누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과는 시작일 뿐이고 왕실의 어떤 규칙을 이어서 더 바꾸려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실에서는 수없이 고민한 끝에 사과로 시작된 일이니 사과로 끝맺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안되면 결국 무력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각 농지별로 사과를 받아서 대표를 뽑고 각종 특혜를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제레불린2세 즉위 3년 기념식날, 궁전 앞마당에서는 전국에서 온 사과 60 품종의 경연대회가 열렸습니다. 품평회에는 60개 농지의 대표들이 모였고, 각자 다른 지방의 사과를 먹고 평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평가를 하기 위해 모였던 농부 대표들이 우리나라의 사과가 얼마나 맛있어졌는지, 상향평준화되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네 시간이 넘는 토론 끝에, 농부들은 평가서를 만드는 대신 왕실에 성명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 성명서에는 제레불린1세에 대한 반발을 책임지고 막겠다는 내용과, 제레불린2세 이후 왕실에 절대 충성하겠다는 내용, 그리고 사과 재배에 있어서 이웃나라에 비법을 유출하는 행위는 왕실에서 책임지고 막아달라는 세 부분으로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사과나라는 명실상부한 사과에 특화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교통수단이 부족한 것도 있고, 인구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나라가 지금의 도시 하나 만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하나 크기의 면적이면 수십 수백 개의 나라가 있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날 며칠만 걸으면 이웃나라가 나오곤 했습니다. 그만큼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농민들은 자기들끼리 비밀 유지는 하겠지만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나라에서 배신자를 처단해 달라 요구한 것입니다.
왕실에서는 사과를 국가의 특산품 및 마스코트로 지정했습니다. 사과나무는커녕 사과조차도 왕실 문장이 찍힌 종이로 봉인된 박스에 담긴 형태 외에는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변 나라들 사이에서 사과의 상징이 되었고, 그랜드힐 나라는 예전에 비해 반도 안 되는 양의 사과를 수출해서 온 국민이 몇 년을 먹을 만한 밀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레불린2세에게는 왕비가 없었습니다. 딸을 하녀들이 키워주고 있었지만 왕비가 오래전에 죽었고, 나라에서는 급히 딸도 왕실에서 지정할 경우에는 왕위를 이을 수 있게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왕비를 들여 아들을 낳기를 바랐습니다.
제레불린2세는 즉위 8년, 공주가 12살이 되었을 때 왕비를 맞기로 했습니다. 가장 큰 사과밭을 가진 파인마운틴 가의 첫째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사과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교양도 넘쳐서 모두 왕비감이라고 하던 여자였습니다. 교양을 지식으로 익힌 것이 아닌 지혜가 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드러냈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예절로 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도 물론 예쁘기는 했지만 왕은 별도의 궁중 교육이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궁중 교육은 공주의 군주교육을 위해 재편되느라 한창 끝없는 토론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 토론이 길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파인마운틴 가에서 가마를 타고 와서 바로 혼례에 이어 왕비 즉위식까지 여섯 시간에 걸쳐 따로따로 이뤄진 행사를 치르고 나서 왕비는 그제야 공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짐이라고는 화장품 몇 가지와 액자뿐이었습니다. 빈 액자를 벽에 걸고 화장대에 화장품을 두고 나서 왕비는 하녀를 보내 공주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똑똑.
공주가 왔습니다.
"들어와"
공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열두 살 소녀라기에는 너무 뚱뚱하고 얼굴에도 잔뜩 여드름이 나 있었습니다. 왕비는 처음 생긴 딸이라 사랑스럽게 생각이 들어 앞으로 불러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평민 출신이니 꼭 그렇게 딱딱하게 어마마마라고 부를 필요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뾰롱통하게 있던 공주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주머니를 꺼내 입구를 열고 각설탕을 입에 넣었습니다. 순간 설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얼굴에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나는 거구나, 하고 깨달은 왕비는 공주에게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구나. 그 주머니는 이제 나에게 주고 조금씩 줄이도록 하자. 네 방에도 설탕이 있지 않니?'라고 하며 주머니를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버릇없게도
'이 마녀가!'라고 하더니 방에서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딸을 아꼈고 꼭 예쁘게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사랑받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습니다. 화가를 불러서 공주에게 여드름이 없는 모습으로 초상화를 그리게 한 다음 가져온 빈 액자에 넣고 걸어 두었습니다. 왕과 함께 가족사진을 넣으려고 했지만 공주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너무 컸던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드름이 처음보다는 많이 사라진 것을 보고 왕비는 공주가 설탕을 완전히 끊으면 정말 예뻐지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만 줄였는데도 저렇게 예뻐졌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공주의 방에 가서 공주가 책상, 서랍, 선반, 옷장에 숨겨둔 설탕을 모두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모두 통에 담아서 주방에 두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제적인 방식을 모두 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방 하녀들도 공주의 편이었습니다.
