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 말이 뜻하는 것은 단순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한 일에는 내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와 목적을 나만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면 그런 일을 한 이유는 나만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이유에 따라 처벌이 따를 수 있고 반면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자는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를 또다시 댈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를 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정신질환 또한 포함된다. 이것은 '질환'이라고 하는 만큼, 내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서 막다른 골목을 만나고 그것을 타인이 객관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내가 이유를 대지 못하고 남이 이유를 대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그 사람이 세상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모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책임 없는 권리가 적용되는 예외라니.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한 개념 중에는 그림자라는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본체가 있고 그 본체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실제 세계는 따로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것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 살인도 진짜 살인이 아니고 사기도 진짜 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각형조차 가짜인 세상에서 범죄가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실, 그의 주장은 이런 쪽이 아니기는 하다. 그는 도덕에 대해서가 아니라 물질세계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을 확장시켜 가다 보면, 그림자 개념과 책임의 개념의 교차 지점에서 흥미로운 생각이 자라난다.
내 글은 과연 나의 글일까? 글로 쓰여지는 생각은 과연 나만의 것일까? 실제로 글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은 많이 있다. 명예훼손이라던가 모욕이라던가, 심지어 인터넷만 보아도 글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단순히 내 삶 속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들일까? 내가 생각하는 글은, 내가 있기 전부터 어딘가에 묻혀 있다가 그 향이 내 인생에 스며들면서 자라난 아이디어들인데, 실제로는 내 인생이 혼자 만들어낼 수 있는 글이었던 것일까?
생각은 언어의 형태를 갖추면서 말이 되고 글이 된다. 그것은 어쨌든 인생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언어라는 것 자체가 경험을 통해 갖추어지는 능력이라는 것은 문화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또렷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아이디어들도 그럴까? 확실히 사회적으로 보면 그다지 창의적이지 못한 아이디어라도 개인의 인생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것일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건 어디선가 우연히 날아온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인생을 살면서 스쳐간 수많은 광고 문구나 유머 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밖의 어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어느 지점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커다란 하늘 아래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 주위 가까운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때로 내가 최근에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에 있었는지에 따라 배경은 풀밭일 때도 있고 성벽 위일 때도 있고 산속일 때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하늘이다. 그리고 나면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머릿속에 지하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계단 대신 가파른 내리막길로 된 굴을 따라 내려가면 등뒤에서 들어오는 별빛만으로 간신히 보이는 조그마한 상자가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상자는 크기가 핸드볼 공 정도이다. 그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상자가 저절로 열리면, 그때는 글을 써야 할 시간이다.
그 하늘은 30년 전 문경새재에서 보았던 밤하늘과 닮았다. 그때 그렇게 많은 별을 한 번에 본 적이 없어 놀랐기 때문에 그 충격이 기억 속에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하실과 상자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상자는 마치 금속처럼 곧고 단단하지만 촉감은 일반적인 택배처럼 골판지이다. 이렇게 모든 구성요소가 현실에 있을 법한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그 상자가 열릴 때 내 머릿속에 글이 될 생각들이 줄지어 기다린다는 것은 글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어딘가와 연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글은 분명히 내가 내 의지대로 쓴다. 글을 쓰면서 뭔가가 함께 떠올라 설명으로 곁들이게 되면 그것은 분명히 내가 쓴 것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맞다. 글은 결국 무엇이든 내가 내 의지로 언어로 변환을 하고, 내가 내 손가락을 움직여 글로 써내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에 떠오른 그 이후는 내가 책임지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그 글을 쓰게 된 최초의 아이디어는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전단지에 글을 써서 사기를 치고, 동시에 그 사실을 숨기고 천재적인 글을 썼을 때, 내 생각에는 사기를 친 그것은 그가 결국 그 글을 써냈기 때문에 감옥에 가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합당하지만 천재적인 글에 대해 그가 찬사를 받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글을 읽고 감탄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때문에 작가를 칭찬하는 것은, 그 작가의 다른 글도 읽기 위해서, 혹은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해서 나에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어 준 수고 때문일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아이디어를 붙잡아서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한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라는 것이 떠다니다가 누군가의 머릿속에 나타나는 것은 무작위적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을 글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는 그 수고가 그에게 가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누군가는 읽어야 하며, 그것이 다시 나타났을 때 반복적으로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글이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제대로 된 글이라는 것 역시 판단의 근거가 없다. 세상에서 천재적인 글이라고 칭찬하는 경지가 아니라 단지 떠오르는 것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써내고 누군가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만큼 충분히 쌓이는 것 정도가 끝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다거나, 상상 속에서 돌아다니면서 즐거움을 일시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언어의 형태로 변환한 다음 손가락으로 굳이 책상에 앉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우면 무엇이 나와도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다른 생각과 원래의 그 생각 사이를 넘나들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끝날 때 아픔을 느껴야 글로라도 남기고 싶을 것이다. 나는 둘 다에 해당한다. 글을 쓰는 '행위'를 재미있게 느끼고 스트레스 해소의 용도로, 취미의 일환으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 마치 입속에 굴리던 사탕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생각이 마침내 생각이 끝났을 때, 여운이 남는 게 아니라 조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던 것인지조차 잊어버리고 나면 커다란 아픔을 느낀다. 글을 쓰지 않아서 느끼는 아픔이 아니다. 글은 쓸 때와 읽을 때의 즐거움이 있을 뿐 글을 쓰지 않거나 읽지 않아서 슬프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방금까지 즐겁게 하던 생각이 무슨 생각이었는지의 기억 없이 뭔가 어떤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나면 그것은 슬픈 일이다. 이것을 내가 나의 즐거움 때문에 계속해서 써나가고 그렇게 쓴 글은 글이라는 형태가 있기에 누군가는 읽을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오는 아이디어들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글을 개떡같이 써서 평범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저절로 내려온 아이디어로 써도 이 정도라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지고, 그런 글들을 읽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다면 우리가 감탄하며 읽을 글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이 한두 편 나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잘하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글이 인생에서 한 번은 나올 수 있다고 하면, 한두 편 나왔다는 이유로 그 몇 명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찬사를 얻을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신만의 지하실과 상자가 있다고 믿는다. 누구나 그 상자가 열리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다. 그 상자가 열릴 때 본 것을 글로 쓰는 사람, 곡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상자를 아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상자의 형태일 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테나이다. 회로를 꺼 놓고 있으면 안테나가 수십만 킬로미터 반경의 신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이상하거나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 그런 환경이라면 누구나 안테나를 켜 놓고 자유롭게 생각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사실을 조사해서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그나마 조사도 없이 인터넷만 서핑한 내용인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특권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있는 판이니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그 아이디어가 한 짓일 것이다.