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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17. 2024

글감 메모

꿈이든 글을 쓰려던 아이디어든 기억하는 동안에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각이라 잊어버릴 일이 절대 없을 것 같지만 막상 잊어버리고 나면 그것보다 더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 또 있을까 싶은 법이다. 그래서 기억이 있는 동안 잊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결국 일부는 놓아주어야 하고 일부는 운이 좋아서 잊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건졌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운의 문제라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잊지 않도록 메모하는 몇 가지 방법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는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무척 용이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소용이 없는 것도 있었고, 과거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잘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곤란한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은 포스트잇이었다. 메모를 해서 붙여 놓아도 생각보다 잘 떨어지고 그렇다고 메모 해 놓고 다른 곳에 붙이지 않았다가 또 다른 메모를 다시 해야 해서 맨 앞 메모를 떼다 보면 맨 앞의 종이 한 장을 잡아서 떼는 데 집중을 해서 그런지 그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떠오른 생각을 잊어버리기 십상이었다. 차선책으로 그렇게 기록한 포스트잇을 그때그때 다이어리에 붙이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포스트잇에 적은 다음 떼어서 붙이는 것보다 바로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급할 때마다 잘 사용하는 방법이 휴대폰의 메모 어플에 기록하는 것이다. 단지 어플을 실행하고 메모를 남겼을 뿐인데 작성한 날짜와 시간이 모두 기록되기 때문에 나중에 정리하기 매우 편하고 쉬운 데다가 한두 문장으로 끝나지 않고 글이 점점 길어진다고 해도 종이에 기록할 때처럼 공간에 제약이 없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메모가 글 한 편이 될 때도 있다.
지금 지하철이나 외출 중 걸어 다니다가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메모를 한다. 그렇지 않고 안정적으로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글감이 떠오르면 글감 적는 노트를 펼친다. 글감 적는 노트는 어떤 때는 서서 기록해야 할 때도 있어서 하드커버로 된 제품이 낫다. 지금은 연금술사 리커버본에 포함되어 있던 양장본 수첩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건 생긴 김에 사용하는 것뿐이고, 집에는 이 수첩을 다 쓰고 나면 그때 가서 사용하기 위한 양장본 수첩이 더 기다리고 있다.
메모를 할 때는 굵은 심의 볼펜을 사용한다. 가는 심의 볼펜은 책의 여백에 작게 메모하기 위해서만 사용하고 수첩에 메모할 때는 종이가 어느 정도 두께가 있는 수첩을 골라서 만년필이나 샤오미펜 같은 굵은 제품을 사용해서 술술 미끄러지듯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는 심을 사용할 때는 심이 가는 만큼 글씨도 작게 써야 중간에 글이 끊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긴 한데, 내 경우에는 글씨가 큰데 글씨체가 작으면 그 불균형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생각이 달아나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것이 상관없다면 볼펜은 어떤 것을 사용한다고 해도 전혀 무방할 것이다.
그 밖에도 손바닥에 메모를 하거나 하는 방법들도 다 써보기는 했지만 모두 급할 때 사용하는 방법들이어서 핸드폰의 메모 기능이 있으면 굳이 무리해서 그런 방법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내가 메모를 하는 핵심은 수첩이다. 수첩 역시 포스트잇과 달리 다음 페이지로 얼마든지 넘어가도 되기 때문에 길이에 제한이 없지만 핸드폰으로 작성할 때에 비해 길이가 길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을 쓸 때는 생각이 나는 것이 있어 바로 달려들어 생각을 풀어낼 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일은 보통 없기 때문에 먼저 수첩을 펼쳐서 글감 메모들을 천천히 훑어본다. 수첩이 항상 메인이다. 시간도 남고 글을 쓰고 싶지도 않을 때는 핸드폰의 메모 어플을 켜고 거기에 남긴 메모들을 수첩에 옮겨 적고 나서 핸드폰에 있는 메모는 지운다. 수첩에 있는 메모는 해당 메모로 글을 쓰면 그 앞에 엑스 표시를 한다. 그 글감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같은 주제로 글을 두 번 쓰면 안 된다는 법칙은 없기 때문에 글을 지운다거나 글 위에 엑스표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단지 그 앞에 표시만 할 뿐이다. 아마 한 가지 메모로 두 편의 글을 쓰게 되면 엑스 표시가 두 개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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