"왕비님, 이런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사실 이렇게 공주께 강압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빼앗는 것은 지금 사춘기 때에는 무척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처럼 조금씩 줄이는 것이 인내심은 필요하나 어른에게 조금 더 있는 것이 인내심 아니겠사옵니까. 우리 공주님은 각설탕, 특히 하얀 각설탕을 무척 좋아하셔서 심지어 별명도 백설탕 공주, 백설 공주이십니다. 그런데 설탕을 한 번에 끊겠다니 그 반발감은 얼마나 클지 저희는 상상도 할 수 없나이다. 왕실에 근심이 생기면 그것은 곧 나라의 근심이니 다시 돌이켜 생각하소서"
하지만 그런 청은 왕비를 흔들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공주의 교육에 대한 부분은 자신이 왕자를 낳더라도 공주를 여왕으로 먼저 세우는 것이 도리라고 완강하게 믿고 있는 왕비에게는 첫 번째 가는 임무였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식사와 티타임이 모두 끝나고 궁전 안에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공주가 비명을 지르며 온 방 안을 헤집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울며 소리를 지르면서 온 방의 서랍이면 서랍, 선반이면 선반을 모두 쥐어뜯듯이 뒤지는 것은 필시 한 마리 사나운 고양이 같았습니다. 비명 소리에 놀란 왕비가 공주의 방 앞에 다다랐을 때 발견한 것은 공주가 무서워 방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 하녀들과 창문을 깨려고 의자로 내리치는 공주의 모습이었습니다. 왕비가 참다못해
"뭐 하는 짓이야!"
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공주는 왕비를 노려볼 뿐 대답 없이 창문만 내리쳤습니다. 왕비가
"충분히 했어. 이제 그만하고 자. 자고 일어나서 얘기해."
라고 엄하게 말했지만 공주는
"너, 나 죽이려고 궁전 온 거지? 이 마귀야!"
라고 말하며 창문을 계속 내리쳤습니다. 마침내 쨍하는 귀가 먹을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창문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은 공주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공주의 방은 3층이었지만 언덕에 지은 건물이라 앞에서 보기에만 3층이지 공주의 방에서는 1층보다 약간 높은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리 오지 못해!"
왕비가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왕비가 공주가 뛰어내린 창문으로 뛰어내렸을 때는 공주는 이미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마도 숲에서 담을 넘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비명 소리를 듣고 모든 수비대 대원들은 건물 쪽에 있었기에 공주를 보지 못했습니다.
왕비는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공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버릇은 없지만 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과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주는 3일째 되는 날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걱정 끝에 왕비는 파인마운틴 가에서 알고 있던 사냥꾼을 불렀습니다. 그 사냥꾼은 나라 안의 모든 숲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공주를 쉽게 찾아내리라 생각했습니다.
사냥꾼은 왕비가 보낸 하녀가 파인마운틴 가에 도착하고 나서 두세 시간 후 사냥감을 팔기 위해 파인 마운틴에 도착했습니다. 돈을 받고 나오려는데 하녀가 불렀습니다.
"이보게."
"저 말입니까?"
"왕비께서 찾으시네."
"소문에 공주님께서 사라지셨다는데 그것 때문입니까?"
"그렇네. 그러니 아무 말 말고 따라오시게"
"알겠습니다."
사냥꾼은 궁전 입구에서 활과 화살,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털장식도 모두 하나하나 점검을 했기 때문에 왕비가 생각한 것보다 몇 시간이나 더 늦어졌습니다. 마침내 하녀를 따라 왕비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왕비가 화장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왕비는 공주가 그리워서 공주의 그림이 걸려 있는 액자를 보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백설이지"
그때 하녀가 말했습니다.
