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결과인 것은 아니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결과가 아닌 일에는 원인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의 결정에는 원인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법이고, 그 이유를 선택한 데에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유가 단지 변덕 때문이라면, 그 선택에 대해서는 변덕을 부리게 만든 계기를 원인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긴다. 죽음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죽음을 의도적으로 야기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의도가 생긴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생긴 원인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원인이 없다. 그 의도가 결과가 되는 그런 원인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감정과 이성의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판단과 그 판단의 결과가 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살인뿐 아니라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결정에도 이유는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지만 원인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옷을 세탁하려고 한다면 이유는 옷이 더러워서이지만 옷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원인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원인 없이 단지 자신이 이틀에 한 번 빨기 때문에 이틀째에 더럽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고, 걷다가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웅덩이의 물을 튀긴 것이 원인이 되어 옷을 더럽게 느끼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갑자기 원인과 이유를 구분해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오래전 읽다가 사라졌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 당시 이탈리아의 국가들은 생긴 이유를 알 수 없는 조그마한 전제국가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고 했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근거가 되는 국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그 나라의 시민임을 천명해야 하는 국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등을 타고 지나갔다. 스스로 존재 근거가 된다? 마치 'I am who I am'이라는 성경의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는 것이야말로 원인과 결과의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살아간다는 결과를 일으킨 원인은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원인이 있다 해도 그 상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단지 그게 생명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심심하다.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일 분 일 초가 너무 아깝다. 인류에 있어서 생산성 있는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바라보는 내 관점이 '내 인생아, 나로 하여금 나에게 재미있을만한 뭔가를 해 봐라'라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심심하니까 유튜브나 보아야겠다.' 그러면 원인은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결과는 무엇인가? 유튜브를 보기로 결정하는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의 공정한 내면의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하기로 하든 유튜브를 보는 것인가?
내일이 시험이라 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싫어서 유튜브를 보고 있다면 그 원인은 바로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시험공부를 하기 싫다는 이유로 유튜브를 보는 일은 없다. 시험공부를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현실이 원인이 되어 유튜브나 들여다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원인과 이유를 분리해서 생각해 보면 적어도 내가 할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지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이런 식의 분석이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일은 조금 어려운 편이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수많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학식과 감정을 뛰어넘을 수 없다. 수많은 글을 쓴 사람들이나 글에 모든 것을 진심으로 담는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책을 정복하고 글을 써서 종이를 더럽히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이고 교묘하게 이어진다면, 마치 왕에게 비서가 추궁하듯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입니까?" 혹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인이라고 말할 때는 휘둘리는 원인을 말하는 것이고 이유라고 말할 때는 행동하는 원인을 말하는 것이다. '원인'은 그 원인에 의해 나는 결과적으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유'는 내가 이렇게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동한다는 것이다. 원인이냐 이유냐에 따라 나는 결과를 말할 수 있고, 결정을 말할 수 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결정이 아니라 결과이다. 원인은 이끌림이다. 감히 책들이 나를 이끈다고 말할 수 없고 글쓰기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읽겠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글을 쓰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잿더미를 쑤시고 다녀 보았자 제대로 된 글을 거기서 건져낼 수도 없고 차라리 그 경험을 가지고 새로 쓰는 글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니다. 그 잿더미를 뒤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 나를 글쓰기로 이끌고 책으로 밀어 넣는다.
모든 일이 결과일 수는 없지만 결과일 수밖에 없는 일은 존재한다. 이 우주에 이런 궤도로 돌고 있는 태양계 안에서 용케 생명을 감싸고 있는 지구가 있기에, 나는 글을 쓴다. 나의 존재가 내가 글을 쓰는 원인이다.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 중 몇 명이 위대한 글을 쓴다면, 아무도 글을 쓰지 않는데 그것들을 위대한 글이라고 말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몇 명만 글을 쓰는데도 그 몇 명이 위대한 글을 쓰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머지 인구는 글을 쓸 시도조차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결론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다시 수많은 사람이 글들을 읽어야 몇 명이 천재적인 글을 쓰더라도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수많은 글들이 있어야 몇 명의 글이 천재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고 그 이유는 내가 이 지구에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 안에는 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인을 찾았지만, 그것은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