"왕비마마, 사냥꾼 들이겠습니다."
사냥꾼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왕비마마, 제가 공주님을 찾아야 하는 겁니까?"
"그렇네. 어디 있는지만 찾으면 되네. 사례는 두둑이 하겠네."
"알겠습니다. 찾으면 어디다 말하면 되겠습니까?"
"파인마운틴가에 말을 전하게. 그거면 충분하네."
"예, 알겠습니다. 이제 물러나겠사옵니다."
사냥꾼이 왕비의 방에서 나올 그 시각, 공주는 산속 오두막에 있었습니다. 나무를 베다가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는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누워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의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도 대여섯 명 있었습니다. 의원과 하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약초를 캐거나 가지고 있는 약초를 달였습니다. 그러다 공주가 아무 소리 없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원은 아직 공주가 궁 밖으로 나온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공주의 옷이 레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산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많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공주나 높은 신분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얘야, 이리 와서 여기 천조각 좀 잡고 있어라"
라고 말했습니다. 공주는 눈을 부릅뜨고
"네 이놈, 죽고 싶은 게냐!"
라고 소리쳤습니다. 의원은 잠시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하녀에게 말했습니다.
"정신이 이상한 아이인 것 같으니 부엌에 가서 알약 하나 먹이거라"
부엌에 있는 알약은 각설탕이었습니다. 가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나 들개가 오면 각설탕을 주고 기분이 조금 풀어졌을 때 쫓아내고는 했던 것입니다.
각설탕을 먹는 공주는 기분이 금세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며 의원이 잡으라면 붙잡고 누르라면 누르면서 치료를 도왔습니다.
저녁에 되어서도 음식은 맛이 없었으나 각설탕은 맛있었기 때문에 잘 잘 수 있었습니다. 각설탕을 마음껏 먹지는 못하지만 의원이 솔직하게 이곳은 외진 곳이어서 각설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껴 먹어야 하기는 하지만 너 혼자 다 먹을 수 있게 해 줄 테니 안심하거라,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냥꾼은 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근처 사람들에게서 의원의 오두막에 레이스 달린 옷을 입은 여드름 투성이의 여자 아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사냥꾼은 실제 가 보기 전에 일단 파인 마운틴 가에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 보라는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괜히 가서 사단을 일으키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사냥꾼이 토끼와 사슴을 잡아서 손질하고 있을 때 왕비의 하녀가 와서 말을 전했습니다.
"왕비님께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신다. 굳이 다시 가볼 필요는 없다. 확인하고 나면 아마 왕비님께서 직접 가실 것이다. 한시가 급하니 옷 따위로 시간 끌지 말고 지금 나오너라."
사냥꾼은 토끼와 사슴을 손질하느라 피가 튀어서 이건 좀 정도가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했지만 하녀의 표정이 너무 엄해서 곧바로 따라갔습니다.
왕비는 공주의 인상착의와 옷의 모양을 물었습니다. 왕비가 눈앞에 있는 듯 자세히 묘사하자 사냥꾼이
"맞습니다. 공주님 맞는 것 같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왕비는 곧바로 하녀에게 외출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산이기 때문에 가마는 탈 수 없지만 경호 인력은 똑같이 유지해야 했습니다. 경호 인력이 궁 앞으로 모이는 데 1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비는
"그 시간 안에는 내려갈 테니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게"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공주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공주의 초상화를 벽에서 떼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원래 있던 거울을 걸어 놓았습니다.
그때, 파인마운틴 가에는 이상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궁에서 하녀가 계속 드나드니 주변에서 혹시 파인마운틴 가의 사과에 어떤 특혜를 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퍼진 것이었습니다. 그랜드힐 안의 모든 사과가 동등하게 모아져서 평등하게 심사를 받아 등급대로 포장해서 수출을 하는데, 파인마운틴 가의 사과는 사전심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돈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추측이었으나 하녀가 공주의 탈출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반론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드스트림에서 하인 하나가 국경으로 사과가지를 숨겨 나가려다 들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전국이 들썩거리게 된 것은 이 사람이 잡혀가는 과정에서
"아니, 파인마운틴 가 사과를 그렇게 비싸게 주고 사주고 우리 사과는 헐값에 사주니 이러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며 있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후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져 사형을 당하기는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파인 마운틴 가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그랜드힐 전체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제렌불린2세가 그럴 리가 없다, 왕비가 꼬드긴 것이 틀림없다는 소문도 함께 돌기 시작했습니다.
왕비는 의원의 오두막에 도착해서 공주를 만났습니다. 진료실은 비워졌고, 환자들은 왕실 문장이 새겨진 천막 밑에서 왕실에서 급히 쑤어 온 죽을 먹으며 쉬었습니다. 진료실에 공주와 마주 앉은 왕비가 말했습니다.
"공주, 체통을 지켜야지 이게 무엇하는 짓인가."
"어마마마 말고 엄마라고 부르라면서요? 친한 척하더니 왜 사람 먹을 걸로 길들이려고 하세요? 제가 짐승이에요?"
"길들이는 게 아니라 교육을 하는 거야. 공주는 이제 앞으로 이 나라를 받아 다스려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이 사과나라는 사과나라가 아니라 공주에게 오히려 독사과가 될 수도 있어."
"독사과 먹으라고 저주를 하시네요.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사과는 못할망정 협박까지 하시는 거예요?"
"듣기 싫어도 할 수 없다. 군주 교육을 늦게 받기 시작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왕위에 오르면 신하들 또한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하게 될 거다. 그럴 때마다 궁 밖으로 도망갈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나는 신하들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나왔어! 나에게 독사과를 먹이려고 하니까 나온 거 아냐!"
한껏 소리를 지른 공주는 궁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어릴 때 자주 놀던 산이라 공주는 이곳에서 궁으로 가는 길에는 밝았습니다. 왕비와 행렬이 세 시간에 걸쳐서 온 곳이지만 공주는 한 시간 만에 궁에 도착했습니다.
궁에서 탈출할 때는 담을 넘었지만 도착할 때는 정정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더러워진 얼굴로 끝단이 해진 옷을 입은 공주의 모습을 보고 백성들과 수비대는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모두 수군거리자 공주가 외쳤습니다.
"뒤에서 속닥거리지 마! 왕실이 우스워! 왕비라는 게 공주보고 독사과 먹으라는 왕실이니까 우습겠지!"
공주가 그 말을 하고 궁으로 들어가 버리자 백성들은 동요하고 말았습니다. 왕비가 왕의 눈과 귀를 막아 파인 마운틴 가에 특혜를 주는 것도 모자라 공주를 죽이고 자신의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틀 뒤, 왕은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왕과 신하들이 모이는 조정에 왕비와 공주도 앉았습니다. 끝에는 궁에서 일하는 모든 하인들과 하녀들도 모였습니다. 초조한 분위기 끝에 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뭔가 다들 할 말이 많다고 들었네. 말을 하게."
신하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브라운 플리즈드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왕실을 보좌하고 있는 것은 제 견해를 보고 왕실에서 저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나이다. 그렇게 높이 사 주시는 데 감사하는 뜻에서라도 제가 한 말씀 올리지 않을 수 없겠나이다. 지금 백성들 사이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말이 마구 떠돌고 있나이다. 파인 마운틴 가의 저 왕비님께서 그 모든 소문의 중심이 있사오니 임금님께서 밝혀 주시고 모든 것을 오늘 끝내소서."
"소문은 대충 들었소. 경들도 공주가 궁을 나갔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오. 그것 때문에 하녀가 파인 마운틴에 드나들기는 했소. 하지만 왕실에서 그렇게 거치지 않고 사방을 쑤시고 다닐 수는 없는 일 아니오? 그렇게 이해하고 여기서 정리합시다."
"임금님,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 왕비님께서는 주술을 하신다 하옵니다. 그 부분은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발본색원하여 아니라면 그런 이야기를 한 인간을 찾아내어 본보기로 보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군. 누가 먼저 그런 이야기를 했소?"
그때 하인들 중 하나가 쭈뼛쭈뼛하며 나왔습니다.
"임금님, 아마 제가 했던 이야기가 퍼진 것 같사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왕비가 주술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가!"
왕은 이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온화했던 표정은 어디 가고 이제 양쪽 눈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에 덜덜 떨며 하인이 이야기했습니다.
"지난번, 공주님께서 사라지시고 얼마 뒤, 짐을 옮기느라 왕비님 방의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냥꾼이 왕비님을 뵈러 와서 문이 열려 있었는데 왕비님께서 거울에 대고 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냐고 물으셨고, 다른 여자 목소리가 거울에서 백설공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해서 감히 얼굴을 들고 들여다보았는데, 거울이 공주님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나이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그 짐만 간신히 옮기고 도망쳤나이다."
"어디에 있던 거울이더냐?"
"화장대 옆 기둥에 걸려 있던 거울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공주의 그림이 걸려 있지 않소? 지난번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왕비는 아차 하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그렇긴 한데 공주를 보러 가면서 떼내어 지금은 거울이 걸려 있습니다."
"공주를 보는데 공주 그림을 왜 떼낸 것이오?"
"공주를 만나는 데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울 때 보려고 떼어냈습니다."
그때 젊은 신하가 끼어들었습니다.
"임금님, 사실 거기에 그림이 걸려 있던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나이까? 지금 왕비님께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어 근심이 드나이다."
그러자 왕비가 말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때, 브라운 플리즈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왕비님께서 공주님께서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을 듣고 사냥꾼을 부르신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왕비가 말했습니다.
"그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오, 경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오?"
브라운 플리즈드는 깜짝 놀라며
"저는 단지 지금의 소동이 소동으로 끝나기만 바랄 뿐이옵니다. 온 나라가 너무나 분열되어 있나이다."
임금이 말했습니다.
"아니, 거울을 보고 말했든 그림을 보고 말했든 분열될 것이 뭐가 있소?"
"임금님,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옵니다. 백성들이 받아들인 이야기는 간단하게 말해 이렇사옵니다. 공주님께서 왕비님을 피해 궁에서 나가셨고, 왕비님께서는 거울에게서 공주님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해서 사냥꾼을 불러 공주님을 찾아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냥꾼은 피투성이로 와서 공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왕비님을 속이고 안심시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공주님께서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비님께서 직접 오두막까지 행차하시어 독사과를 먹으라 강요하셨다는 것입니다."
왕비는 기가 차서 말했습니다.
"아니 독사과를 먹이다니요?"
그때 공주가 말했습니다.
"독사과를 먹게 될 거라고 저주를 했을 뿐, 먹이지는 않았죠. 제가 먹을 사람도 아니고요."
그러자 온 신하들이 술렁거렸습니다.
"임금님, 왕비님께서 저주를 하는 주술사라는 증언이 공주님 입에서 나왔나이다. 공주님을 거짓으로 처벌하거나 왕비님을 주술로 처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셔야 하옵니다."
그날 밤 왕비는 왕의 침소에 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왕비는
"제 교육이 틀어진 것이니 왕께서는 부담을 갖지 마소서. 공주는 이미 왕실의 핏줄이니 왕위를 이어야 하나이다. 모든 일은 흘러야 하는 데로 흐르는 것이니 저에게 떨어지거나 나라에 떨어지거나 떨어져야 할 것이 떨어지는 것이나이다. 내일, 사약을 받겠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다음 날, 왕은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왕비에게 사약을 내리는 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왕비는 왕비에서 폐하여져 파인 마운틴으로 갔으나, 사람들이 몰려와 모든 문을 둘러싸고 고함을 지르고 있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왕비는 어쩔 수 없이 하녀의 사가로 가서 마당에서 사약을 받았습니다.
파인 마운틴은 마침내 정문이 무너져 사람들이 마구 들어와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집뿐만 아니라 사과밭도 망신창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파인 마운틴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과 생산량이 줄면 전 세계적으로 사과값이 오르리라 예상한 중소 가문들의 이기심 때문에 사과 생산의 중심지였던 모든 집안들이 이어서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사과 생산의 중심지였던 네 가문은 나라 밖으로 피신하여 바닷가 근처의 먼 나라로 가서 다시 사과밭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으로 맛있는 사과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써니포트라는 이름으로 사과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랜드힐의 사과는 한동안 고가를 유지했지만, 써니포트에 밀려 마침내 사과나라라는 이름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과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나라가 사과에서 우위를 지키지 못하자 점점 가난해져서 마침내 멸망하여 이웃나라에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제레불린2세는 공주가 스무 살 되던 해에 왕권 이양서에 서명을 하고 울화병을 이기지 못하고 두 달 후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